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장 A Memory in Three Acts

작품 줄거리

모잠비크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잡혀가 강제 용역에 동원된 사람들, 그곳에서 독립을 꿈꾸었던 사람들, 그러다 경찰에 발각되어 고문당한 사람들, 같은 모잠비크인을 살해해야 했던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침묵해야 했던 사람들. 포르투갈이 모잠비크를 식민 지배한 시대 속 삶의 모습이다. 이는 모잠비크 독립투쟁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기억의 증언과 장소는,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감독과 만나 현재의 한 부분이 된다.
기억들은 “식민지의 유령”이 되기도 하고, “폭력의 기억”이 증언으로 다시금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며, 폭력의 장소는 “폐허 속 기억”이 되기도 한다. 이 기억들은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과 현재를 이어주는 집단기억으로, <기억의 장> 속 세 장의 제목이 된다. 이 ‘기억의 세 장’은 지금 우리의 ‘기억의 장’에 펼쳐진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레고

프로그램 노트

기억은 어떻게 작동할까. 기억은 과거의 반영일까. 공동체에서 기억은 어떻게 작동할까. 집단기억은 무엇을 말할 수 있게 할까. 영상은 기억을 어떻게 담을 수 있을까. 모잠비크에 대한 포르투갈의 400년이 넘는 식민지배에 맞서, 1962년 부터 1975년까지 모잠비크 독립투쟁이 있었다. <기억의 장>은 이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지금은 폐허가 된 모잠비크의 장소를 담는다. 말해지지 못했던 기억을 풀어내고 그 기억이 부착된 장소들로 시선을 옮기는 것은, 단선적으로 서술된 역사를 반복하는 게 아니다. 억압되었던 기억들은 “식민지의 유령”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고, “폭력의 기억”이 증언으로 다시금 우리를 괴롭히기도 하며, 그 폭력은 “폐허 속 기억”이 되어, 기억들과 기억의 장소들은 그 시대를 살지 않았던 감독과 만나 현재의 한 부분이 된다. 이 기억들은 모잠비크 공동체에게 ‘집단기억’으로, 박제된 과거의 사실이 아닌 살아있는 기억으로 재현된다. <기억의 장> 속 세 장막의 이름은 그렇게 과거와 현재를 잇고 그 관계를 규명하는 도구로, 과거의 반영이 아닌 현재가 된다. 그렇게 ‘기억의 세 장’은 지금 우리의 ‘기억의 장’에 펼쳐진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이나델소 코사 Inadelso Cossa

이나델소 코사

이나델소 코사는 2007년부터 모잠비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독립 영화 제작자이자 프로듀서다. 실험적인 단편들과 창의적인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한편, 국제적인 영화 프로젝트에도 공동제작으로 참여한 바 있다. <기억의 장>은 그의 첫 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는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최초로 상영되었다.

인권해설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망각과 싸움’이다. 다들 알다시피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인간도 기억도 기록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기억되기를 바라고 어떤 이들은 심지어 불멸을 꿈꾼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를 통해, 거대한 구조물과 초라한 비석을 통해, 그리고 기록을 통해 인류는 역사를 만들어왔다. 인간이 이루어질 수 없음에도 영원히 기억되기를 욕망하는 까닭은 자신의 존재, 자신의 행위, 자신의 삶이 의미 없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왜곡과 싸움’이기도 하다. 온전한 기억이란 없다. 개인의 성향,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정치적,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기억은 잊혀지기도 하고 입맛에 따라 편집되기도 한다. 굴절되고 변현(變現)된 기억을 고스란히 기록할 방법 또한 없다. 기억을 기록하는 것은 왜곡 없는 기억을 통해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어떻게 기억이 왜곡되었는지를 통해 진실에 다가서고자 하는 노력이다. 기억이 기록되지 않는 한, 나의 기억이 우리의 기억이 되지 않는 한 어떤 불화나 갈등도 거기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다.  공동체는 기억의 공유를 통해 지속될 수 있다. 공유된 기억이 없는 공동체는 위험하다. 한편 하나의 기억만을 공유한 공동체, 단일한 기억만을 강요하는 공동체는 더욱 위험하다.

기억을 기록한다는 것은 ‘권력과 싸움’이다. 조지 오웰은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고 썼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역사교과서 논란은 권력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며 역사와 교육이 기억의 정치 현장임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가만이 아니라 어떤 공동체든 집단기억으로 무엇을 채택하고 공인할 것인가는 치열한 정치 투쟁이고 권력 다툼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120여 년 전 밭을 갈던 농민이 무슨 생각으로 전봉준 옆에서 죽창을 들었는지 알지 못한다. 3.1운동에서 민족대표 33인의 생각은 알 수 있어도 같이 태극기를 들었던 넝마주이의 생각은 알 길이 없다. 4.19의 희생자는 대학생보다 도시빈민의 비중이 압도적이었음에도 여전히 ‘학생의거’로 기억된다. 국가 권력에 의해 공인된 역사뿐만이 아니라 국가폭력의 피해자 담론 속에서도 소수자의 기억은 무시되고 배제되기 쉽다.

모잠비크 저항운동에 대한 기억을 기록한 <기억의 장>은 고통스러우면서도 소중한 이야기다. 거기에는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고 지금은 망각과 싸우고 있는 이들이 등장한다. 카메라는 침묵한 채 폐허가 된 콘크리트 건물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 그 이야기를, 그 기억을 이제 나는 기억하려 한다. 그와 함께 그 기억들이 왜 그동안 기록되지 못했는지, 왜 이제야 이야기되고 기록되는지 나는 궁금하다.

강곤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

1422회 서울인권영화제

리뷰

영화를 함께 보는 사람과 나누고 싶은 말을 남겨주세요.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도 좋습니다.

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