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파는 할머니

작품 줄거리

제작:다큐인

“전쟁 중에 일선의 군인을 위안하기 위하여 성의 도구로 동원된 여자” 위안부의 사전적 정의. 군산의 한 기지촌에 유일한 한국여성은 60세를 넘긴 할머니들뿐이다. 최근 필리핀이나 러시아에서 들어온 ‘인터걸’들이 한국 기지촌여성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업’ 중이고 40여년을 기지촌을 따라 흘러다닌 할머니들만 이 곳에 남은 것이다. 할머니들은 ‘기름값’이라도 벌어보려고 밤마다 클럽을 돌며 꽃을 팔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여성들 ‘가족을 먹여살리려면 그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기지촌 여성이 된 것처럼 할머니들 역시 먹고살기 위해 기지촌을 찾게 되었다. 할머니들이 스스로를 위안부라고 부르지만 이러한 ‘자발성’ 때문에 기지촌 여성을 ‘위안부’라고 칭하지 않는 것이 세간의 상식이다. 그러나 감독은 “강제적 동원을 반드시 물리적 차원에서만 해석해야 하는가”라고 작품 전반을 통해 문제 제기하고 있다. 휴전이라는 또다른 전시상황, 미군의 주둔, 부대 내 성병진료소를 설치해 기지촌 여성들을 진료하는 것, 무엇보다 생명을 위협하는 가난 등을 들어 작품은 정부가 ‘공창’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80년대만 하더라도 정부 기관이 기지촌 여성들을 모아놓고 산업일꾼이라고 추켜세우고 성병교육을 했다는 증언은 기지촌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고 영화는 꼬집는다. 100불을 벌면 그 중 80불은 포주에게 바치며 살아야 했던 이 할머니들은 이러한 착취와 함께 사회적 멸시와 냉대 때문에 그렇게도 지긋지긋한 미군기지를 떠나지 못하고 시든 화초처럼 생을 마감하고 있다. <인권영화제 >

Like제4회 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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