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로힝야를 거닐다>

인권해설

지난 5년간 미얀마 로힝야족 90만 명이 방글라데시 난민캠프에 생존해 있다. 이들은 2017년 미얀마 정부가 인종청소를 시도하자 피난처를 찾아 국경을 넘었다. 300여 마을을 봉쇄한 군인들은 민간인을 살해, 강간하고 마을을 불태우고 재산을 약탈해 갔다. 사망자만 수만에 이른다. 로힝야의 생활 터전과 역사, 경제적 토대와 정신적 근간이 되는 종교시설도 모두 파괴했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심각한 인권침해이자 범죄로 알려진 집단학살(Gonocide)이라고 규정했다.

집단학살은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로힝야족의 경우, 지난 60년 동안 박해받으면서 천천히 진행됐다. 예컨대, 토착 민족인데도 정부가 국적을 박탈했다. 로힝야들은 신분증이 없다. 셋째로 태어나면 그 아이는 가족부에 등록할 수 없었다. 2~3명 이상의 자녀를 낳게 되면 잡혀갔다. 이웃 마을과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가려면 여행허가증을 발급 받아야 했다. 검문소에서 항상 괴롭힘을 당했다. 5명 이상 모여 예배를 볼 수 없었다. 결혼도 군·경찰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받았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고 아파도 병원에 가는 과정이 힘들었고 병원에서도 제대로 치료해 주지 않았다. 일상적으로 두들겨 맞고 고문당하고 강제 뇌물도 줘야 했고 구금됐다.

난민캠프에서도 사정은 녹록지 않다. 좁고 허름한 텐트를 지어 임시로 생활하고 있다. 사생활 보호는 어렵다. 더위와 홍수에 취약하고 산사태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40만 명의 아동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활동이 금지되어 있고,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에 의존하고 있다. 캠프 밖을 이동하는 것도 제약이 있다. 캠프는 펜스로 둘러싸여 있어 열린 감옥을 연상케 한다.

로힝야들은 국제인권법이 보장하는 시민·정치적 권리와 경제·사회·문화적 권리가 전면적으로 침해됐다. 또 2017년에 발생한 참혹한 범죄는 국제형사법에서 처벌하는 반인도적 범죄, 전쟁범죄, 집단학살에 해당한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미얀마 정부의 집단학살 방지협약 위반의 건으로 재판이 진행 중이고,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공식 수사가 진행 중이다. 그러나 이는 충분하지 않다. 300여 마을에서 발생한 학살에 대해 손도 못 대고 있다.

로힝야 피해생존자들은 진실과 정의를 원한다. 국가폭력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을 바란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권 회복과 차별적 제도 및 관행을 시정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래야 고향으로 돌아가서 로힝야족이라는 이유로 학살되는 비극이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에 대해 국제사회는, 우리는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60년간 잊힌 이들은 다시금 잊히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럼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김기남(사단법인 아디)


사단법인 아디 www.adians.net
사단법인 아디는 아시아 분쟁지역에서 피해자와 피해커뮤니티의 인권침해를 기록, 옹호하고, 심리트라우마 힐링 및 경제적 자립 등 지속가능한 커뮤니티 회복을 위한 활동을 해 오고 있습니다. 2016년 설립된 아디는 미얀마 평화도서관프로그램, 로힝야 인권기록사업, 로힝야 여성난민심리지원사업, 팔레스타인 여성지원센터 및 트라우마힐링센터, 티베트 인권기록사업 등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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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2차 송환>

인권해설

2013년 9월, 임진강을 통해 월북하려던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1명이 남쪽 군인에 의해 사살되었다. 47살 남모 씨의 여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본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사람. 군 초병의 통제에 응하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정황과 인상착의가 전해졌다. 당시 해당 군인에게 포상 휴가가 주어졌다는 설 정도를 제외하면, 몇 년이 지나 검색해봐도 이후 군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조사하고 처리했는지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다.

사람을 죽이면 범죄다. 제대로 진상규명 되지 않거나 포상받는 범죄 행위는 있을 수 없다. 이토록 문제 제기나 후속 보도가 없다면 그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이 아니어서. 북쪽의 사람들을 반국가단체의 구성원으로 규정하는, 명문화된 법률의 폭력성을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불순한 행위. 실질적인 위협을 수반하는 행위. 고인은 왜 강을 건너려고 했을까.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존재에 대한 궁금증을 이어가다 보면 문득 차가운 물 속에서 죽어갔을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아는 바가 없지만, 죽어야 하는 상황에 그저 애도하게 되는 것이다.

2020년 9월, 이 기억과 감정이 떠오르며 기시감이 들었다.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1명이 북쪽 해상을 표류하던 중 북측 군인의 총격을 맞고 사망했을 때다. 당시 국내 여론과 언론 보도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 알고 보니 채무가 많았다는 등북쪽으로 가게 된 원인과 관련된 가십거리, 그리고 월북의 자발성 유무. 월북이라면 국가는 보호의 의무가 없고, 월북이 아니라면 잔혹한 북한군의 총격으로부터 국민을 지키지 못한 중대 사고라는 것이다.

대립적 경계선에 있는 사람의 의도와 행동을 해석하는 스펙트럼은 매우 협소해서, 월북 여부는 2년이 지나 또다시 정쟁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치적 상황에 모두가 흡수되다 보니, 고인은 어쩌다 북쪽으로 가게 되었을지 궁금해하며 죽음을 애도하는 목소리는 이번에도 거의 들리지 못했다.

경계를 넘는 사람은 남쪽에서도, 북쪽에서도 죽임을 당한다. 왜 그래야만 할까. 70여 년 동안 반복된 폭력 앞에서, 죽인 사람을 탓하는 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명령과 지시대로만 행동해야 하는 군의 조직 문화, 존재의 의도를 단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재빨리 파악하고 대응해야 하는 환경, 민주적 감시와 견제가 거의 작동하지 않는 ‘국가안보의 특수성’과 그를 정당화하는 분단 상황, 남북 간 일상적·정례적 대화와 교류의 부재… 구조상의 거대한 공백 속에 사람들이 죽어갔다. 안보 아니면 종말, 우리 편 아니면 빨갱이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는 더 이상 사유하지 않도록 만든다. 자발적으로 긋지 않았으나 너무도 내면화된 남북 사이의 선이 관계되면, 우리는 유독 사람의 죽음에 둔감하고 무책임하다.

2022년 9월,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러 고향을 찾아갈 수 있는 권리가 총체적으로 박탈된 이 상황은 현재진행형이다. 분단된 사회에서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김영식 선생님을 비롯한 비전향 장기수 선생님들에게서 빈 공간을 채우는 무지개를 본다. 경계를 건너면 된다-안된다, 고향으로 갈 수 있다-없다의 세계에서, 애초에 건너지 못하게 할 수 없다, 그럴 수 있을 리 없다는 감각의 가능성을 찾는다. 죽거나 죽임당하는 것만으로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세계에서, 또 어떤 질문과 서사들을 채워갈 수 있을까.

영철(피스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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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모모는 평화와 배움, 평화와 일상을 연결함으로써 평화를 모두의 것으로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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