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프실 Gipeusil

작품 줄거리

기프실은 4대강 사업의 하나인 영주댐 건설로 수몰될 마을이다. 물에 잠긴 학교가 잘 떠올려지지 않는 봄이의 마음과, 집이 뜯길 거라는 생각에 서글픈 할머니의 감정과 달리 영주댐은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들이 복잡스럽게 모여 잔치를 벌이던 할머니 집도, 마을 사람들 모두의 발길이 닿았을 평온 정류장도 굴착기 앞에서는 전부 모래가 되었다. 희뿌연 연기가 지나가자 어렸을 때부터 오갔던 기프실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할머니는 기프실에서 그랬듯 새로운 터에서 흙과 함께 할머니의 자리를 찾는다. 그곳이 낯선 지역이고 도로 옆일지라도 개의치 않고 참깨를 심는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새로운 땅에 무언가를 심고, 이야기하고, 카메라로 보며 기억해나간다. 많은 이야기를 가지고, 가질 수 있던, 하지만 지도상으로만 남아있는 ‘기프실’을.

프로그램 노트

국가경제개발, 수해 예방, 수자원 확보, 수질 개선이라는 목표 아래 4대강 사업이 시작되었다. 사업계획에 따라 주요 4개 강인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 주변에는 댐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허술하게 진행되었던 4대강 사업은 그 지역에 있던 자연환경, 문화재를 수몰시켰다. 사람들도 더 이상 그곳에서 살 수 없었다.
기프실 마을 또한 4대강의 마지막 사업인 영주댐 건설로 인해 사라질 마을 중 하나이다. 하천이 깊다 하여 기프실이라고 불리던 이곳은 더 이상 예전의 모습을 띠고 있지 않다. 영주댐이 마을 깊이까지 들어오는 내성천을 막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기프실은 이제 사람이 드문 곳이 되었다. 버스정류장에는 더 이상 기프실을 경유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있다. 새마을 운동이 진행될 때에도 보존했던 내성천의 고운 모래는 이제 딱딱하게 변해있다. 할머니는 이사 가는 것이 서글프니 묻지 말라고 한다. 내 삶이 깃들어 있는 공간을 떠나는 일은 이토록 쉽지 않다. 기프실 사람들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가도 마을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땅을 일구고, 나물을 캐면서. 그러나 그곳이 기프실과 같은 공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기프실을 발전을 위한 도구로 쓰지만 기프실 사람들에게 이 공간은 매일 등교하던 학교가 있는 곳이고, 힘들게 가꾼 집이며, 10년 동안 살았던 마을이다. 사람들의 손길과 자연의 흔적이 닿고 닿아 만들어진 이곳은 숫자로 환산될 수 있는 걸까. 국가경제개발이라는 목표 아래 삶터가 사라져도 되는 걸까. 마을 사람들의 삶과 분리되지 않는 이 공간을, 국가가 떼어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영상 속 사라져 가는 이 마을을 기억한다. 나와 이 공간은 완전히 분리되지 않음으로.

감독

문창현 MOON Chang-hyeon

문창현

오지필름에서 활동하고 있다. 춤추는 걸 좋아한다. 나의 리듬이 듬뿍 담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다.

인권해설

길이 아닌 포장도로를 거친 손으로 환영하던 시절. 갯벌을 매립해 국토를 넓히는 게 자랑이던 시절. 골짜기 곳곳마다 세워진 댐들을 소풍으로 찾아다니던 시절. 그런 시절은 분명 있었다. 하지만 개발이 마냥 아름다운 시절은 갔다. 개발이 발전으로 환원되던 시절은 진즉에 끝났다. 멀미 나는 길을 돌고 돌아 우리는 기꺼운 마음으로 거친 식단을 일부러 찾아다니고, 느림의 미학을 트렌드로 받아들이며 콘크리트 같은 인공 구조물 대신 풀과 나무와 흙이 각광받는 시절에 살고 있다. 뭘 해도 앞머리에 ‘친환경’이란 말이 붙어야만 한자리할 수 있는 시절을 우린 보내고 있다.

그런데, 기어이 시곗바늘을 뒤로 돌린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있던 댐도 철거하는 시절에 16개의 댐을 한꺼번에 세우고야 마는 사람들. 무엇보다 자연생태계를 중시하고 자연하천을 추구하는 지구의 흐름 속에서, 준설로 강바닥을 파내 강줄기를 일자로 만들고 콘크리트 구조물을 강에다 처박고야 마는 사람들. ‘4대강 사업’의 비극은 우리 강을 망친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살아내는 시절을 거꾸로 뒤로 밀어내기까지 했다. ‘4대강 사업’이 자행된 우리 강은 더는 지금 우리의 시절이 아니다.

홍수를 막겠다고 시작했지만, 정작 홍수와 상관없는 곳에 댐을 만들었다. 가뭄을 막겠다고 시작했지만, 정작 가뭄과 상관없는 곳에 물을 가뒀다. 수질을 개선하겠다고 시작했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우리는 홍수에 도움 되지 않는 댐에다가 가뭄에 쓸 수도 없는 썩은 물을 이만큼이나 가둬서 가지고 있는 셈이다. 자랑이라면 자랑이겠다. 하지만 상식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목적한 바를 단 한 개도 ‘4대강 사업’은 이루지 못했다. 22조 원이라는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간 국책사업이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초과 노동, 철야 작업 등 과도한 속성 공사로 사망한 노동자만 21명이다. 과연 21세기에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어부들을 몰아냈다. 물길이 막힌 강은 더는 강이 아니기에 강에 살던 물고기들은 제 살 곳을 잃어버렸고, 그 물고기들을 쫓던 어부들 역시 이젠 설 곳이 없다. 강을 터전으로 삶을 일구던 농부들을 몰아냈다. 여울과 모래톱을 벗 삼아 농사짓던 곳은 수로처럼 일자로 뻗은 강과 콘크리트로 뒤덮인 둔치가 대신하고, 농부의 땀은 어제의 영화로 기록으로만 남는다. 그리고 두물머리의 사람들처럼 기프실의 사람들처럼 이네들이 쫓겨난 흔적도 도통 찾아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일까.

‘4대강 사업’으로 극소수의 사람은 돈을 불렸겠지만, 누군가는 죽음을 맞았고, 또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에겐 ‘4대강 사업’이 가져온 비극과 슬픔을 치유해야 하는 숙제가 남았다. 질문이 처음부터 틀렸던 것이다. 다시 물어보자. 그렇다면 ‘4대강 사업’으로 우리가 잃은 것은 무엇인가. 이제 영화를 보시라.

정규석(녹색연합)

1723회 서울인권영화제삶의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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