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줄거리
참사는 왜 기억되고 기록해야하는가? 애도를 위한 공간은 왜 중요한가? 철거 위기에 처한 서울시의회 옆 세월호 기억공간, 당시 단원고 교실의 형태를 복원해 기록한 4.16기억교실, 왁자지껄한 추모공원을 꿈꾸지만 공사가 계속 미뤄지는 생명안전공원. 이 세 기억공간의 위기와 탄생 사이에서 함께해 온 사람들을 통해 질문의 답을 찾아본다.
프로그램 노트
기억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꿈을 위해 10년의 세월을 버티고 싸워온 공간들이 있다. 영화는 이 공간들을 돌보고 만들며 투쟁해온 사람들을 만난다.
광화문의 단식투쟁 천막에서 시작된 기억공간인 ‘기억의 빛’, 세 번이나 이전을 했지만 시민들의 힘으로 학생들의 흔적을 지켜낸 ‘기억교실’, 희생자들이 올라왔고, 가족들이 기다렸던 팽목항에 설치된 ‘팽목기억관’. 이 세 공간은 모두 ‘기억’이라는 단어를 포함하고 있다. 참사의 기억은 기록이 되고, 기록은 시민들에게 다시 기억을 남긴다. 이렇게 모인 애도의 기억들은 이와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기억과 추모의 공간은 시민들과 가장 가까운 공간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취지로 4·16생명안전공원을 안산시의 화랑유원지에 조성하고자 한다. 시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며, 뛰어노는 공간에 4·16생명안전공원을 건립하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안전사회는 어떠한 것인지, 그리고 자신의 꿈은 무엇인지 함께 감각하며 생각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그러나 2019년에 설립이 확정되었던 4·16생명안전공원은 지지부진한 행정으로 아직까지 미뤄지고 있다.
한마디로 ‘기억투쟁’이다. 영화 <기억의 공간들>은 이제 이태원과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마주한다. 사회적 참사와 재난이 계속되고 아픔이 반복되는 지금,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진정한 애도와 안전사회에 대한 상상을 해보길 제안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두부
감독
마주하며 살고 싶어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습니다.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을 통해 <비둘기는 언제나 당신 곁에>를 제작하며 연출을 시작했습니다.
인권해설
타자들과 함께 슬퍼할 용기
입안 가득히 침묵을 머금고 울고 있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이 서 있던 곳은 단원고 4.16기억교실이었고, 세월호 참사 후 10년이 흐른 때였다. 그 자리에서 노란조끼를 입고 기억교실의 지킴이이자 해설사 역할을 했던 단원고 희생자 어머니의 표정은 단단해 보였다. 우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노란 조끼를 입은 어머니는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은 나도 입을 꼭 다문 채 그곳에서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4.16기억교실을 처음 간 것도 아니었는데 갈 때마다 이 공간은 나에게 새로운 말을 건넨다. 나는 교실 한쪽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보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슬픔에 안도감을 느꼈다는 표현이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같은 공간에서 슬퍼하고 있다’라는 감각은 ‘나’에서 ‘우리’라는 단어로 인식의 확장되는 경험을 갖게 했다.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는 세월호 참사 앞에서 무뎌지거나 무감각해지지 않고 슬픔을 통과하고 있다는 것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타인의 슬픔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애도의 유효기간을 두고 슬픔을 억압하던 말들에 대항하는 정동이 느껴졌다. ‘우리’를 이루는 사람들이 추상적인 존재들로 느껴지지 않고 매우 구체적인 사람을 다가왔다. 그것은 기억공간을 지키기 위해 기억 투쟁을 해왔던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경험이었다.
기억공간이란 그런 곳이다. 시간이 흘러 참사의 공포와 비통함을 경험하고 목격한 사람들이 사라지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재난의 ‘물리적인 증인’으로서 다음 세대에게 잊어서는 안 되는 것들에 대해 말해주는 곳이다. 그리하여 참사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참사의 목격자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타자의 기억이 나의 기억이 되고, 또 다른 타자와 나를 연결해주는 기억의 연결고리는 집단기억이 되어 느슨하지만 강한 연대를 만들어내는 힘이 된다.
그러므로 재난의 기억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지도에 점 하나가 생기는 단순한 표식의 의미가 아니다. 기억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은 재난 이후, 법과 진상규명의 영역에서는 충족시킬 수 없는 희생자들에 대한 존엄성과 재난을 직간접적으로 맞닥뜨려야 했던 사람들의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이다. 세상은 법과 돈으로 움직이는 듯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결코 재난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 기억공간이다.
다큐멘터리 <기억의 공간들>에 등장하는 호성어머니 정부자님은 ‘아픈 사람들끼리 뭉쳐봅시다.’라는 말을 한다. ‘아픔을 희망적이고 안전한 세상을 만드는데 써보자’라는 말 속에는 ‘용기’라는 뼈대가 존재한다. 아픔을 무릅쓰고 세상 밖으로 나와 싸웠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용기가 없었다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끔찍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등골이 선다. 실제로 세월호 운동이 만들어낸 수많은 ‘최초의 사례’들은 다른 재난참사들의 피해자들에게 어두운 길을 걷게 하는 등불이 되고 있다.
영화에는 세월호참사 유가족뿐만이 아니라 그들의 곁에 있는 타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기꺼이 참사를 이루는 슬픔을 보길 원하며 타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넘어 다정한 연결선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재난피해자와 피해자의 곁에 서서 함께 울고 웃을 결심을 한 타자들은 단원고 4.16기억교실을 만들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세월호 10주기 기록집 『520번의 금요일』에서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장 정부자님은 ‘진상규명하느라 교실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을 때, 교실을 남겨달란 요구가 부모의 욕심으로 비칠까 망설일 때, 시민들이 먼저 교실을 남겨야 한다’고 나섰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한다. 4.16기억교실은 유가족들과 시민들이 기억 투쟁을 통해 지켜낸 곳이다.
이제는 화랑유원지에 조성될 4·16 생명안전공원의 차례다. 2021년 당장이라도 착공을 시작할 것 같았던 ‘4·16 생명안전공원 선포식’ 이후 몇 년째 공사가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는 4·16 생명안전공원은 365일 시민들로 활기찬 기억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더불어 우리에겐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와는 무관하게 세월호 참사 앞에서 마음껏 슬퍼하고 우는 것을 사과할 필요도 없는, 그럼에도 다시 웃고 오늘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억공간이 필요하다. 우리 또한 가라앉던 세월호를 봐야 했던 참사의 목격자이며 동시에 피해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기억하는 공간이 엄숙하고 무거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넘어 사람마다 가진 다채로운 마음으로 기억의 과정을 보다 입체적으로 만드는 일은 여전히 우리의 몫일 것이다.
권은비(미술가, 10.29 기억과 안전의 길 예술감독)
권은비
세상의 가장자리에 흩뿌려진 말의 조각을 모아 형상을 만드는 것이 미술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이주노동자, 국가폭력피해자, 산재, 재난피해자들의 삶과 이야기를 공공장소에 남기고 새기는 일을 하고 있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화두로 자본, 정치, 사회, 국가, 식민 등에 대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며 대다수의 예술프로젝트를 지역주민 또는 관객들의 참여와 협업으로 만들어왔다.
엄마여서 화가나고 아프고 무너지고 어른으로서 미안하고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라 어리둥절했던 그날을 이렇게 다시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