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진실을 말하고 뛰어라
인권해설
타자기 앞에서 자기의 입을 틀어막고 글을 쓰는 언론인을 그린 삽화가 있다. 그림의 제목은 “자체 검열의 7가지 원칙”이며, 그 원칙이란 1) 검열은 국가 안보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2) 나는 우리의 지도자들을 신뢰한다 3) 나는 고위층과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4) 나는 이 직업이 필요하다 5) 나는 승진이 필요하다 6) 나는 감옥밖에 머무를 필요가 있다 7) 어쨌든 반대편은 나쁘다
자기입을 틀어막고 자체검열의 원칙 하에 글을 써대는 이런 상황에서 쓴웃음을 짓고만 말기에는 ‘검열’이 가진 무게가 그리 가볍지 않다. 인권의 증진은 언론이 능동적으로 개입할 때 가능하며, 언론의 효과적인 작용은 인권의 존중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경에 상관없이 어떤 매체를 통해서나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고, 전달할 수 있는 자유(세계인권선언 19조)의 존중에 언론의 생명이 달려있다. 그래서, 이상적으로 우리는 언론이 자유롭고, 비판적이며, 건설적이기를 기대한다. 외부 압력에 의한 보도 통제에서 자유롭고, 공공 당국만이 아니라 사적권력이 집중된 다국적 기업등을 비판하고, 보다 나은 실천을 위한 제안과 아이디어를 위한 지면을 만들어내는 건설적인 언론을 말이다.
그래서, 검열의 문제는 당사자인 언론에게 뿐 아니라 언론이 직시해야할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맥락에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검열의 궁극적인 형태는 고문이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검열로 인한 피해는 수없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추방되고, 행동에 제한을 받고, 직장에서 해고되고, 부당하게 투옥당한다. 때론 신체적인 공격을 당하거나 심지어 살해되기까지 한다. 삭제나 폐간의 위험 속에서, 종사자들은 위협받거나 침묵을 강요받는다. 의사 표현의 자유를 감시하는 국제 인권 단체인 「Article 19」의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 77개국 중 62개국에 평화적인 의사 표현을 이유로 구금된 수인들이 있다. 결국, 검열은 억압의 극단적 형태이자 통제의 수단이며 의사표현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
인권해설: 배신의 시간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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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살바도르 아옌데는 좌익의 여타 세력과 규합하여 구정권이 추진한 세력을 넘어서는 개혁을 단행할 것을 약속하였다.
아옌데는 임금 인상과 가격 동결로 경제를 추동하였지만, 많은 산업이 생산과 이익의 감소를 감내해야만 했다. 의회가 세금 인상을 봉쇄했기 때문에, 정부는 모험적인 적자 지출을 해야만 했다. 아옌데는 급속한 농업 개혁을 추진하였고 구리산업을 비롯하여 많은 재정 분야를 국유화하였다. 이런 조치들은 상당수의 불만을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73년 초 선거에서 아옌데 정권은 더많은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대 세력은 아옌데 정권이 유지되는 것을 참아내는 대신 민주주의를 저버리기로 작정하였다.
1973년 9월 11일, 피의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장군은 전 라틴 아메리카 내에서 가장 잔인하고 철옹성같은 독재를 수립하였다. 그의 집권 17년 동안 국민들의 ‘입’과 ‘귀’는 봉쇄당했고, 수많은 반체제 인사들이 소리없이 사라져갔다. 실제 반대세력이나 가상의 반대 세력을 가릴 것 없이 고문, 암살, 실종, 추방되었고, 정치 정당과 자유 언론과 노동 조합은 모두 금지당했다. 비록 아옌데 대통령이 취했던 개혁 조치에 다수가 동의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반대 세력이 그토록 잔인한 조치를 취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고, 더더욱 피노체트의 반민주적 통치가 17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최근 과거군부의 추악한 인권 유린 행위에 대해 국민들에게 공식 사죄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남미에서 고조되면서 칠레의 정치인들도 여기에 가세하였다.
칠레 하원 인권위원회 위원장과 하원 국방위원회 소속 위원 등은 “피노체트 육군참모총장도 이런 선례를 본받아 국민에게 용서를 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용서를 빌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너무 끔찍한 일들이 많이 벌어졌다. 이 영화 속의 여인에게 일어나 일만 보아도 말이다.
인권해설: 평화의 가장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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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후 팔레스타인 땅에 나라를 세운 이스라엘은 아랍 여러 나라들과의 빈번한 전쟁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립해왔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고란 고원(시리아), 시나이 반도(이집트), 요르단강 서안 지대, 가자지역을 점령했다. 현재 중동 화평 교섭의 핵심은 이러한 지역들을 둘러싼 교섭이다.
1992년, 이스라엘 총선거에서 라빈이 이끈 노동당이 승리함으로써 중동에 화평의 기운이 싹튼다. 라빈 정권은 1993년 초에 PLO와의 비밀교섭을 시작, 약 8개월의 교섭 끝에 다음과 같은 합의에 도달했다. 곧 ①이스라엘과 PLO와의 상호 승인 ②가자지구 및 예리코에서의 팔레스타인인의 잠정적 자치 시작 ③자치 지역 확대를 위한 교섭 그리고 ④점령 지역의 최종적인 지위를 5년 이내에 결정하기 위한 교섭 등이다. 실제로 1994년에는 가자지구와 예리코에서 자치가 시작되었으며, PLO 의장 아라파트는 가자지구에 본거지를 옮겼다.
1995년, 이스라엘군은 헤브론(팔레스타인인의 밀집 지역, 그러나 급진파 유태인들이 잔류함으로써 마찰의 큰 원인을 남겼다)을 제외한 요르단강 서안의 6개 주요도시와 450개 마을에서 27년만에 철수하고 팔레스타인인의 자치 지역이 확대되었지만 같은 해 11월, 평화 협상과 철군에 반대하는 이스라엘 극우파에 의하여 라빈 수상은 암살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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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플로 콘템플라시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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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의 어머니인 콘템플라시온은 싱가폴, 홍콩 등지로 가정부 살이를 나선 수십만 명의 필리핀 여성 중의 하나였다. 그녀의 운명은 그들 중에서도 가장 나빴던지, 이국땅에서의 교수형으로 끝마쳐졌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중동지역에 가정부로 취업하고 있던 필리핀 10대 소녀가 자신을 성폭행 하려는 주인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을 위기에 처해 해외 취업자가 겪는 부당대우에 분노하고 있는 필리핀인들의 국민 감정을 또 한 번 자극한 적이 있다.
노동력 이주는 필리핀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촌 전체의 문제이다. 노동력 이주는 어디서나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이주 노동자들에게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는 것이 바로 인권 문제이다. 이주 노동자는 최악의 조건과 최저 임금으로 수입되는 ‘현대판 노예’로 취급받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이기 이전에 상품으로 거래되면서, 노동력 수입 국가가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는 언제든지 출국시켜버릴 수 있는 ‘노동 부품’으로 활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에도 10만 명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우리 지붕아래 비를 피해 찾아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가진 것을 빼앗고 등을 떠미는 모진 주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매일매일 들려오는 우리 땅의 외국인 노동자의 실상 속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인권해설: 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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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권선언 2조는 ‘차별은 싫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우리 모두는 의견의 차이와 출신, 남자인지 여자인지에 따라 혹은 종교, 인종, 언어, 피부색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 어떤 나라에서 살아간다 해도 이러한 권리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편견과 차별로 가득찬 공기를 매일 마시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엄청나다. 현재 1백 26개국에 걸쳐 2백 37개에 이르는 사회적.민족적 소수 집단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이 처해 있는 위기란 일상적인 사회.경제.문화적 차별로부터 종족 말살을 위한 집단 학살에까지 이른다.
‘편견’이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을 실제적인 사례나 하나하나의 행위로 판단하기보다는 전형화시키고, 부정적으로 일반화시킨 것을 근거로 판단하는 것이다. ‘차별’은 이런 ‘편견’에 근거하여 사회적인 혜택이나 사회 활동으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이다. 특히, 인종 차별은 인종을 근거로 인권을 부인하는 행위로서, 한 인종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독단을 근거로 합리화되고 있다. 그러나, 인종은 생물학적으로 정의된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개념이다. 예를 들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유색’인종으로 간주되는 사람이라도 미국에서는 ‘흑인’으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인종 차별적인 분류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대부분의 아프리카 국가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최근 국가간의 이주가 활발해지면서 이주민의 대량 유입에 대한 인종적 폭력과 외국인 혐오증이 큰 문제를 낳고 있고, 그것이 비판받기보다는 이민자들을 공격하는 인종 차별주의 정당들이 오히려 인기를 얻어가는 불안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들이 가진 외국인 혐오증은 외국인이나 다른 문화를 가진 이들을 두려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으로 이방인은 사회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근거없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처럼 근거 없는 차별은 차별받는자와 차별하는자 모두를 병들게 할 뿐이다
인권해설: 도둑맞은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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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에서 1983년에 걸친 군부통치 하에서 아르헨티나에서는 1만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하였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 실종자중에 적어도 200명의 아동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왜 아이들이 사라지게 되었을까? 일부 아동은 부모와 함께 실종되었으며, 임신한 상태에서 체포되어 비밀 장소에 수감된 여성들의 아이인 경우 출생 여부 자체가 베일에 싸인 ‘실종’이다. 감옥에서 출생한 아기들은 비밀리에 남에게 주어졌고, 일부는 비밀 경찰의 가족들에게 넘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기의 출생은 위장되고, 어머니는 죽임을 당한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의 모임인 ‘5월 광장의 어머니들(the Mothers of Plaza De Mayo)’은 눈물겨운 추적을 통해 53명의 아동들의 신분을 밝혀냈다. 그러나, 생후 3개월 때 부모와 함께 실종된 클라라(Clara)를 비롯한 수백 명의 아동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유엔의 「어린이·청소년의 권리조약」에는 아르헨티나의 발의를 통해 ‘신분 보존에 관한 권리’라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조항에서 ‘아동의 성명과 국적을 가질 권리’를 다루고 있음에도 굳이 ‘신분 보존’에 관한 조항을 둔 것은 신분 서류가 고의로 꾸며지고, 족보가 자의적으로 끊기고, 가족 관계가 깨어지는 결과를 낳은 아동의 ‘대량 실종’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인권해설: 하늘: 침묵의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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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로 전쟁과 자연 재해로 죽은 사람의 숫자보다 집단 학살과 대량의 정치적 살인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수가 2배 많다는 것이 ‘집단 학살’ 연구자들의 보고이다. 사실, 집단 학살은 전세계 어디서나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그러나, 그 대부분은 알려지지 조차 않은 채 역사의 어둠 속에 묻혀 있는 것이다. 학살자들은 언제나 많은 증거를 묻어버렸고, 학살에 관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통제하면서 교묘하게 역정보를 퍼뜨려 왔다. 그래서, 분명히 있었던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는 집단적인 부인 현상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 영화의 부제처럼 이 모든 것을 내려다 본 하늘만이 침묵의 증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1948년 채택된 유엔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조약에 규정된 ‘집단 학살’의 정의를 간단히 살펴보자.
집단 학살은 어느 국민.민족.인종.종교집단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전멸시킬 의도로 행해지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에는 이들 집단에 대한 계획적인 대량학살은 물론 신체적.정신적으로 치명적인 해를 입히는 행위, 그 집단의 생활조건에 고의적인 영향을 끼치는 행위, 그 집단내의 출생을 억제하기 위해 의도적인 조치를 강제하는 행위, 그 집단의 어린이들을 강제로 다른 집단에 편입시키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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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수
1991년부터 1996년 6월말 현재까지 공안 관련 사범 구속자는 4526명(국보법 1528, 화염병 670, 집시법 754, 노동관계법 520 등)이다. 소위 공안 관련 사범으로 불리는 양심수가 하루 2.25명 꼴로 생겨나는 셈이다.(’96년 국감 자료 인용)
?해마다 시기마다 넘쳐나는 공안 사건들은 대량의 구속자를 낳고 있다.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1992년 12월 범민련 사건, 부여 간첩 김동식 사건을 계기로 불고지 혐의로 박충렬씨 등이 구속당한 것을 비롯해, 올해 들어서도 좌경 척결의 방침 아래 학생 운동, 재야 운동에 대한 탄압은 강도를 더해왔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은 민주 사회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의사·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사상의 자유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최근 한총련 연세대 사태는 국가안보라는 이유로 무려 5848명을 연행하였고, 400여 명을 구속시켰다. 그리고 이제는 학내 집회까지 경찰 병력을 투입하고 있으며, 각종 문화 행사마저 원천 봉쇄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듯이 1993년 들어 시작된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한 민가협 목요집회’는 1996년 10월 24일로 155회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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