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미치지 않도록 If Only Night Wouldn't Fall

작품 줄거리

당신의 하루가 분 단위로, 초 단위로 쪼개진다. 하루에 물을 몇 잔 마셨나요? 쉽게 겁에 질립니까? 질문에 답을 한다. 당신이 문자를 보내는 속도와 내용을 측정한다. 당신의 위치와 동선을 추적한다. 당신의 비만지수 보고 심장박동을 센다. 당신 집의 온도와 습도를 조정한다. 미세한 데이터를 모아 당신의 정신건강을 살핀다. 이 모든 일은 단 한 가지 목표,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프로그램 노트

영화 <당신이 미치지 않도록>은 네덜란드, 노르웨이, 미국에서 각각 진행되는 정신건강 증진 프로젝트와 이에 참여하는 인물을 각각 따라간다. 이 프로젝트에서 말하는 정신건강 증진이란 결국 정신질환/정신병을 ‘예방’하는 것이다. 꼼꼼한 설문과 상담을 통해,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스마트홈 등의 시스템과 기술을 통해, 미세한 개인정보의 축적을 통해, 인물의 정신건강은 분초 단위로 모니터링 된다.

언뜻 보면 무척 환영할 만한 신기술과 의학의 발전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시스템과 함께라면 불안도, 공포도, 우울도, 공황도, 편집증도 없어지는 것……일까?

이 시스템으로 정신질환이 정말 예방 가능한가 묻기 이전에, 예방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대해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정신질환을, 아픈 정신을, 아픈 몸을 피하려고만 하는가? 왜 아픈 사람을 배제하려고만 하는가? 아픈 몸은 아픈 몸의 방식으로 세상을 만날 수 없는 것인가?

각종 스마트 기기가 출현하고, 데이터가 수집되고, 의학연구가 발달할수록 사회는 ‘정상’과 ‘표준’을 더욱 정확하고 집요하게 보여준다. 여기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이는 치료되어야 하고 교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하거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든다”, “별다른 의미 없이 개수를 세어본다”, “쉽게 겁에 질린다”. 이 질문들 앞에 놓일 스펙트럼은 정상과 비정상으로 낱낱이 구분된다. 그러나 영화에서 말하듯 우리의 몸은 0과 1로, 숫자로, 정상과 비정상으로만 구분되지 않는다. 각각의 몸은 각각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것이 ‘미친’ 몸일지라도, 그렇기에, 그가 만나는 세상은 고유하며 존엄하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감독

마르크 슈미트

마르크 슈미트는 유트레흐트 대학에서 영화 이론을 공부하고 틸부르크 예술 아카데미에서 사운드 및 영화를 전공했다. 현재 그는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활동하며 영화 서사에 대한 프리랜서 강사로도 일하고 있다. 우리의 존재의 정신적 영역을 탐구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정상성에 대한 문제를 계속하여 다루고 있다. 직접적인 감정적 접근과 철학적 사고의 상호작용으로 특징되는 작품을 만든다.

인권해설

정상과 비정상은 얼마나 가깝고 멀까? ‘비정상’이나 ‘미쳤다’는 것은 시대와 문화에 따라 변화해 왔지만, 여전히 자주 간과 된다. 주지하다시피 책을 너무 많이 읽는 여성,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흑인 노예,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은 과거 ‘정신병자’였다.

또 한편 우리는 동일한 환경에서도 다른 감각을 느낀다. 여성과 남성은 같은 밤길을 다르게 걷고, 트렌스젠더와 비트렌스젠더는 화장실 앞에서 다른 고민을 한다. 밤길을 걷거나 화장실 앞에서 긴장감을 느끼거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은 ‘비정상’일까?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발표 할 때 더 많이 긴장하고, 누군가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 할 때 큰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긴장과 해방감을 어느 정도로 느끼는 게 정상인지 혹은 비정상인지 규정할 수 있을까. 

영화의 ‘웰빙 라이프 스타일 연구 프로젝트’는 인간이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는 비밀을 밝혀내겠다고 하며, 누구도 아프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개인의 심장박동수, 수면 시간, 문자를 보내는 속도, 불안을 느끼거나 부정적 생각이 드는 빈도를 포함해서 신체적 정신적 행동을 낱낱이 수치화한다. 영화에 나오는 10대 전후의 어린이는 잠드는 데 오래 걸리고 부정적인 생각이 자주 든다고 말한다. 그의 일상은 ‘문제적 증세’로 데이터화 돼서 집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어린이는 교사에게 말한다. 자신이 잠드는 데 오래 걸리고 자주 부정적인 생각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는 친구들과 같은 팀이 되고 싶다고. 아마도 자신의 ‘문제’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 사회가 그 어린이의 특성을 ‘문제’라고 규정하지 않고 ‘고유성’으로 수용했다면 어땠을까. 

해당 프로젝트는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 촛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정한 현상이 몸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구조적 맥락을 살피기 보다 ‘증세’로 포착하고, 그것을 치료하거나 교정하려고 드는 것은 질병을 개인화하는 위험을 높인다. 건강을 세포나 숫자에 한정시키며, 건강의 사회성과 연대성을 삭제 시키는 위험을 낳는다. 

사회는 개인의 건강권을 강조하며 개인의 몸을 정상과 표준에 맞춰 치료와 교정의 잣대를 끊이 없이 들이대고, 그럼에도 치료나 교정이 되지 않으면 ‘고쳐지지 않는’ 낙오 된 몸으로 남겨진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권 넘어 질병권(잘아플권리)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가 아플 때 의료적 개입이나 치료가 전혀 불필요 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파도 괜찮고 잘 아플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자고 말이다. 의료는 아픈 몸은 실패한 몸이라고 끊임없이 규정하지만, 우리에게 치료 되지 않는 아픈 몸은 ‘정상’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다른몸들의 구성원이자 조현병이 있는 동료는 수시로 환청을 듣고, 오랫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환청이 사라지지 않는다. 정신과에서 그는 치료 되지 않는 ‘실패한 몸’이지만, 그는 말한다. ‘내가 듣고 있는 목소리가 환청이라는 것을 안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이는 정신장애운동의 목소리 듣기 운동(Hearing Voice Movement)과 궤를 같이 하는 주장이며, 정신장애인은 ‘비정상적으로 정상적인 존재’라는 주장이다. ‘미친사람’은 ‘미친사람’의 감각으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감각하고 살아간다. 마치 어떤 농인들이 인공 달팽이관 수술을 원하지 않고 고유한 세상을 살고자 하듯 말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프로젝트 주장대로 누구도 아프지 않은 게 좋은 세상일까? 그러니까 모두 다 사회가 규정한 정상적인 몸, 표준의 몸으로 치료 되고 교정 된 이들이 가득한 세상. 즉, 불안하지 않고 안정된,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밤이면 금새 숙면에 들고, 아침이면 빠르게 일어나서 학교와 직장으로 정시에 달려가서 성실하게 요구를 수행하는 생산적인 몸들만이 가득한 세상 말이다. 질병권 운동에서는 이런 시도와 욕망을 반대해 왔다. 오히려 개인의 고유성이 존중받고 건강의 연대성이 살아 있어서, 아프거나 미쳐도 미안해하지 않으며, 차별이나 낙인 없이 잘 아플 수 있는 세상이 우리의 해방 된 미래에 가깝다. 

조한진희(다른몸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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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권이 보장되는 n개의 다른몸들이 존중 받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정상성’에 대한 질문과 페미니즘에 기반해서 질병, 젠더, 장애, 돌봄, 계급, 종차별등에 대한 교차적 사유와 느린변혁을 지향합니다.

826회 서울인권영화제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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