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역사는 10년이 넘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은 아직까지 제도적·관습적 차별로 인해 자신들의 삶을 온전히 향유하지 못한 채 ‘있지만 없는’ 소수집단(minority)으로 살아가고 있다.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낙후된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은 더 이상 여론의 주목조차 받지 못한 채 방치되어가는 실정이다.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경제위기로 이들은 고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한국인 노동자들보다 더한 실업과 빈곤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공식적으로 값싼 노동력을 수입하려는 목적에서 만들어진 현행 연수취업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2년간의 기술연수 후에 1년간의 취업의 기회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기술연수는커녕 곧장 3D업종의 단순노동에 투입되며 연수생이라는 신분 때문에 노동자로서의 권리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저임금 착취를 당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이주노동자들에겐 한국에 합법적으로 체류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이다. 그들의 빈곤과 차별의 문제는 한국의 노동자와 빈민의 문제이며 한국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고질적인 불평등의 문제에 다름아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좀먹는 ‘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와 한국인간의, 인간 대 인간 간의 결연한 연대의식이다. 그들이 더 이상 경제적 도구로서가 아니라 한국인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이주민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될 때 한국에서의 이주노동자의 인권은 비로소 확보될 수 있다.
<김경태/인권운동사랑방>
대인지뢰는 전세계 60여 나라에 1억 1천만개 가량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인지뢰로 인한 사상자는 연간 1만여명이 넘는다. 한반도의 비무장지대에도 약 백만개의 대인지뢰가 매설되어있다. 대인지뢰는 무차별성과 영구성 때문에 불법적인 무기가 되었으며 남녀노소,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하게 피해를 준다. 그래서 대인지뢰를 눈이 없는 초병이라고 한다. 실제로 대인지뢰로 피해를 본 사람 가운데 여성과 어린이가 대다수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해서 미군 병사가 피해를 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인지뢰는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대인지뢰금지운동은 인권운동이면서도 평화운동이다. 프랑스에서는 1차대전 때 매설한 대인지뢰를 아직도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전차나 소총은 철거했지만 대인지뢰는 전쟁이 끝나도 제거를 할 수 없다. 캄보디아, 앙골라, 보스니아 등 전쟁이 끝난 지역에서 여전히 피해자가 속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1997년 국제대인지뢰금지운동(ICBL)과 그 대표인 조디 윌리암스가 공동으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고 1999년 3월 1일에 대인지뢰금지 협약이 국제법으로 발효되었다. 대인지뢰금지운동은 미국 등 강대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간이 중심의 단체들이 유엔과 각국 정부를 움직여서 만들어낸, 평화운동 그리고 인권운동의 멋진 성과이다. 그 결과 핵무기, 화학무기, 생물무기가 불법이듯이 이제 대인지뢰를 사용하는 것도 불법이 되었다. 그러나 한반도에서는 대인지뢰가 합법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미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에 가입하지 않는 것도 한반도의 분단을 핑계로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대인지뢰 금지협약에 가입하는 것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을 이루고 인권을 신장하는 길이다.
<이창수 /민족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