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 We’ll Be Alright

작품 줄거리

틴스코이 장애인수용시설에 있는 장애 당사자들은 시민으로서 스스로의 삶을 꾸리고 내일을 그릴 권리를 박탈당했다. 법원에서 드물게 탈시설을 ‘허용’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틴스코이로 보내진 율리아와 카쨔는 법원에서 자신이 시민으로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지만, 당사자로서 그들의 이야기는 재판장에서 쉽게 지워진다. 국가는 그들에게 덧셈 뺄셈 질문을 하고, 기억력 측정을 위한 시험을 보며 심지어는 자해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 보이라고 하기도 한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은 율리아와 카쨔의 탈시설을 향한 투쟁에 초점을 맞춘다. 국가가 누구에게 시민으로 살아갈 자격을 부여하고 어떤 이에게서 그것을 박탈하는지, 그 과정에서 국가의 태도 역시 여실히 드러난다.

프로그램 노트

여러 개의 문이 겹겹이 쌓여있다. 문지기는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하다. 그럼에도 문을 열기 위해 그 힘과 맞서는 이들이 있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의 율리아와 카쨔는 틴스코이 장애인수용시설에 살고 있다. 그들은 시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본인의 존재를 증명하며 투쟁한다. 그러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고 판단하는 국가가 그 문 앞에 굳게 서 있다.

개인이 일상을 유지할 자격을 국가가 판단할 수 있을까. 혹자는 혼자 살아갈 능력이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시설로써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기저에는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존재하며, 그것에서 벗어난 이들의 삶을 교정의 대상으로 단정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모두의 몸과 몸의 경험이 다른만큼 일상은 모두에게 다르고, ‘건강한 상태’ 또한 모두에게 다르다. 율리아와 카쨔는 그들이 시설 밖에서 살고 싶고,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이 무엇을 더 증명해야 했을까.

코로나19를 피해 문 밖으로 나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던 한편, 문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코로나19는 모두의 재난이다. 그러나 재난은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았다. 시설에서의 집단감염은 시설이 끝끝내 은폐하던 사실을 드러냈다. 청도대남병원 정신병동의 정신장애인 입원자 102명 중 100명이 코로나19에 감염되었다. 칠곡 중증장애인 수용시설에서는 23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예천의 중증장애인 시설에서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모두가 사회적 거리두기에 충실할 수 있었을 때, 모든 행동이 집단적으로 이뤄지고, 최소 주거면적마저 보장되지 않고, 사소한 이동마저 제한되는 공간에서 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개인은 지워졌고 집단만이 남았다. 사회는 그들을 ‘보호’라는 이름 아래 격리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대남병원에 ‘코호트 격리’ 조치를 취했다. 시설의 사람들은 집단감염과 격리로 인해 다시 한번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 이미 격리에 의해 건강권을 제한당한 이들에 대한 코호트 격리는 ‘보호’가 아니라 분리와 방치에 불과했다. 치료가 아닌 격리는 재난의 불평등을 심화했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 대책이 되지 못했다.

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시설을 필요로 하는 당사자나 보호자가 있으며, 시설 내의 인권침해는 시설 개념 자체의 문제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제적 자립의 문제나 활동지원의 부재가 해결되지 못한 사회를 사는 장애인에게 ‘시설’은 선택이 아닌 강요의 결과가 될 수 있다. 시설 밖에서의 삶을 상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탈시설의 선택과 그 책임을 전가할 수 없다. 탈시설은 선택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에 속해야 하기에, 우리는 탈시설을 논함과 동시에 탈시설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그렇기에 탈시설은 시설로부터의 탈출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코호트 격리에 대한 사회의 열광은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시설의 논리’를 증명한다. ‘정상적’인 삶의 양식이 존재하고, 존엄한 개인의 몸이 경험하는 세계를 재단할 수 있다고 믿는 사회.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시설이다. 시설화된 사회는 탈시설 이후의 개인에게도 계속하여 삶에 대한 증명을 요구한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역할은 일상을 규율하는 ‘보호’가 아닌, 자유로운 개인의 고유한 욕구와 필요에 대한 책임과 지원이다.

누군가가 남겨졌다. 사람들은 ‘우리’를 만들었고 ‘그들’을 구분했다. 소수자에 대한 분리와 배제는 시대와 사회에 따라 모습을 바꾸며 반복되어왔고, 이 시대의 혐오는 보호와 시혜의 위선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차별과 폭력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더는 살아갈 자격을 증명하라는 무례를 범하지 말라.

누구도 남겨지지 않는 그날까지 우리는, 문 밖으로.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권태, 은긍

감독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 Alexander Kuznetsov

알렉산드르 쿠즈네초프는 사진작가로 활발히 활동해왔다. 그의 사진 작업은 러시아, 노르웨이, 프랑스, 미국, 독일에 알려져있다. 2009년에 처음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 밖으로: 자유를 위한 투쟁>은 그의 세 번째 작품이다.

인권해설

틴스코이 장애인 수용시설에 살고 있는 거주인들이 묻는다. 왜 자유를 누릴 수 없는지.

가족과 함께 살던 곳을 떠나 수용시설에서 살게 된 이유는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더 나은 삶을 기대했을 것이다. 그 꿈은 무참히 짓밟힌다. 시민권을 박탈당한 채 시설 안에서 통제된 삶을 살아간다. 반복적으로 돌아가는 집단생활은 거주인들의 생기를 잃게 한다. 그럼에도 독립적인 삶을 위해 거주인들이 자신의 시민권 회복을 요구하는 활동은 멈추지 않는다. 탈시설은 선택이 아닌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라는 것을 그들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시설에서의 삶이 모두 비극인 것은 아니다. 울고 웃으며 그 시간을 함께 견딘 친구들을 만난 곳이다. 작별 인사로 끝이 아닌 사이. 삶이 있고 관계가 쌓인 그 시간들을 기억하며 탈시설 이후의 삶 또한 이어지기를 기대하게 된다.

여름(장애여성공감)

12코로나19 인권영화제누구도 남겨두지 않는다22회 서울인권영화제시민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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