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모략당한 나의 이름

인권해설

한 예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시트콤 ‘친구들(friends)’이 백인가구에서는 시청률 1위를 보인 반면에 흑인가구에서는 91위에 불과했다.(뉴욕타임즈 12월 29일). 인종문제가 미국만의 문제인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인들의 피부색에 따른 배타적 태도와 선별적 대우에 대한 지적을 한국인 스스로에게서나 동남아인들에게서나 자주 접할 수 있다. 인종차별은 우리 나라 인권문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도리질할 일은 아닌 것 같다. 196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은 ‘인종차별에 근거한 어떠한 우수 인종 학설도 과학적으로 허위이며, 도덕적으로 규탄받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부당하고 위험하며, 또한 어느 곳에서든 이론상으로나 실제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인종차별에 못을 박았다. 햇살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색안경 외에 다른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인류는 같은 하늘 아래서 평화와 인권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인종차별은 벗어버려야 할 색안경이다.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13인권해설

인권해설: 얼스턴가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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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옛 노예의 자손들과 옛 주인의 자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언젠가 부정의와 억압의 열기로 가득찬 이 사막의 나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그리고 또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맞잡고 자매와 형제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20세기의 명연설 중에 명연설로 일컬어지는 맡니 루터 킹의 워싱턴 연설을 한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염원에 대한 동감은 높은 수준의 수사학보다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토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오늘날도 그의 연설에 가슴 떨림을 느끼는 인구가 상당수라는 것은 그가 갈아엎길 원했던 인종차별과 갈등의 골이 여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권운동의 진원지인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질환을 호소한다. 미 사법부는 미국인 20명 중 1명은 일생에 어느 한 시기를 교정시설에서 보낸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흑인의 경우는 그 비율이 4명중 1명에 이른다(뉴욕타임즈 99년 3월 7일 보도). 노예농장이 가난과 마약에 빠진 범죄자의 감옥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만성적인 인종차별을 그 원인의 하나로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다음은 일상 속에 침투한 흑백분리의 심각성을 지적한 예이다. 미국내 한 미디어 조사기관에 따르면 TV 출연진의 인종구성과 그에 따른 시청률에 있어서조차 흑백차이가 크다. 즉 안방의 TV속에서 인종분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인권해설

인권해설: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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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어려움과 좌절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꿈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옛 노예의 자손들과 옛 주인의 자손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앉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언젠가 부정의와 억압의 열기로 가득찬 이 사막의 나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로 바뀔 수 있으리라는. 나의 네 어린 자식들이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그들의 인격으로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리라는. 그리고 또 나는 꿈이 있습니다. 어린 흑인 소년 소녀들이 백인 소년 소녀들과 손을 맞잡고 자매와 형제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날이 오리라는.” 20세기의 명연설 중에 명연설로 일컬어지는 마틴 루터 킹의 워싱턴 연설을 한번쯤은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의 염원에 대한 동감은 높은 수준의 수사학보다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의 토양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닐까싶다. 오늘날도 그의 연설에 가슴 떨림을 느끼는 인구가 상당수라는 것은 그가 갈아엎기 원했던 인종차별과 갈등의 골이 여전하기 때문이 아닐까? 민권운동의 진원지인 미국은 여전히 인종차별의 질환을 호소한다. 미 사법부는 미국인 20명 중 1명은 일생에 어느 한 시기를 교정시설에서 보낸다는 발표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흑인의 경우는 그 비율이 4명중 1명에 이른다(뉴욕타임즈 99년 3월 7일 보도). 노예농장이 가난과 마약에 빠진 범죄자의 감옥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만성적인 인종차별을 그 원인의 하나로 꼽는데 주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다음은 일상 속에 침투한 흑백분리의 심각성을 지적한 예이다. 미국내 한 미디어 조사기관에 따르면 TV 출현진의 인종구성과 그에 따른 시청률에 있어서조차 흑백차이가 크다. 즉 안방의 TV 속에서 인종분리가 벌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 예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시트콤 ‘친구들(friends)’이 백인가구에서는 시청률 1위를 보인 반면에 흑인가구에서는 91위에 불과했다(뉴욕타임즈 12월 29일). 인종문제가 미국만의 문제인 것은 물론 아니다. 한국인들의 피부색에 따른 배타적 태도와 선별적 대우에 대한 지적을 한국인 스스로에게서나 동남아인들에게서나 자주 접할 수 있다. 인종차별은 우리 나라 인권문제와는 거리가 멀다고 도리질할 일은 아닌 것 같다. 1965년 유엔총회에서 채택한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철폐에 관한 협약’에 따르면 “인종차별에 근거한 어떠한 우수 인종 학설도 과학적으로 허위이며, 도덕적으로 규탄받아야 하며, 사회적으로 부당하고 위험하며, 또한 어느 곳에서든 이론상으로나 실제상으로 인종차별에 대한 정당화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고 인종차별에 못을 박았다. 햇살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한 색안경 외에 다른 색안경을 끼고 있다면 인류는 같은 하늘 아래서 평화와 인권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인종차별은 벗어버려야 할 색안경이다.

<류은숙 / 인권운동사랑방>

10인권해설

인권해설: 다시 못 올 사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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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한국 교도소는 어느 지점까지 와 있을까? TV나 영화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유럽교도소처럼 깨끗한 환경과 충분한 필수품이 확보된 좋은 환경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러시아의 감옥이 보여주는 것처럼 면회조차 허용되지 않는 처참한 상황은 설마 아닐 것 같다. 사회의 관심과 여론으로부터 철저하게 차단되어 있던 금단의 지역 교도소, 그 교도소가 최근 공개되고 있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래 법무부는 ‘질서와 인권이 함께 가는’ 교정정책을 표방하고, 교도소에 관한 일련의 변화를 자랑스레 선전하였다. 그 내용은 모범수형자에게 전화사용을 허가하고(그러나 그 횟수에는 제한이 있다) 전재소자에게 신문구독을 허용하며 수용거실내에 조그마한 탁자를 비치한다는 것, 그리고 미결수용자에게 손목시계를 찰 수 있도록 하고 재소자와 가족간의 합동면회를 확대 실시한다는 것 등이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이다. 그러나 법무부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를 놀랍게 하는 것은 바로 작년까지만 해도 우리 교도소의 재소자들은 전화나 신문을 이용할 수 없었으며, 책상은커녕 탁자조차도 비치되지 않은 거실에서 생활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90년에 우리 나라가 가입한 UN의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조약’의 10조는 “자유를 박탈당한 모든 사람은 인간의 고유한 존엄에 기초한 인간적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위의 몇가지 사실에 비추어 보아 우리 교도소가 이 기준과 거리가 멀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박정희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주로 지어진 우리 교도소들은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수천명 이상의 인원을 거대한 시설아래 집중적으로 감시하는 대규모 교도소에서는 현대 행형이념인 처우의 개별화나 재사회화 교육은 원천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우리가 염려하는 것은 이런 ‘교정프로그램’의 부재가 아니다. IMF이후 격증한 범죄로 인해 교도소의 시설이 넘쳐나면서 그렇지 않아도 부족하고 비좁던 수용시설의 과밀화는 한층 더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심하게는 3평에 17명까지 수용한 경우도 확인된다. 이 밖에도 한 끼에 3백30원이 배정되는 식사나 부족한 운동시간, 열악한 작업환경이나 현저히 부족한 위생이나 의료시설 등 우리 교도소가 갖고 있는 문제점은 한둘이 아니다. 예를 한가지만 더 든다면, 여자교도소를 포함한 대부분의 우리 교도소는 아직도 냉난방시설이 전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교도소 당국은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현재의 정책을 개선할 수 없다고 한탄한다. 일면 수긍되는 말이다. 또 혹자는 도대체 재소자에게 그렇게까지 인권을 보장해 주어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일찍이 바깥 사회의 최하 빈곤층보다 재소자의 생활이 나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이 주장된 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행형법이니 최저기준규칙이니 하는 재소자의 권리를 담은 법규를 모두 폐지해 버리고, 범죄인에 맞게(?) 엄혹한 처우를 하는 것은 어떤가? 도대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를 생각이 들지 않도록 말이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하기에 앞서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던가? 혹은 실수로 혹은 고의로 이 나라의 법률을 위반할 수는 없는가? 설령 전혀 범죄를 범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어떤 이유로 내가 교도소에 갈 확률은 과연 전혀 없는 것인가? 그 때에도 재소자의 인권을 주장하지 않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범죄인이나 재소자는 바로 우리의 이웃, 어쩌면 나 자신, 적어도 우리와 함께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가야 할 우리 사회공동체의 일원이라는 것이다.

<최정학 / 민주주의법학연구회>

13인권해설

인권해설: 지구촌 혹은 약탈촌?

인권해설

WTO는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지난 95년 건설되었으며,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것이 관리하고 있는 영역은 공산품에서부터 농산물, 서비스, 지적재산권 등으로 대단히 광범위하며, 국가간 무역분쟁을 해결하는 절차도 강력하다. 몇 달전 이슈화되었던 ‘소주값인상’ 문제도 사실 WTO의 명령에 의해 단행되었듯이, WTO는 각국의 정책들에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WTO가 ‘더 많은 권력과 더 많은 영역’을 자신의 휘하에 두기 위한 새로운 협상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11월 30일부터 시작되는 뉴라운드가 그것. 이번 협상에서는 농산물 및 서비스 시장의 추가 개방이라는 의제뿐만 아니라, 투자, 경쟁정책, 정부조달 등 새로운 영역에서의 자유화, 개방화가 의제로 상정되어 논의될 예정이다. 농산물협정에 대해 호주,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곡물기업들은 농산물을 다른 공산품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자유화시키자는 주장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는 숱한 농민들의 생존권과 농촌공동체를 파멸에 빠뜨릴 것이다. 또한 미국은 ‘유전자변형 농산물’*(GMO)에 대한 수입규제 완화를 ,주장하고 있다. 유전자변형 농산물은 인류의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지만 초국적곡물기업과 미국 등은 건강에 유해하다는 ‘과학적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유전자변형 농산물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편, 서비스협정(GATS)에는 민중들의 기초적인 생활을 담당하는 공공영역이 대거 포함되어 있다. 보건의료, 교육, 상수도, 교통 등이 급격한 자유화의 압력에 놓일 것이다. 특히 이번 뉴라운드에서 미국은 아직도 대다수 국가들에서 공공의 책임아래 존재하는 보건의료 및 교육 서비스 시장에 대한 자유화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협정이 맺어진다면, 우리의 공ㄱ옹의료 정책과 공교육은 더욱 열악해져만 갈 것이다. 지적재산권협정(TRIPs)에서는 ‘생명특허권’을 둘러싼 대립이 첨예하게 드러나고 있다. 동식물과 미생물은 자연의 존재 그 자체이며, 그것은 인류 공동의 자산이지 특정한 기업에 의해 독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지적재산권협정은 ‘생명특허권’을 보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초국적자본 및 해외투자자의 권리를 절대적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논의가 다자간투자규범(MFI)이란 이름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특히 한국 정부는 유럽연합 등과 함께 국제적인 투자규범을 WTO 체제 내에서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의가 갖는 위험은 투기 자본의 활동에도 제도적으로 합법화시켜 주며, 국민경제적 필요에 따라 해외직접투자를 취사선택할 수 있는 정부의 권리도 불법화시키고 있다는 데 있다. ㅅ미지어 대부분의 투자협정-한미투자협정도 포함-은 초국적기업들에게는 ‘자신들의 이익에 침해되는 정부의 조치가 취해질 때’, 정부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까지 보장하고 있다. WTO는 ‘국제적인 부(富)의 재분배’, ‘전세계적인 고용기회의 확대’라는 휘황찬란한 구호아래 건설되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부는 공정하게 재분배되지 않고, 소수의 초국적기업들에게로 집중되었으며 빈곤은 확대되었다. 또한 초국적기업들은 1993~1996년 사이에 외국에서의 산출량을 26%나 늘린 반면, 총고용인수는 4%나 줄이는 기술을 발휘했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우리는 WTO 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무역과 투자 체제’가 고용기회를 확대할 것이라는 약속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9인권해설

인권해설: 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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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 문제가 유럽 국가들의 최대 고민이 된 것은 이미 몇 년 전의 일이다. 유럽이 앓고 있는 각종 정치, 사회적 불안 현상, 신민족주의 대두 등의 문제도 높은 실업율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프랑스에서는 3천2백만 명의 실직자들이 공식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체 노동 인구에서 12%를 차지하는 비율이다. 그리고 이 실업 인구 가운데 1천 5백만 명은 정부 기구로부터 최소한의 생계 수당을 지급받고 있다. 전체 실업 인구 중 거의 절반이 되는 다른 실업자들은 전국실업보험청의 실업 보장 기금의 보호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이러한 공식적인 숫자에는 그 어떠한 형태의 실업 수당도 지급받지 못하는 25세 이하의 청년 실업자들과 전례 없이 증가하는 임시적 노동자들을 추가해야 한다. 이러한 실업자들의 수는 대략 2천 7백만 명이나 되는데, 이들은 시간제 노동을 강요당하는 까닭에 주당 노동 시간인 39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따라서 법정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벌면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실업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표면에 나타나긴 했어도 조직적인 실업자 운동이 가능하기 된 데는 수년 동안의 지속적인 활동과 투쟁이 있었다.

실업자들의 이익을 옹호하기 위한 최초의 조직은 노동총동맹이었다. 이는 프랑스에서 가장 커다란 노동조합 조직으로서 이념적으로도 대부분의 유럽 연방 내의 다른 조직들에 비해서 훨씬 더 급진적인 정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노동총동맹은 198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지속적으로 실업자들을 조직해 나가고 있는 유일한 조직이며, 부분적으로 커다란 성공으로 거두어 오고 있다.

80년대 말 무렵에는 전국실업·임시직노동자운동(MNCP)이라는 실업자 운동 단체가 결성되었다. 동시에 한편에서 지방 교회 지도자들이나 생태주의자들에 의해서 실업자 운동 단체간의 연합적 질서가 모색되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전국적인 실업자 운동이 전개되었다. 실업자 단체간의 상호 부조와 정보의 교환 및 연대를 위한 조직인 일자리·정보·연대를 위한 연합(APEIS)은 파리 지역 내의 공산주의자들의 주도하에 하나의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들 공산주의자들은 실업자 조직들을 통해 온갖 사회 문제에 의해 고통 당하는 빈민들 사이에서 점차 많은 표를 획득하기 시작하던 국민전선(National Front)에 대항하여 투쟁을 전개하였다.

1994년이 되자 실업에 대항하는 연대 투쟁 조직인 ‘실업에 맞서 함께 행동하자!(AC)’가 출범하였다. 이 운동은 실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조합 운동가들(민주노동동맹의 좌익 그룹, 통합교원노조(FSU)를 포함한 10대 그룹과 연대·전진·민주주의(SUD)의 주도하에 만들어졌다. 그들의 주된 목적은 노동 조합과 실업 단체들, 사회적 차별에 대항하여 투쟁하는 조직체들(특히 주거권연합(DAL), 전진 앞으로!!(DD!!) 그리고 무주택자위원회CDSL) 등), 그리고 소농총동맹과 인권동맹(Human Right League) 및 수많은 지식인들과 같은 다른 그룹들을 연합하는데 있었다. 1994년 봄, ‘실업에 맞서 함께 행동하자’는 프랑스 전역에서 ‘실업에 반대하는 행진’을 조직하였는데, 파리에서 폐막한 이 행사에는 거의 3만 명의 사람들(대부분이 실업자들이었다)이 운집하기도 하였다.

1994년의 벽두부터 실업 문제를 이슈로 한 공동의 행사와 캠페인이 벌어졌는데, 이 투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사회적 차별에 대한 비판을 포함하여 1996년의 실업수당에 대한 요구를 예고한 여러 가지 이슈들이 제기되었다. 1995년 봄에는 가사(家事)문제와 사회적 차별에 관한 또 한차례의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였다.

이렇게 축적된 역량이 1997년 봄에 열린 유럽 행진(European March)을 가능케 했고, 이 유럽 행진은 이후의 실업자 운동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 행진에 참가한 수십 명의 프랑스 실업자들은 대략 2개월 동안 유럽대륙을 가로지르면서 상당히 귀중한 개인적인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행진 과정에서 실업자들은 유럽 각국의 노동조합 활동가들과 지방의회 의원들 그리고 저널리스트 등과 가지 수많은 공식적인 회합과 논쟁에 참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자 운동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우선, 실업자 운동을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다른 사람이 아닌 실업자들 자신이었다는 점이 무엇보다도 먼저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 실업 상태에 놓여 있던 사람들, 그리고 심각한 재정적 고통 속에서 허덕이던 사람들은 너무나 자주 쉽게 고립감을 느끼고, 자신이 사회적으로 그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그들은 스스로를 위해 행동하고 조직할 수 있는 능력을 결코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업자 운동을 통해서 그들은 하층 계급의 구성원들을 조직하고 동원함으로써, 이제 하층 계급이 아닌 다른 사회 계급들에 다가가 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노동 조합들이 대체로 지금까지 조직화에 실패해온 불안정한 직장에 다니고 있는 사회 계층들을 실업자 운동세력들은 훨씬 더 효과적으로 조직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있는 임금 생활자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위한 시도는 이제 막 첫발을 내디딘 단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실업자들이 그들 스스로를 하나의 운동 세력으로 조직화함으로써 그들은 또 다른 중요한 교훈을 안겨다 주었다. 그것은 그들이 프랑스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적 조건의 전반작인 황폐화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이 운동은 유럽의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 하나는 분명히 사회적이고 민주적이며 사회 운동의 승리자로서의 얼굴이다. 이제 다가오는 몇 개월이나 몇 년 안에 이같은 미래의 비젼을 발전시키는 것이야말로 실업자들에게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양은숙 /인권운동사랑방 자원봉사자>

12인권해설

인권해설: 치아파스

인권해설

사파티스타의 근원지, 치아파스주는 멕시코에서 자원이 가장 풍부한 주로, 특히 유전의 매장량이 대단히 풍부하다. 그러나 풍부한 자연 자원에도 불구하고 학교, 병원,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시설 등은 대단히 열악하다. 이러한 불평등은 지난 65년간의 제도혁명당(PRI)의 지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도혁명당의 지배하에서 거대 지주들과 그들의 사적인 군대는 강화됐고, 정부와 관료 사회는 부패했다. 발전과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원주민 공동체는 붕괴됐고, 원주민에 대한 차별은 더욱 심해졌다.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과 통제는 사파티스타 해방군을 형성시킨 중요한 조건이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의 체결은 사파티스타의 봉기를 직접적으로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은 원주민들의 토지 경작을 보장해주던 헌법 제 27조를 폐지토록 했을 뿐만 아니라, 멕시코 노동자들을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내몰았기 때문이다.

1994년 1월 1일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은 모든 멕시코인들을 위한 민주주의, 해방, 정의를 요구하면서 멕시코 남동부의 치아파스 주에서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들은 많은 원주민들이 영양실조에 빠져있고, 치료가능한 병을 갖고서도 병원조차 갈 수 없는 멕시코의 현실을 전세계에 폭로했다. 또 사파티스타는 여성·농민 등 제사회 단체에 가난, 착취, 좌절이라는 문제에 대해 함께 토론하자고 제안했고, 다양한 방식으로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정부는 사파티스타와의 협의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원주민의 권리와 문화에 관한 산 안드레아스 협정이 체결됐다. 그러나 정부는 원주민들에 대한 탄압과 공격을 지속함으로써 두 얼굴을 보였다. 급기야 세디요 대통령은 협정 체곌 자체를 부인하면서 탄압에 나서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투옥되고, 많은 이들이 암살 혹은 실종됐다.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학살 또한 계속되고 있다. ‘악떼알’에서는 50여 명을 학살했고, 임신했던 여성의 배를 가는 잔혹함을 보였다. ‘보스께’에서도 9명이 학살됐다,정부는 이를 원주민들간의 분쟁으로 호도하고 있지만, 이러한 학살의 배후에는 정부의 비밀 경찰이 있음이 자명하다. 이는 은밀히 진행되고 있는 하나의 전쟁에 다름아니다.

사파티스타와 동조자들은 오늘날도 시민 불복종으로 저항하고 있다. 이는 세금, 보건, 교육 어떤 것도 정부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결정하고 행하는 것이다. 한편 사파티스타의 투쟁은 멕시코에만 머물지 않는다. 세계 곳곳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해 저항할 것이며, 스스로를 교육할 것이고 착취를 비난하고 불복종 행동을 조직할 것이다.

<인권하루소식>

17인권해설

인권해설: 날 놓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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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2월에 개최된 마약류 특별 총회에서 유엔은 1991년부터 2000년까지를 ‘유엔 마약류 퇴치 10개년’으로 선포했다. 이는 마약류 등 약물 퇴치 문제가 전세계적 규모로 강력하게 대처해야 할 시급한 과제라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그 10개년을 2년 앞둔 현 시점에서 새로운 약물이 계속 개발되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의 약물사용이 급증하고 있어 미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약물 남용 문제를 사회 문제나 보건 문제로 다루기보다는 범죄 문제로 인식해 수사 기관이 전담했으며, 형사 처벌의 문제로 이해해 단순 남용자에 대하여도 치료나 재활보다는 단속과 처벌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약물 남용 퇴치를 위한 사회 분위기 조성과 홍보를 적극적으로 펼칠 시점이다.

한국에서 약물 남용이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다. 해방과 한국 전쟁에 의한 불안정한 시대적 상황에서 아편의 남용이 크게 확산됐고, 1965년에는 화공품에서 추출한 합성 마약인 ‘메사돈 파동’이 일어나 1만 여명으로 추산되던 환자가 3만 6,000명으로 느는 등 중독자를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70년대에는 미군들이 주둔하고 있는 기지촌을 중심으로 대마초 흡연이 만연했고 국내에서 히로뽕을 밀조해 일본에 밀수출하기도 했다. 80년대에 들어서는 퇴폐·향락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히로뽕의 남용이 크게 확산되었고 헤로인, 코카인 등 신종 약물과 본드, 신나, 가스 등 유기 용제가 남용되었고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마약류에 대한 정부 차원의 관리가 시작된 것은 1946년 미군정 법령 제119호 마약 단속 규정에 의거해 보건 후생부의 약무국이 감시 업무를 개시하면서부터이다. 그후 수차례에 걸쳐 법률이 제·개정되면서 현재로서는 일반법인 형법과 특별법인 마약법, 향정신성 의약품 관리법, 대마 관리법이 규제 법규의 근간을 이루고 있고 그밖에 신나, 본드 등의 흡입 행위를 규제하는 유해 화학 물질 관리법과 약사에게 마약류 관리를 위한 제반 의무를 부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약사법이 존재하고 있다.

<엄주현 /인권운동사랑방>

9인권해설

인권해설: 황무지

인권해설

세계사의 변경에서 늘 박해와 차별의 대상이 되어왔던 집시족. 이들의 고단한 삶의 역사는 역사의 이면에 가려져 있지만, 소수민족에게 가해져온 가혹한 탄압의 역사를 웅변적으로 대변하고 있다.

중남부 유럽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전세계에 퍼져있는 집시족은 원래 인도 지방에서 살던 유목민들이 생존을 위해 농토와 일거리를 찾아 유랑을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고 추측된다. 집시족의 역사는 곧 박해와 고난의 역사이다. 기독교적 전통 하에 있던 유럽인들은 이들의 신비주의적 종교관과 문화에 대해 이교도라는 낙인을 찍었고, 강제 추방과 격리 수용과 같은 제도적 박해를 가했다. 더구나 사적 소유의 권리가 절대적 인권으로 간주되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존의 필요로부터 촉발된 집시족의 도둑질과 구걸은 이들에 대한 서구 사회의 편견과 혐오감을 더욱 부채질했다. 거듭된 강제 추방과 제도적 배제의 경험은 집시족에게 빈곤과 문맹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게 만들었고, 이들의 유랑 문화를 더욱 가속화시켰다.

50만 명에 달하는 집시족에 대한 나치의 대학살은 이들에 대한 편견과 박해의 역사가 얼마나 뿌리깊은 것이었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태인과는 달리 집시족이 겪어야만 했던 조직적 학살은 여전히 역사의 이면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 또한 중심으로 편입되지 못한, 혹은 스스로 중심을 창출하지 못한 한 소수 민족의 비운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구(舊)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는 강제적인 정착 프로그램을 통해 집시족의 이주를 막고 지배 문화로의 편입을 유도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격리의 전통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동구권 몰락과 함께 급속히 형성되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의 양식은 이 지역 집시족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배경내/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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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제9법안 찬반투표

인권해설

동성애가 인권의 영역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19세기까지 동성애는 죄악으로 취급되거나 범죄 혹은 질병으로 간주되어 온갖 탄압과 차별의 대상이었다. 심지어 동성애자의 성적 지향성을 바꾸고자 약물 치료, 혐오 요법, 전기 충격, 거세 및 자궁 절제 같은 방법이 시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스톤웰 항쟁을 통해 동성애자들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사회에 알리고 동성애를 인권 문제 – 성적 소수자(sexual minorities)의 다를 수 있는 권리(rights to different) – 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오늘날 동성애자들이 처한 현실은 비참하다. 동성애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직장이나 주택을 갖기 어렵고, 스킨헤드의 대상이 되며, 심리적 고통이 심해 우울과 약물 의존 심지어는 자살 충동을 일으킨다. 또한 동성애자 부부는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혼인 관계이기 때문에 사회 보장 혜택이나 법률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프랑스에서는 동성애자들의 법적 지위와 조세 혜택을 위한 ‘민간연대계약’법을 통과시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는 진전이 있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아시아계, 유대계 등 소수 민족과 동성애자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범죄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혐오 범죄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의 80%가 백인이라는 통계에서 알 수 있듯이, 혐오 범죄의 대부분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소행이다.

<최은아/인권운동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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