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오랜 사랑 First Love

작품 줄거리

‘영희’는 ‘순정’과 여고 시절부터 평생을 약속하고, 40년이라는 긴 시간 서로의 삶을 섞어 왔다. 그런 두 사람의 ‘40년’을 너무나도 무력하게 만드는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 영희는 이것을 이유로 순정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한다. 20년 동안 두 사람만의 공간이었을, 둘이 함께 마련해서 지내던 아파트 또한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켜내지 못한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린 순정의 마음을 반영하듯,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40년 세월을 상징하듯, 아파트는 무너져 내린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아파트에는 두 사람의 삶이 섞이기 시작한 순간인, 여고 시절의 두 사람이 있다. 이 극영화는 ‘나의 미래’, 또는 ‘내 친구의 미래’에 언제든 성큼 다가올 것만 같은 다큐멘터리이다.

이렇듯 어떤 위치에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이 영화가 픽션임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논픽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반면 누군가에게 이 영화는 주인공들이 이른바 ‘탈성애화된’, ‘할머니들’인 픽션, 그렇기에 ‘거부감 없이’ 볼 수 있는, ‘그저 픽션일 따름인’ 영화로도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부디 이 영화가 ‘지루한’, 낯익은 ‘할머니들’이 나오는 영화로‘만’ 다가가지 않기를.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보경

인권해설

3년 전, 한 뉴스를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40년간 함께 살아 온 여고 동창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6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친구’가 암 판정을 받고 입원한 이후 ‘친구’의 친척이 아파트 열쇠를 바꾸었고, 새로 집을 구해 살다 아파트에서 투신해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두 사람의 깊고 오랜 우정으로 비춰졌던 이 사건에서, 우린 이 관계에 제대로 이름붙이고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제대로 이름붙이지 못한 사랑과 죽음. 이 두 여성의 삶은 부부, 사랑과 같은 평범한 단어로도 불리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또 다른 레즈비언의 사례도 있다. “작년 초에 내 파트너가 갑작스레 병원에 실려가 입원을 하게 되었다. 한밤중에 입원 동의서를 쓰려고 했는데, 우리가 가족 이상의 사이라고 말을 해도 병원 측에서는 둘은 친구사이여서 사인을 할 수 없다고 못을 박았다. 어쩔 수 없이 친한 게이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그가 남편인 것처럼 말을 해서 입원을 할 수 있었던 웃지 못할 일이 있었다.”1)

「한국 LGBTI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에 참여한 성소수자의 67.5%(2,132명)가 파트너와의 삶에서 필요한 제도로 ‘수술 동의 등 의료 과정에서 가족으로서 권리 행사’를 꼽았다. 이것은 그/녀가 아프고 병들었을 때, 친구가 아닌 가족, 연인, 부부라는 이름으로 곁을 지키려는 투쟁과도 같다. 이 영화는 현실이며,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이름 붙여지지 못한 사람과 관계에 이름을 붙여주려는 시도이다.

 

정현희 (가족구성권연구모임)

 

1)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동성애자 가족구성권자료집』, 2006

35나중은 없다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특별상영작코로나19 인권영화제21회 서울인권영화제가족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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