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집 West Estate

작품 줄거리

찬란한 마천루로 빼곡한 홍콩 어딘가, 잿빛 건물이 늘어선 웨스트 이스테이트 지구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아파트, 2층 침대를 이어붙인 방, 늘어진 전선이 가득한 곳. 부서진 벽들은 홍콩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을 말한다. 이곳에는 월세 60만원의 집을 찾아 헤매는 노인이, 노래로 자신을 말하는 퀴어가, 임신중단수술을 반복해야 했던 여성이, 어린 시절 본토에서 돈이 없어 소풍에 가지 못했던 이주민이 산다. 각자의 삶으로 불평등한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는 이들. ‘집’은 언제나 ‘미래’의 것인 이들에게 홍콩이란, 투쟁이란 무엇일까.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프로그램 노트

TV에서는 40만 개의 주택이 올라간다는 인공섬 란타우섬의 광고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누구도 40만 개의 주택 중에 ‘내 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의 집>에서 “집다운 집”에 살아본 적 없다는 이들에게 홍콩은 독립을 쟁취해야 하는 터전이기 전에, 월세 60만 원으로 살 수 있는 곳이 없어 콘크리트 숲을 헤매야 하는 땅이기도 하다. 노인으로서, 퀴어로서, 여성으로서, 이주민으로서의 삶을 경험하는 공간이기도 하면서, 빈곤을 마주해야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홍콩 아파트의 중위가격은 세계 1위다. 높은 빌딩만큼 거대한 자본이 장벽으로 서 있다. 평균적인 연봉을 받는 홍콩의 직장인은 20.9년 동안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간신히 살 곳을 마련할 수 있다. 세탁기를 놓을 수 있는 집의 가격은 그렇지 않은 집에 비해 다섯 배, 화장실이 있는 집의 가격은 화장실이 없는 집에 비해 열 배 높다. 이런 사회에서 빈부의 격차는 ‘부동산 대란’이라는 다섯 글자로는 담을 수 없다. 주거의 높은 벽은 관계를 쌓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을 차단한다. 이러한 삶의 격차는 마침내 이들의 삶을 잠식한다.

그러므로 홍콩의 투쟁은 집이 없는, 집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의 투쟁이기도 하다. 홍콩의 거리를 채우고 경찰의 폭력에 맞서는 민중은 홍콩의 독립을 외치면서 “진정한 평등”을 느낀다. 차별에 맞서, 자본에 맞서 자유와 평화를 찾아오는 주체가 된다. 이 시대가 말하는 혁명이란 거대한 국가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무엇인가가 “없는” 사람으로 존재한 경험이 있다. 그런 우리가 독재로부터, 권력으로부터, 자본으로부터, 차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로서 서로를 마주해야 한다고, 이 시대의 혁명은 외치고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홍콩중문대학교를 졸업하고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첫 연출작 <미래의 집>으로 데뷔하였으며, 장편 각본 <Exiled>가 HAF 필름랩에서 제작될 예정이다.

인권해설

2017년 8월 15일 홍콩 고등법원은 3년 전 동북부 개발 계획에 반대하다 체포된 13명의 피고에 대해 8~13개월의 즉각적 구속형을 선고했다. 이는 ‘우산혁명’이라 불리는 센트럴 점령(Occupy Central)으로 비슷한 시기에 선고를 받은 피고들에 비해서도 높은 형량이었다. 동북부 신 지구 개발은 홍콩에서 가장 큰 개발 계획으로 명목은 토지 공급 증대, 인구 증가에 따른 스트레스 완화, 산업과 상업의 확장이었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개발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토지를 확보하도록 한 후 공유지를 사유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고, 몫 없는 시민들을 위한 거주권은 개발자들의 관심 사안이 아니었다.

 

수감된 홍콩의 활동가 대신 대만의 강제퇴거반대 활동가들이 그해 서울에서 열린 국제교류행사에서 이 사건을 전하며 연대 서명을 모았다. 아시아 각지에서 온 운동가들과 경의선 공유지 활동가들은 서명지를 들고 중국대사관 앞에서 홍콩 활동가들의 석방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연대의 장이 된 ‘경의선 공유지’ 또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공유지를 이랜드월드에 넘기면서 상업지구로 개발 중이고, 다른 지역에서 쫓겨나 공유지에 ‘26번째 자치구’를 일군 상인, 문화예술인, 철거민들은 또다시 내쫓겨 이리저리 흩어졌다.

 

한국과 홍콩이 겪는 문제는 많이 닮았다. 고도의 경쟁 사회이며 일자리도 부족한 두 나라에서 시민들은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도 비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주기적으로 옮겨 다닐 걱정이 없는 자신의 집을 갖기 위해서는 20년 이상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야 한다. 공공임대주택은 턱없이 부족하고, 입주하기 위해서는 이런저런 조건을 갖추고 한참의 대기시간을 보낸다. 이성결혼과 출산이라는 ‘정상가족’의 삶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이들에게는 안정적인 주거권은 더욱 멀고 멀다.

 

홍콩의 부동산 가격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홍콩의 빈곤층 비율은 20%에 달하며 이들 중 많은 수는 ‘닭장 아파트’ 내지는 ‘쪽방’이라 불리는 극히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생활한다. 이와 같은 빈곤층 증가는 부동산 가격과 관광객 유입에 의존하는 홍콩의 경제 구조 속 빈부격차와 사회적 안전망 부재에 기인한다. 시위를 통해 터져 나온 홍콩 시민들의 불만과 분노는 정체성 인정과 정치적 권리 요구로 주로 가시화되지만, 경제적 요소도 크다. 주거권, 일자리, 최저임금 등 민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민주정부가 수립되어야 하고, 이들의 참정권 요구는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도 하다.

 

홍콩시민들은 자신들의 시위를 지지하는 상점을 이용하는 경제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민주화시위를 상징하는 ‘노란색’에서 따와 ‘황색경제권 운동’이라 한다. 홍콩시위를 반대하거나 중국 자본으로 운영되는 상점에 경제적 타격을 입히는 방식으로 저항하겠다는 의미가 크다. 각계 파업이라는 방식으로 시위를 이어가기도 하는데, 시위 과정에서 노동조합 조직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지기도 했다.

 

시위에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도 참여했다. 필리핀 등 인근 국가에서 이주해온 입주 가사노동자들은 주말이면 고용주 가족이 단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집을 나와 길거리, 육교에 박스를 깔고 앉아 피크닉을 여는데, 육교와 거리 전체가 이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이들과 시위 군중이 뒤섞인 모습이나 이주노동조합 주최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등을 내걸고 집회를 여는 풍경도 홍콩 시위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사회적 격차와 차별 등 첨예한 쟁점들이 낳는 온도 차와 긴장감 속에서 시위는 거리에 몰아치고 있었다. 홍콩 시위가 반중국이나 정체성 투쟁만으로 좁혀질 수 없는 이유이다.

 

영화의 말미에, 홍콩 대도시에서 섬과 섬처럼 고립되었던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와 함께 싸우며 자유와 평등함을 느낀다. 나는 그들에게서 ‘홍콩’이라는 정체성이 중국에 반대해 정립되는 것이 아니라, 홍콩에서의 삶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고 그 땅을 어떻게 일구어나갈지 공동의 문제의식을 나누며 연대하는, 공동체적인 것으로 정립되어가는 풍부한 가능성을 본다. 끝없이 이어지는 싸움 속에 지치고 힘들더라도 부디 끊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공유지 위에 선 미래의 집에서, 우리는 덜 슬프고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상현(한-홍 민주동행)

56특별 상영회빚어내는 광장나중은 없다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특별상영작

리뷰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좋습니다.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