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정범 The Remnants

작품 줄거리

철거민 5명, 경찰 1명이 사망한 ‘용산참사’. 망루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공동정범으로 수감되었다가 출소한다. 법정에서도, 서로에게도, 그 자신에게도 사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냐고 묻는다. 투쟁을 함께 했던 동지들은 그날의 기억에 뒤엉켜 서로 갈등한다. 화재와 붕괴가 뒤엎어 놓은 그 망루에 같이 있었지만, 서로 다른 망루를 지었다 해체했다를 반복한다. 그렇게 그들의 기억은 망루 4층에서 머뭇거린다.

프로그램 노트

2009년 1월 20일, ‘용산참사’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사망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모두 공동정범으로 기소되어 수감되었다. 출소 이후 그들은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삶을 이어간다.
남일당 건물이 있던 용산은 이제 사라졌지만 살아남은 자들의 기억과 감각은 여전히 망루 4층에 머무르고 있다. 그러나 죄책감으로, 의문으로, 공허함으로, 답답함으로…. 이들이 떠올리는 참사의 모습과 감정은 각기 다르다.
살기 위해 농성을 시작했고, 살기 위해 옥상으로 올랐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망루 4층까지 오르게 했으며, 살고자 하는 본능이 망루 밖으로 뛰어내리게 했다.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모두 “공동정범”이 되었다. 살았다는 죄책감은 질문을 멈출 수 없게 한다. 왜 불이 난 것일까. 왜 나는 살고 그들은 죽은 것일까. 나를 망루에 오르게 한 것은 무엇인가.
이들의 삶은 같은 기억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계속해서 얽히고 부딪친다. 삶을 뒤흔든 ‘그날’의 기억을 공유할 유일한 동지가, 남보다 못한 서운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누구에게 사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가? 놓이지 않는 이 물음은 결국 서로를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화살이 된다. 사건의 진실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는 주장과 사건이 낳은 상실을 먼저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완전히 찢어지지도 완벽히 만나지도 못한 채 갈등은 계속된다.
투쟁의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되어 하나의 목소리로 외친다. 그러나 투쟁의 끝은 자신의 입장에 따라, 처한 현실에 따라 각자에게 다르게 경험된다. <공동정범>에 담긴 다섯 인물의 각기 다른 증언은, 투쟁과 연대라는 이름으로는 지워질 수 없는 ‘개인’을 깨닫게 한다. 그리고 투쟁 이후 뒤흔들린 ‘하나의 삶’들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투쟁의 여파는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져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겨누고 있는 책임의 화살은, 언제쯤 이들의 손을 떠날 수 있을까?

감독

김일란, 이혁상 KIM Il-rhan, LEE Hyuk-sang

김일란, 이혁상

성적소수문화인권연대 연분홍치마 활동가

인권해설

“이제 그만 잊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언제까지 이래야 해요.”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 년을 국가폭력의 피해자로 살아가는 이들은, 해를 거듭해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세상에서, 지난하고 반복되는 싸움에 괴로움을 호소하며 잊고 싶다는 말들을 하곤 한다. 정말 잊고 살 수 있다면 말이다. 이들의 ‘잊고 싶다’는 넋두리의 한편에는 ‘잊히면 어떡하나?’는 두려움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가진 공동의 아픔, 공동의 싸움, 공동의 기억은 수년, 수십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잊은 듯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는 있어도, 각인된 그 기억은 톡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올라온다.

<공동정범>은 바로 이들의 공동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이다. 2009년 1월 20일 화염에 뒤덮인 불타는 용산 남일당 망루로 각인된 ‘용산참사’라는 특정한 시간과 사건에서 출발하지만, 특정 사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공동의 피해와 기억을 가진 피해자들이, 어떻게 기억하고, 갈등하고 혹은 치유하며 투쟁해 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이건 말하지 못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라고 <공동정범>을 본 세월호 가족, 강정 주민,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이 말한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알면서도 우리가 대면하려 하지 않았던 피해자 집단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가해자인 국가를 공동의 적으로 맞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함께 싸우다가도, 국가라는 거대 권력이 전혀 꿈쩍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막막함을 목도할 때, 어느 순간부터 그 책임의 손끝이 ‘나 때문인가’라며 스스로를 혹은 ‘너 때문이야’라며 가까이 있는 같은 피해자들을 향하곤 한다. 국가폭력은 그렇게 사적이고 내밀하게 작동한다.
우리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 발생한 사회적 사건 그 자체로만 국가폭력을 주목할 때, 그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사적이고 관계적인 조각들에 수년 수십 년 동안 내밀하게 작동하는 국가폭력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국가폭력의 내밀한 작동을 목격하고 증언할 때, 국가폭력이 피해자 각각을 어떻게 해체해 놓는지 뿐만 아니라, 해체된 듯한 개인들이 왜 다시 피해자 공동체로 모이고, 그 피해를 이야기하고, 투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공동의 아픔, 공동의 싸움, 공동의 기억을 공유한 해체된 각각의 피해자 개인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재결합하는지를 통해, 역시 공동의 기억을 공유한 ‘잊지 않는’ 우리가 국가폭력에 저항하는 우리의 무기를 다시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위원회)

1823회 서울인권영화제투쟁의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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