작품 줄거리
전쟁이 휩쓸고 간 자리를 지나 벤 한 대가 국경을 향해 달려간다. 벤 안에는 집과 일터, 그리고 반려 동물과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떠나는 생존자들이 타고 있다. 여성이거나 노인이거나 어린이이거나 이주민이거나, 또는 우리 모두일 존재들. 이들은 국경으로 향하는 밴에 앉거나 누운 채 덜컹이며, 두고 온 삶과 다가올 삶을 이야기한다.
프로그램 노트
“끝없이 이어지진 않아. 어딘가에서 끝나겠지”
2022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전쟁으로부터 대피하기 위한 피난 역시 계속된다. 감독 마치에크 하멜라는 전쟁이 3일째 되는 날부터 벤을 구입해 피난민을 국경으로 이송하는 활동을 시작하고 이를 기록하기로 한다. 그렇게 영화 <백미러로 본 전쟁>은 바로 그 순간에 도망치기로 결정한 사람들을 다루며 이들에 대한 복잡한 분석을 더하지 않고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한다.
영화 속 우크라이나인들은 자신들의 집을, 가족을, 반려동물을, 꿈을 자리에 둔 채 국경을 넘기 위한 벤에 올라탄다. 그리고 한 아이가 말한다. “바다야! 여름엔 여기 돌아와서 물에 뛰어들겠지. 전쟁 끝나면 돌아올 거야, 그렇죠, 엄마?”. 콩고에서 유학을 왔다가 총격으로 부상을 입은 이주민이 말한다. “저에게 우크라이나는 제2의 고향이에요. 잠잠해지면 여기로 돌아올래요.” 어쩌면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 흔적의 파편들만 남을 그곳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다시 돌아갈 그날을 상상한다.
공간이란 실체가 있는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존재와 일상의 관계를 의미한다. 전쟁은 실제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을 파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을 되찾고자하는 마음은 더이상 그 어떤 폭력으로도 지워지는 존재가 없기를 위해 함께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두부
감독
영화와 라디오 감독 및 프로듀서. 바르샤바 출신으로,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프랑스어 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프랑스의 영화 학교 EICAR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했다. 장편 다큐멘터리 <백미러로 보는 전쟁>의 감독이자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Convictions>, <Gatherers of Sea Grass>, <Parquet> 등의 영화를 제작했다. 2018년에는 폴란드 라디오 기자 대회에서 Silver Melchior 라디오상을 수상했으며, Audioteka를 위한 다큐멘터리 팟캐스트 시리즈인 Plan B를 공동연출했다.
인권해설
덜컹이는 승합차에 사람들이 타고 내린다. 익숙하던 삶의 공간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이들. 노인은 남겨두고 온 소를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고, 어린이는 군 입대를 앞둔 아버지와 이별의 포옹을 나눈다. 긴 여행 중에 용변이 급한 고양이는 차가 멈추자마자 볼일을 본다. 백미러에 비친 이들의 얼굴은 우리의 시선을 전쟁 속 구체적인 삶의 자리로 이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지 2년이 훌쩍 지났고, 지금까지 우크라이나에서는 약 천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천만이라는 숫자 뒤엔 두려운 얼굴로 승합차에 탑승한 사람들과, 그들과 함께 살던 비인간동물들의 삶, 그리고 파괴된 마을과 대지가 있다. 전쟁은 주로 뉴스에 등장하는 전투와 군인들, 폭격으로 가시화 되지만, 전쟁을 겪는 삶들은 다양하며 고유하다.
피난민들을 비추는 승합차의 백미러는 어린이와 노인, 그리고 여성들의 얼굴을 비춘다. 백미러에 등장하지 않는 어떤 사람들은 승합차에 타는 대신 강을 헤엄치거나 어둠 속을 걸어 피난을 떠난다. 이들에게 피난처는 허락되지 않는다. 징집을 피해 국경을 넘는 사람들 얘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우크라이나는 계엄령을 선포하며 18세에서 60세 사이 남성들의 출국을 금지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우크라이나는 50만 명의 추가 병력을 동원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해외에 거주하는 해당 연령 남성들에 대한 영사 업무를 중단했다. 징병가능한 연령대의 남성들은 해외 체류 중 여권이 만료돼도 갱신하거나 새로 발급 받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강제동원이 가능한 연령 역시 기존 27세에서 25세로 하향조정 되었다. 우크라이나 내무부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병역기피’ 혐의로 고발된 사람들은 9천 명에 달한다. 루마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티사강에서는 최소 33명이 징집을 피해 이 강을 건너려다 익사했다고 전해졌다.
전쟁의 승패를 묻는 순간, 어떤 이들의 피난에는 ‘병역기피’라는 이름이 붙는다.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파괴된 일상의 자리에 새로운 힘의 질서를 만든다. 전투력과 승리를 절실히 호소하는 질서 속에서, 피난민을 수송하는 승합차의 백미러는 징집을 피해 도망치는 남성들을 쉽게 비출 수 있을까. 전쟁의 잔혹함은 폭격에서 뿐만 아니라, 승합차의 백미러가 비추는 / 비추지 못하는 장면에서도 낱낱히 읽혀야 한다.
승합차에 탄 노인은 뒷자리에 탄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부디 잘 살아라.”
그의 목소리에 어린이들에 대한 염려와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2022년 2월 이후, 한국의 무기산업은 전례없는 호황을 맞았다. 한국의 한 언론은 이를 보도하며 한국의 방산주를 ‘자녀에게 물려줄 주식’이라고 말했다. 이 이질적인 두 장면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겪는 전쟁이 지구 반대편 누군가에게는 이익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이 누군가에게 돈이 되는 시스템은 계속해서 죽음을, 피난을, 멸종을 만든다. 어린 삶들이 부디 잘 살기를 바라는 노인의 마음이 보편이라면, 물려주어야 할 것은 방산주가 아닌 ‘전쟁 없는 세상’이다.
뭉치(피스모모)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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