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월경은 여전히 숨겨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누군가는 생리대로 돈을 번다. 안전하지 않은 생리대로도 말이다. 한편 월경하는 몸이 겪는 고통은 지워진다. 유해화학물질 생리대 피해자들과 여성환경연대는 긴 싸움을 시작한다.
프로그램 노트
월경은 나와 내 몸이 처음 마주하기 전부터 터부시된다. 학교에서는 “깔끔하게 생리대 처리하는 법”은 알려줘도 월경 시 겪게 되는 오만 가지 아프고 귀찮은 일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생리대 광고에서는 흰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구름 위를 뛰논다. 피 한 방울 없는 산뜻함이다.
영화에서 짚 듯 생리대 산업은 “불황을 모르는 산업”이다. 월경하는 수많은 몸의 ‘생활필수품’이기 때문이다. 월경하는 여성은 반드시 생리대를 ‘소비’해야 한다. 유해화학물질이 있어도, 그로 인해 몸이 아파도, 이를 발견하고 조사를 요구해도 쉽지 않다. 생리대 제조 기업은 여성소비자를 주요 행위자로 여기지 않고, 국가는 이를 조사할 역량도, 제대로 된 안전 기준도, 피해 발생 시 대책도 없다. 월경하는 몸은 ‘표준’이 된 적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과 얼굴을 가진 피해자”들, 이들과 함께하는 여성환경연대는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치며 맞서 싸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연대하며 지난한 싸움 끝에 잠시 승리가 찾아온다. 영화에서 활동가는 말한다. 모두를 위한 월경권은 월경에서 출발해 모든 존재의 건강권으로 이어진다고.
현재까지도 정부는 생리대 안전성제조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누구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할 무언가를 자본의 논리로 충분한 검증 없이 생산하는 기업은 너무 많다. 지난 봄에는 같은 제조사의 사료를 먹은 고양이 수십 마리가 정체불명의 급성질환으로 사망했지만 납득할 만한 조사는 진행되지 않았다. ‘표준’이 아니라서, ‘중요’한 소비자가 아니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떤 몸의 불안과 고통은 삭제된다.
하지만 우리의 몸들은 말하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다른 몸들을 만나고 연대하며 끊임 없이 저항할 것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요다
감독
망원동에 사는 에코페미니스트이자 쓰레기덕후. 여성, 생태와 관련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업을 이어가며 <쓰레기덕후소셜클럽>(2019)과 <우린 일회용이 아니니까>(2020)를 연출하였다.
인권해설
2017년, 여성환경연대는 깨끗한나라의 릴리안 생리대를 사용하고 월경통의 증가, 월경 주기의 변화, 덩어리혈 증가, 외음부 통증 등의 증상을 경험한 5,287명의 청구인과 함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식약처는 전수조사 결과 제품 일부에서 휘발성 유기화합물 성분이 검출되었으나 기준을 초과하지 않아 안전하다는 발표를 했고, 1심 재판부는 청구인들이 경험한 증상이 제품에 포함된 유해 물질로 인한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없고, 위험 표시에 대한 관련 법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어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깨끗한나라는 여성환경연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여성환경연대는 증거 없는 집단 소송과 공론화로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의도를 의심받았고, 국회에서는 기업의 책임이 아닌 여성환경연대의 책임을 묻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2021년 11월이 되어서야 깨끗한나라가 여성환경연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 역시 기각되었으나 이 일련의 과정은 그 자체로 국가와 기업이 여성들의 건강에 얼마나 무지하며 무책임한지를 드러낸 한 편의 부조리극 같았다.
한편,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2018년에는 생리대 포장지에 제조시 사용된 모든 성분을 표시하도록 의무화되었고, 식약처는 휘발성유기화합물에 대한 가이드라인과 안전기준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친환경’, ‘안전’을 내세운 고가의 생리대 제품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월경권’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되기 시작하면서 지자체에서 관련 정책과 사업이 진행되기도 했고, 면생리대나 월경컵 등 다양한 월경용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 생리대 표시되는 성분 중 실제 위험성이 높은 성분에 대해서는 정작 구체적인 표시 기준이나 의무가 없고, 소비자는 여전히 이를 알 길이 없다는 점,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에 기업이 고가형 생리대를 내세우는 전략으로 대응하면서 결국 안전에 대한 선택은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진 상황 등은 애초에 이 문제 제기가 시작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정부와 기업이 이처럼 여성들을 ‘소비자’로만 인식한다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월경에 대한 권리는 단순히 월경용품의 사용이나 ‘아프면 하루 쉬는’ 정도의 권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월경을 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신체 조건과 삶의 조건 속에서 공부하고, 일하고,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몸, 노동환경, 생활 여건에 따라 필요한 용품도, 월경 기간을 보내야 하는 시간이나 공간 등의 상황도 모두 다르다. 월경은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이며, 월경 건강은 자궁, 난소 질환을 포함하여 호르몬과 관련된 신체적, 정신적 건강 전반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노동, 교육, 생활 환경은 그 자체로 월경 건강에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월경에 대한 권리와 안전은 월경용품의 안전성과 가격, 보급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건강권이자 동시에 노동, 주거, 교육 등에 대한 사회적 권리인 것이다.
너무 오랫동안, 그리고 여전히 여성의 몸은 사회적인 몸으로 인식되어 오지 못했다. 생리대 안전성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한 여성들의 몸은 유해 물질의 영향에 대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여성들의 몸을 대하는 국가와 기업, 이 사회의 편협한 인식과 무지, 무책임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여성들의 몸이 이제는 더 이상 증명을 요청받는 ‘증거’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월경권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더 크게 확장되어야 한다.
나영(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모두에게 성건강, 성적권리, 재생산건강과 재생산정의가 보장되는 사회를 바라며 활동하고 있다.
*2023년 28회 인천인권영화제 프로그램에서 재수록하였습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2015년 한 해 동안 진행된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사업을 통해서 만난 활동가, 연구자, 변호사, 의사들이 2016년에 결성한 “성과 재생산 포럼”을 전신으로 하여 2019년 10월에 설립되었습니다. 국내 최초로 성별, 연령, 장애, 인종, 국적,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등에 관계 없이 모두에게 성 건강 전문 상담과 의료지원, 포괄적 성교육 접근성을 보장하고, 이를 위한 법과 정책을 연구하는 통합 센터를 지향합니다. 누구도 차별 받거나 배제되지 않고, 자유롭고 건강하게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누리며 충분한 정보와 평등한 자원을 바탕으로 서로의 역량을 키워나가는 사회를 만들고자 합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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