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브라질 무토지농촌노동자운동(MST)가들은 공장의 유휴지를 점거한다. 그곳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화학비료로 길러진 사탕수수가 아닌, 직접 제작한 유기농 약품을 이용해 농작물을 재배한다. 이를 빈곤한 상황에 놓인 지역주민들에게 나눠주며 토지를 둘러싼 문제를 알린다. 이들은 석유와 곡식을 운반하는 철로를 막고, 토지소유자이자 기업식 농업 생산자인 의원 집 앞까지 찾아간다. 그리고 이들을 공격하는 자본과 공권력의 감시에 맞서기 위해 점거한 땅에 망루를 손수 짓는다. 비어있던 땅은 사람의 손을 타며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변해간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
프로그램 노트
브라질은 1%의 대지주들이 45% 이상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 토지가 필요한 농민들은 브라질 전체 인구의 37%나 되지만 농민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는 1% 미만이다. 이는 1965년 군정의 군사쿠데타 통치로 인해 생겨난 토지법 때문이었다. 토지법은 비어있는 땅에 ‘합법’의 이름으로 주인을 붙였다. 이미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은 쫓겨났고, ‘합법’적인 토지소유자들은 그곳에 대규모 농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토지가 ‘없는’ 농민들은 소작농의 형태로 농장에서 일당을 받으며 일하거나 파종, 추수와 같은 막대한 노동력이 필요할 때에만 일할 수 있었다. 농민들이 기업에 속해 생산한 농작물 대다수는 설탕의 원재료인 사탕수수다. 사탕수수 최다 수출국 브라질은 이름을 떨치지만, 기아와 빈곤으로 시달리는 농민과 노동자는 가려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MST(무토지농촌노동자운동)는 1984년부터 농지개혁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이에 정치인들은 농지개혁을 약속하지만 단 한 번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지주이자 자본가인 가운데, 현 정권에서는 토지와 주거에 대한 시위를 테러로 규정한다. 국가와 공권력은 법의 이름으로 이들을 삶터 바깥으로 내모는 일에 더 집중했다.
노동자와 농민들에겐 단 몇 초 만에 광활한 밭에 약품을 뿌리는 기계,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사는 자본, 합법의 이름을 지닌 공권력과 같은 권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잡초와 자갈만 있는 땅을 함께 일궈내는 힘, 한낱 땅에 불과했던 대지를 사람이 머물 수 있는 ‘집’으로 바꿔내는 이들이 함께한다. 이들이 일궈낸 공간은 앞으로의 삶을 도모할 수 있는 미래를 담아낸다. 그리고 자신의 의지대로 일하고, 먹을 것을 길러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게 나눌 능력까지 생산해낸다. 그렇게 땅속 깊이 박힌 이들의 투쟁은 매 순간 ‘성장’해나간다. ‘진짜 농지개혁’을 위해, ‘자유로운 고향’을 만들기 위해 저항의 결실을 만들어나간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리오에 있는 연방 플루미넨스 대학에서 영상을 공부했고, 프랑스에서 촬영을 전공, 파리로 이주하여 영상감독으로 2013년까지 활동했다. <무토지>를 통해 첫 장편 데뷔를 했다.
인권해설
“우리는 계속 농촌이 망가지는 걸 봐요. 독이며 온 데 퍼져있는 약품, 이제 마토 그로소에서 평등을 추구한다는 건 농업 개혁을 추구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땅이 권력의 원천이니까요. 이게 우리가 농업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영화 <무토지>중 무토지 운동 활동가의 말)
이탈리아 철학자 프랑코 베라르디(Franco Berardi)는 뉴욕에서 시작된 오큐파이 운동이 실패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이제 더 이상 권력은 ‘장소’가 아니고 금융시장을 지배하는 ‘숫자와 기호’에 있으며 물리적 공간을 점거하는 오큐파이 형태의 시위는 끝났다”고 말한다. 줄리안 어산지(Julian Paul Assange)처럼 권력자들이 구축한 정보를 해킹할 수 있는 자들이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갈 것이라고 말이다 (Franco “Bifo” Berardi, 2012, 2011). 이 주장은 금융시장이 삶과 정치를 지배하는 금융 자본주의 사회에서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며, 우리를 뉴욕에서 시작한 오큐파이 운동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러나 여전히 토지는 실질적인 권력의 장소이다. 그 장소는 소수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이윤을 위해 소수에게 지배된 토지는 황폐해져 가거나 비어 있다 (Park, 2017).
한 줌에 지나지 않는 이익을 위해 우리의 공통(the commons) 공간은 끊임없이 사유화되고 절단되었다. 물, 공기, 숲, 하늘 등은 모두에게 속하는 동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공통재이지만 (물론 이 영역들도 끊임없이 사유화, 민영화되고 있다) 유독 토지는 공통재가 아니라 사유재산으로 편입되면서 불평등을 재생산 해왔다. 금융전문가들도 다 이해하지 못하는 복잡한 금융 시스템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토지는 최고의 이윤을 남기는 수단이며, 토지를 가진 자는 곧 권력을 가진 자이다. 때문에 토지를 모두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허망한 것이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자 평등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 요구이다.
더군다나 농지는 음식을 생산하는 장소이다. 브라질의 무토지 운동은 단순히 땅에 대한 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땅을 살리기 위해 유기농 작물을 재배하고 자연이 건강하게 순환하기를 꿈꾸고 실천한다. 그래서 무토지 운동은 토지 평등에 대한 운동이자, 단종 재배와 유전자 조작, 농약사용을 거부하며 유기농 작물을 길러내는 생명운동이다.
영화 <무토지>는 이들의 철학과 정치뿐만 아니라 삶의 태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점거 운동을 보며 4대 강 공사로 땅을 잃어버린 두물머리 농부들, 핵발전소와 송전탑 때문에 삶의 터전을 잃은 밀양의 주민들, 영주댐으로 터전을 잃은 원앙새와 왕버들. 그리고 삶의 생태계에서 밀려난 청계천 기술자들과 구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점거 운동은 어렵다. 영화에서 나오듯 이것은 “주말 캠프”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스스로 텐트를 세우고, 자신이 기른 채소를 먹고, 근처에서 나오는 물을 마시고, 씻으며 직접 화장실을 세운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서 점거 운동을 해본 사람들은 이 과정이 얼마나 치열한지 안다.
<무토지>에 나온 주민들은 악에 받쳐 보이지 않았고 초조해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커피를 끓여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고, 토론하고, 논의한다. 평면 스크린이지만 그들이 쌓아온 신뢰가 느껴졌다. 이 모습이야말로 무토지 운동의 유산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작물이라고는 농약으로 기른 유전자 조작 사탕수수가 전부인 산타 엘레나 거리를 행진하며 “농약 없는 건강한 음식을 자녀에게 먹이는 꿈을!”이라고 외친다. 버려진 대지에서 직접 키운 유기농 채소를 시민들에게 나눠준다. 그들은 노래한다. “우리의 첫 번째 일은 점거, 일할 수 있는 빈 땅이 우리가 원하는 전부. 농민과 노동자가 뭉쳤네. 우리의 두 번째 일은 저항. 저항하고 유지하기 위해 조직하는 일. 농지개혁만이 있을 것! 농민과 노동자가 뭉쳤네. 사기꾼들아, 우리 땅을 돌려줘”. 이들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힘, 600가구 이상이 같은 대지 위에서 함께 점거 운동을 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기원한 것일까?
새로 취임한 브라질 대통령은 무토지 운동가들과 도시 운동가들을 탄압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땅을 오로지 투자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들처럼 땅을 자유롭게 하고 삶을 자유롭게 하는 상상을 감히 할 수 있을까?
은선(리슨투더시티)*
<참고문헌>
– Franco “Bifo” Berardi, 2012. The Uprising: On Poetry and Finance. Semiotext(e).
– Franco “Bifo” Berardi, 2011. After the Future. AK Press.
– Park, E., 2017. SKILLS OF OCCUPATION AND TECHNE OF SQUATTING: SIT-IN PROTESTS IN SOUTH KOREA SINCE 2009 18.
* 리슨투더시티의 대표를 맡고 있고, 내성천의 친구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에서 활동 중이다. 땅이 왜 폭력의 근원이 되었는지 궁금해서 리슨투더시티 활동을 시작했고 벌써 11년이 넘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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