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2012년, 18대 대선에서 국가정보원이 주도한 댓글 공작 사건이 일어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근거 없는 비판과 모함이라며 발뺌하는 여당 대선후보. 그러나 그 주장과 달리 국정원 직원들의 이메일과 텍스트 파일을 통해 국정원 대선 개입의 증거들이 속속 드러난다. 하지만 이에 대한 경찰의 조사 결과는 ‘공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음’이다. 2013년 12월 31일, 이남종은 대통령에게 공권력의 대선 개입에 대한 책임을 물것을 요구하며 서울역 고가에서 분신한다. 감독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잊혀가던 국정원 댓글 공작 사건을 다시 파헤치기 시작한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한 시민의 목숨을 바친 외침을 잊지 않기 위해, 공권력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를 기억하기 위해, 진실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프로그램 노트
2012년, 대한민국의 국가원수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가 치러졌다. 올바른 절차에 따라 선거가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지만, 그 뒤에선 국가의 조직적이고 불법적인 선거 개입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권력이 민주적인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민주적인 행위이다. 당시 여당의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어가며 정권유지를 꾀하였던 국가정보원은, 불법적인 댓글 공작과 여론 조작을 펼치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다. 국민들의 투표는 민주주의 안에서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듯했지만, 그 이면에선 국가가 이미 여론을 조작하며 표의 방향을 이끌어가고 있던 것이다.
가려진 줄 알았던 범죄의 정황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고 수많은 증거들이 밝혀졌다. 하지만 수사 결과는 ‘공작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음’이었다. 정부 여당과 경찰, 검찰 내부에서 수사 과정에 대한 탄압과 은폐가 지속되었고, 결국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었다. 국가권력이 저지르는 여론 조작은 선거 개입뿐만 아니라 진실 은폐로까지 이어졌다. 민주주의를 뒤흔들며 대통령으로 선출된 박근혜와 그 정권은, 집권 이후 국가의 이름으로 수많은 국가폭력을 자행했으며 국민의 생각과 표현을 조종하려 했다.
하지만 그러한 권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이후 국가권력의 범죄와 폭력에 대한 규탄, 저항의 목소리가 광장의 촛불과 함께 변혁의 파동을 만들어냈다. 국민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국가권력의 핵심인 대통령을 탄핵했다. 그동안 벌어졌던 국정원의 정치 공작도 촛불의 흐름 속에서 다시 밝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적막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다. 국가의 여론 조작과 선거 개입은 지금도, 앞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국가권력이라는 적막은 언제나 존재함을, 그와 동시에 절대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국민들은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더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일어나십시오.” 이남종의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잊지 않고, 우리는 국가가 만드는 적막에 소란을 피워나갈 것이다.
감독
이마리오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미디어활동가. 1998년 서울영상집단에 가입을 하면서 다큐멘터리 제작에 대한 것들을 배웠고 작품을 만들었다. 사회적 이슈를 공동으 로 작업하는 프로젝트 작업을 기획하고 참여했으며 독립영 화와 연관된 활동들을 했다. 2010년 강릉으로 내려와 미디어 센터에서 일했으며 이후 지역에서 다양한 미디어활동을 하였 다. 현재 강릉에서 작업과 미디어활동을 하고 있다.
인권해설
결국 2017년 8월 30일, 서울고법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장원장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4년을 선고했다. 2013년 6월에 기소된 이후 4년 만에 국가기관의 불법적인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단죄가 내려졌다. 원세훈의 국정원은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활동을 대북심리전이라는 이름으로 수행했다. 물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심리전을 수행할 근거는 없으며, 이는 국정원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다.
2016년 말 들불처럼 일어난 촛불 혁명은 결국 박근혜를 탄핵시키고 새 정권을 탄생시켰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그동안 제기된 국정원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재조사에 들어갔다. 2012년 대선 과정의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간첩 조작 사건, 박원순 시장 등 정치인과 시민사회에 대한 불법사찰, 보수단체에 대한 자금지원과 관제시위 동원, RCS라는 해킹 프로그램을 통한 인터넷 감시, 세월호 참사 관련 의혹,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 대한 뒷조사 등 국정원을 둘러싼 의혹은 한둘이 아니었다. 모든 의혹이 시원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국정원 개혁 발전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6개월간의 활동을 마무리하였다.
진실을 밝히는 것은 언제나 중요하다. 억울한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주고, 책임져야 할 사람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다. 국정원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앞으로 얼마든지 되풀이될 수 있다. 간첩 조작,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정치 개입과 사찰… 이런 일들은 애초부터 국정원의 직무는 아니었다. 문제는 국정원이 너무나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는 반면, 그 권한의 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 사회적인 감독 장치는 부재했다는 것이다.
서훈 신임 국정원장은 지난해 6월 취임과 동시에 국내 주요 기관을 출입하는 국내정보담당관(IO) 제도를 폐지하는 등 조직을 개편하였다. 의미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내부적인 조직 개편은 언제든지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 그동안 국정원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킬 때마다 수차례 ‘셀프 개혁’을 했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국정원의 권한 남용을 감독할 수 있는 외부적인 통제 장치다.
현재 국회에는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국정원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안은 그동안 내국인 사찰의 근거가 되어 왔던 ‘국내보안정보’, ‘대공, 대정부전복 정보’를 국정원의 정보수집 범위에서 삭제하였다. 그리고 폐지된 국내정보담당관(IO) 제도를 정권에 따라 부활시키지 못하도록, 법률로 금지하였다. 또한, 국정원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기 위하여 그동안 시민사회가 요구해왔던 정보감찰관 제도를 도입하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대한 예산 보고, 국정원장의 자료제출 및 답변 의무, 특정 사안에 대해 감사원의 비공개 감사 요구 등 국정원에 대한 국회 통제를 강화하였다. 그러나 국정원이 광범위한 권한을 가지고 상급기관으로 군림하며 각 부처의 정보 및 정보업무를 관할할 수 있도록 한 ‘정보 및 보안업무 기획 권한’을 그대로 두었고, 국정원의 직무에 사이버 보안과 관련된 권한을 새롭게 추가한 것은 문제이다.
과연 이번 정부에서는 국정원이 탈바꿈할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국회에서 국정원 개혁 법안이 통과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 정당의 반대도 만만치 않고 이러한 반대를 극복할 만큼 집권 여당의 의지가 강한지도 의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의 인터넷 댓글 여론조작 사건은 마무리되었지만, 국정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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