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시놉시스 : 2012년 4월, 대한문 앞에는 쌍용차 정리해고 이후 발생하고 있는 죽음의 행렬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함께 울고 웃으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대한문은 새로운 광장이 되어갔다. 그러나 1년뒤,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함께 2013년 4월에 천막이 철거되면서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구청은 분향소 천막을 막기 위해 대한문 앞 인도에 흙을 부어 대형 화단을 만들고 경찰은 24시간 화단을 경비하며 대한문을 지켰다. 그 과정에서 대한문 대통령이라 불리는 남대문 경찰서 경비과장 최성영은 온갖 법조항을 들이대며 집회 및 시위할 권리를 원천 차단한다. 인도에 앉아있는 사람의 사지를 들어 옮기고, 기자회견도 일인시위도 금지했다. 대한문에서 최성영 경비과장의 말은 그 자체로 법이었다. 대한문에서 만큼은 무소불위처럼 보이는 최성영을 보며 사람들은 ‘또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정말 최성영은 또라이라서 그런걸까? 그리고 최성영은 대한문에만 있는 것일까? / 연출의도 : [대한민국 헌법 제 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집회·결사의 자유는 공권력에 의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집행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2012 년 4월부터 시작된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농성이 1년째 되던 날, 분향소 천막이 있던 자리에는 흙이 부어지고 대형 화단이 설치되었다. 이 화단은 24시간 경찰병력에 의해 지켜졌고, 화단이 생긴 이후 대한문 앞에서 집회할 권리는 제한당했으며 더불어 인권도 사라졌다. 이 작업은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온갖 법적 근거를 대며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이 당연한 한 경찰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었던 대한문이 순식간에 청와대 다음으로 경찰병력 주둔이 많은 장소가 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찾고, 도대체 헌법에 보장된 집회·결사의 자유는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집회·결사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왜 중요한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고 싶다.
감독
이한 LEE Han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유명희(노동자뉴스제작단), 이한(칼라TV), 하샛별): 2012년 5월 결성, 2012년 8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1.0(Why we went to the Daehanmun?) 제작, 제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 제 17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2013년 11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2.0 제작, 제18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유명희 YOO Myung-hee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유명희(노동자뉴스제작단), 이한(칼라TV), 하샛별): 2012년 5월 결성, 2012년 8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1.0(Why we went to the Daehanmun?) 제작, 제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 제 17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2013년 11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2.0 제작, 제18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하샛별 HA Saet-byeol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유명희(노동자뉴스제작단), 이한(칼라TV), 하샛별): 2012년 5월 결성, 2012년 8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1.0(Why we went to the Daehanmun?) 제작, 제 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상영, 제 17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2013년 11월 대한문투쟁이야기 ver2.0 제작, 제18회 인천인권영화제 상영
인권해설
“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말을 건네는 그는 구사대였다.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이 두 달을 넘기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공권력과 무장한 경비용역 그리고 구사대에 의한 폭력이 이어졌고, 식량, 식수, 전기, 의료진 차단과 함께 노동자들의 고립이 길어져만 갔다. 식량과 생필품 반입을 요구하며 공장출입구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매일 밀고 당기던 그때, 그가 진심을 의심할 수 없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가슴이 덜컹했지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서 비키세요! 소리치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 후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평택으로 가서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해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의 고통을 쏘아붙이며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동료를 버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개 숙이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오히려 단단히 악을 쓰는 것으로 변해가는 구사대, 인간 밑바닥을 보는 것인가 절망을 줬던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로 신호를 줬던 그에 대한 나의 예의라 생각했나보다. 그게, 그렇게 내몰리면 그리 저지를지도 모를, 비참해지고 싶지 않은 우리를 위해 자신에게 거는 사람됨의 약속이자 용서.
“용서는 없다”
그 지옥 같던 여름을 길게 늘인 듯 몇 계절을 보낸 대한문의 어느 날, 분노한 사람들이 내건 말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아이히만을 보았다. 그가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저지르는 폭력과 멸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권리를 찾고자 하면 그와 동시에 ‘권리를 찾을 권리 없음’ 선언을 하는 국가에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대한문에 멈춰 섰다. 그리고 함께 하고파 찾아드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아이히만은 권리를 제한 할 수 있는 예외법조문을 구석구석 찾아와 읊조리며 추모와 애도의 시간과 장소를, 공존의 목소리를, 노래를, 몸짓을, 연대를, 사람됨의 선언을, 크고 작게 필요한 일상까지도 철저히 틀어막았다.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노동권 등 권리의 목록은 왜냐는 질문과 함께 결코 허용되지 않았고, 어이없고 간교한 폭력이 반복되었다. 힘껏 싸울수록 폭력의 강도는 높아져만 갔다. 가장 참담한 것은 누구든 그 공간에 뜻을 함께하는 순간 그는 시민이 아닌 이, 존재와 뗄 수 없는 권리를 박탈당한 이, 그렇게 취급해도 되는 이가 되어버리는 모멸감이었다. 그런 취급을 하는 국가와 임무라 하며 그 뜻을 수행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야한다는 공포와 함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보편적인 권리,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하고 인정하는 권리가 인권이라 했던가. 그 약속의 결정체를 자처하는 국가와 이를 수행하는 이가 우리의 온전함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국가범죄. 국제인권법 그리고 국제 선언과 원칙들이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비롯한 반인도적인 범죄와 그 수행에 연관된 행위도 범죄라 정하고 있다. 이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하기 이전에 우리의 존재기반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대한문을 지켜라’가 아이히만이 지니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인권을 구석구석 만들어가야 할 우리가 쏘아올린 저항의 신호이지 않았을까.
기선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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