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The Wait

작품 줄거리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로 도망쳐 온 록사르의 가족은 망명을 신청한 후 수년을 기다림 속에 살고 있다. 학교에서 배운 덴마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풋볼선수로 활약하면서 덴마크 사회에 자연스레 섞여든 록사르에게 ‘집’은, 물론 덴마크다. 아프가니스탄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겨운 ‘죽음의 땅’일 뿐. 그러나 가족이 망명을 신청한 지 6년이 지나도 정부로부터 대답은 돌아오지 않고, 언제든 경찰이 들이닥쳐 그들을 내쫓을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를 불안하게 한다. 오랜 시간 쌓아온 삶이 일순간 무너질 수도 있는 상황에서,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당국의 허가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불면의 밤이 계속되고, 내일조차 가늠할 수 없는 록사르는 다음 달 계획을 묻는 친구에게 대답할 말이 없다. 그렇게 록사르의 마음속에는 치유되기 어려운 응어리가 쌓여간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심지

프로그램 노트

그 어느 곳에서도 ‘집’을 갖지 못하고 이방인으로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덴마크로 도망쳐 온 록사르의 가족에게 고향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악몽의 땅’이고, 6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삶을 꾸려온 곳은 언제든지 그들을 다시 추방할 수 있는 ‘이국 땅’이다. 한 국가의 시민으로,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  끊임없이 기다려야 하는 삶은, 언제든지 이 곳에서 쫓겨날 수 있다는 불안이 지배하는 삶이다. 망명 허가를 내리지 않는 당국은 그들에게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그 자격이 무엇인지조차 불분명하다. 정규학교를 다니면서 배운 덴마크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풋볼선수로 활약하면서 덴마크 사회에 자연스레 섞여들었으며, 아동권리협약에 의해 특별히 보호받는 록사르조차도 단단한 벽 앞에 무력하기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다. ‘내가 이 땅에 살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만으로 ‘나의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는 것, 그리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환영받고 존중받는다는 확신이 없을 때 ‘나의 삶’을 온전히 꾸려나간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영화는 여실히 보여준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감독

에밀 랑발 Emil Langballe

에밀 랑발

에밀 랑발은 덴마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감독 겸 프로듀서다. 여러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상들을 제작해왔으며, <기다림>은 에밀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인권해설

난민협약상의 이유로 고국을 떠났다면 그 자체로 난민이지만,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에 정착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이다. 난민들은 자신이 난민인지 아닌지를 해당 국가로부터 확인받아야만 한다. 아프간에서, 시리아에서, 예멘에서 혹은 콩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 세계가 다 안다 하더라도.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뿌리 뽑혀 나온 사람들에게 당국의 결정을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리 짧다 한들, 불안으로 그 뿌리를 말려버리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곳에 뿌리내릴 수 있을지 없을지 또는 뿌리를 내려도 될지 안 될지, 허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 누구도 내일을 꿈꾸지 못한다. 자신들의 나라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왜 자신이 그런 일을 겪고 떠나야 했는지를 물을 사이도 없이, 돌아가지도 머물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기다림 외의 다른 선택지는 없다.

한 해 1,600만 명이 난민이 되는 세상(유엔난민기구, Mid-year Trends 2016).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해 1994년부터 난민신청을 받기 시작한 한국에도 작년 한 해 7,542명의 난민신청자가 있었다. 이 중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98명뿐이다. 1.5%라는 인정률은 ‘난민’이라는 삶이 99%의 절망과 눈물, 그리고 불안으로 이루어짐을 숫자로 보여준다. 1%의 희망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가? OECD국가들의 평균 난민 인정률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이 숫자는 희망이 아닌 ‘가망 없음’의 또 다른 말이다.

첫 번째 불인정, 이의신청에 대한 불인정, 법원에서의 패소, 패소, 또 패소. 가망이 없다는 걸 이토록 여러 번 확인받아도 갈 곳이 없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월남 난민의 자녀인) 그는 자신의 뿌리를 잃어버렸고, 그의 조국은 사라졌다. 그의 부모님은 미국이라 불리는 새 조국에서 발음도 똑바로 못하는 바보였다. 그는 바깥세상에 홀로 직면해야 했다.

_후마타카 마츠오카, <침묵으로부터>

일어나서는 안 되었던 일들의 기억과 어디에도 발붙일 곳 없다는 불안 사이의 삶, 그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라고 태어난다. 한국에서 태어난 난민들의 자녀들은 한국국적의 아이들과 다름없이 자란다. 부모들은 아이가 여기에서 한국어를 잘 배우고 다른 한국국적의 아이들처럼 평화 속에 자라기를 바라면서도, 언젠가 쫓겨나야 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모순 속에 산다. 학교에 다니며 부모보다 먼저 한국어를 배운 아이들은 금방 어른이 되고,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에게 세상은 불안과 거절, 서류와 도장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이 중 99%가 언젠가 가 본 적도 없는 ‘고국’으로 돌아가라는 통지를 받을 것이다.

영화가 상영되는 한두 시간 동안만이라도 이들의 숨막히는 절박함 속에 놓여 볼 수 있다면, 늘 숫자로만 보던 난민이 실은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볼 수 있다면, 거기에서부터 무언가 시작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이슬 (난민인권센터)

1422회 서울인권영화제시민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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