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세계은행 부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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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11월 30일. ‘WTO 반대, 뉴라운드 출범 반대’ 시위가 세계 전역에서 동시에 전개되었다. 특히 WTO(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가 열리던 미국의 시애틀 시가지에서는 노동자·농민·생태주의자·페미니스트·실업자·인권운동가 등 4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3일간 계속된 이 시위는 첫날 시애틀 각료회의 개막을 5시간 가량 지연시켰으며 결국 자유무역 뉴라운드의 출범을 무산시키는데 결정타를 날렸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을 토대로 1995년 정식 출범한 WTO는 공산품에서부터 농업·서비스·지적 재산권까지를 자유무역의 대상으로 두고 각종 국내 정책들을 ‘비관세 장벽’으로 취급해 철폐토록 했다. 나아가 WTO규범을 지키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혹독한 보복조치를 가함으로써, 각국 정부(특히 제3세계)와 민중들이 경제·사회 정책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힘과 합법적 주권을 제거하는 등 막대한 권력을 휘둘렀다. 그 결과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격차는 더 벌어졌고, 한 나라 안에서도 특히 노동자·여성·농민들이 그 희생양이 되었다.

따라서 시애틀에 모여든 각국의 민중들은 “세계무역기구가 장기적으로 해체되어야 하고, 그 전 단계로 최소한 우리 삶의 핵심분야는 ‘자유무역’ 체제에서 제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농업·공공서비스(교육, 보건의료)·생명특허·문화 등이 그것이다.

한편 시애틀에서 촉발된 반(反)세계화 투쟁은 올해 4월 미국의 워싱턴, 9월 체코의 프라하로 이어졌으며, 세계화 주도기관인 WTO·IMF·세계은행을 해체하고 그 체제로부터 ‘이탈’하자는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어가고 있다.

<이주영/인권운동사랑방 사회권위원회>

15인권해설

인권해설: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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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외국군대에 국가안보를 맡기고 절름발이 안보관을 갖게 된지 반세기가 되었다. 이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 주둔과 미군기지로 인해 피해 받은 주민들은 ‘군사안보’라는 이유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것은 미군의 오만과 한국정부의 사대주의로 비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매향리 주민이 생겨나고 미군기지 주변환경이 파괴되고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주한미군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다. 1946년 3월 4명의 부녀자 윤간 사건을 필두로 1956년 14세 소녀 강간사건, 최근의 대구 어린이 성추행 사건과 윤락여성 살인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범죄들이 계속되고 있다. 미군 기지 주변은 지금도 잠복된 범죄에 숨을 죽이고 있다. 주한미군은 1950년 7월 15일 한국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빼앗았고, 53년 10월 미군의 장기 주둔을 보장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은 한국을 정치, 군사적으로 장악했다. 주한미군의 각종 범죄행위는 이 두가지 사건을 통하여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주한미군의 주둔은 우리의 뼈아픈 식민지역사의 토대 위에서 군사적 대립의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한반도 굴욕적 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더구나, 전국의 7천 5백만평의 부지를 미군기지로 영구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미군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것과 같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들이 ‘돈으로 사는 여성’을 ‘노란색변기'(Yellow Stool)라고 부른 것은 그들이 가졌던 점령군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역사 위에서 미군은 지금도 너무나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한미상호간의 인식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최소한의 예방조차 어럽게 하고 있다. 바로 1966년 체결된 SOFA(한미주둔군지휘협정)이다. ‘미군’으로 표현되는 ‘군사적 폭력’의 반인권성과 폭력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군사전략의 거점이라 불리는 오키나와는 1995년 10월 미군에 의한 강간사건을 계기로 당시 8만5천여 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미군기지 철수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미국이 오키나와 현지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소음, 살인, 환경파괴 등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유형은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대다수 오키나와 현지인들은 미군기지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마을별 소모임에서부터 현지인 전체가 기지 철수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군사적 폭력은 군사적 대립 자체의 해소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필리핀도 마찬가지. 아시아 최대의 미 공군기지가 주둔해온 필리핀에서 미군기지의 환경파괴는 ‘재앙’으로 불릴 정도다. ‘군사적 폭력’의 특징은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처럼 ‘시혜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 폭력성은 구조적인 폭력으로 전화된다. 마치 잘못된 제도가 악순환의 고리를 제공하듯 아시아 미군은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종섭/소파국민행동

23인권해설

인권해설: 평화의 시대

인권해설

우리도 외국군대에 국가안보를 맡기고 절름발이 안보관을 갖게 된지 반세기가 되었다. 이 반세기 동안 주한미군 주둔과 미군기지로 인해 피해 받는 주민들은 ‘군사안보’라는 이유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 이것은 미군의 오만과 한국정부의 사대주의로 비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매향리 주민이 생겨나고 미군기지 주변환경이 파괴되고 반인륜적인 범죄행위가 주한미군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다. 1946년 3월 4명의 부녀자 윤간 사건을 필두로 1956년 14세 소녀 강간사건, 최근의 대구 어린이 성추행 사건과 윤락여성 살인 사건 등 헤아릴 수 없는 범죄들이 계속되고 있다. 미군기지 주변은 지금도 잠복된 범죄에 숨을 죽이고 있다. 주한미군은 1950년 7월15일 한국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빼앗았고, 53년 10월 미군의 장기주둔을 보장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면서 미국은 한국을 정치,군사적으로 장악했다. 주한미군의 각종 범죄행위는 이 두가지 사건을 통하여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주한미군의 주둔은 우리의 뼈아픈 식민지역사의 토대 위에서 군사적 대립의 역사를 새롭게 구축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기에 한반도 굴욕적 역사의 단면이기도 하다. 여기다, 전국의 7천5백만평의 부지를 미군기지로 영구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미군에게 면죄부를 부여한 것과 같다. 오키나와에 주둔한 미군들이 ‘돈으로 사는 여성’을 ‘노란색변기'(Yellow Stool)라고 불렀다는 것은 그들이 가졌던 점령군적인 성격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역사 위에서 미군은 지금도 너무나 당당한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한미상호간의 인식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어 최소한의 예방조차도 어렵게 하고 있다. 바로 1966년 체결된 SOFA(한미주둔군지휘협정)이다. ‘미군’으로 표현되는 ‘군사적 폭력’의 반인권성과 폭력성은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군사전략의 거점이라 불리는 오키나와는 1995년 10월 미군에 의한 강간사건을 계기로 당시 8만5천여 명이 참석했을 정도로 미군기지 철수운동이 활발한 곳이다. 미국이 오키나와 현지인들을 대하는 태도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지만, 소음, 살인, 환경파괴 등 미군기지로 인한 피해유형은 엇비슷하게 나타난다. 대다수 오키나와 현지인들은 미군기

지가 존재하는 한 이러한 피해는 계속될 것이라 입을 모으고 있다. 마을별 소모임에서부터 현지인 전체가 기지 철수에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군사적 폭력은 군사적 대립 자체의 해소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이다. 필리핀도 마찬가지. 아시아 최대의 미 공군기지가 주둔해온 필리핀에서 미군기지의 환경파괴는 ‘재앙’으로 불릴 정도다.’군사적 폭력’의 특징은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처럼 ‘시혜적’ 사고를 버리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 폭력성은 구조적인 폭력으로 전화된다. 마치 잘못된 제도가 악순환의 고리를 제공하듯 아시아 미군은 그 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정상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음이 분명하다.

<김종섭/소파국민행동>

12인권해설

인권해설: 판단

인권해설

다섯 개의 민족과 여러 종교, 언어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던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은 90년 연방을 주도하던 세르비아로부터 네 개의 민족이 독립을 선언하면서 내전에 휩싸이게 되었다. 보스니아의 독립선언으로 보스니아 전쟁이, 세르비아 내 자치주 코소보의 독립선언으로 코소보 전쟁이 발발했으며 이 두 전쟁과 그 외 크고 작은 내전으로 수십 만의 사망자와 수백 만의 난민이 발생했다. 서방 언론은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와 코소보에서 대규모 인권침해를 자행했다는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으며 유엔과 나토는 인권수호를 이유로 무력개입을 하기에 이른다.

서방세계의 개입으로 유고내전은 일단 진정되었다. 그러나 서방의 무력개입은 인도주의를 이유로 한 무력공격의 정당성 여부, 강대국의 패권주의 의혹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유엔의 의결 없이 이루어진 지난해 나토의 코소보 공습은 내전보다 더 많은 난민을 발생시켰다는 것과, 오폭과 무차별한 환경파괴, 비인도적 무기의 사용 등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이 중 가장 근본적인 비판은 실제로 대규모 인권침해가 존재했는가 여부에 대한 의심이다. 일부 언론인과 학자들은 세르비아계의 의도적인 인종청소, 상부의 명령에 의한 집단강간,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와 흡사한 포로수용소 등에 관한 서방 언론의 보도가 대부분 직접 취재가 아닌 ‘전하는 말에 의하면’이라는 형식으로 되어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목격자의 증언에 의하면’이라고 할 때도 목격자의 신원이 밝혀지거나 물증이 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심지어는 언론의 화면 조작 의혹마저도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김민선/자원활동가>

14인권해설

인권해설: 데일리 네이션

인권해설

한 사회에서 언론은 우리 몸의 혈관과 같다. 피가 탁하면 몸이 아프듯 우리 사회가 진통을 겪고 있다면 그건 바로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을 바꾸는 것은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대안언론운동은 우리 몸의 피를 맑게 하는 운동이다. 제 3세계에서 특히 필요한 운동이다. 성향과 이념을 감추지 않는 제 1세계의 언론과 달리 독재정권을 합리화하고 기생의 대가로 급성장하는 언론도 있으니 병이 날 수 밖에. 사회의 합리적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이러한 제 3세계의 언론상황은 대안언론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바로 아프리카나 아시아 지역에서 다각적으로 대안언론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은 그만큼 그 사회에 진보와 변화가 절실함을 반증하는 것이다.

은 케냐의 대안언론이다. 소외계층의 소식과 입장을 담아내는 대안언론으로서 말하자면 케냐의 ‘한겨레신문’과 같다. 월간 말, 한겨레신문으로 상징되는 80년대 대안언론은 이제 인터넷을 넘나드는 양상을 띄고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성장으로 각 단체가 발행하는 기관지도 모두 대안언론의 내용과 형식을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대안언론마저 권력과 자본에 독점당한 제도권 언론에 편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의’ 몸은 또 다른 대안언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다. 케냐와 한국,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넘나들면서.

<이유경/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매체홍보부장>

10인권해설

인권해설: 고향

인권해설

유럽인들이 미 대륙에 처음 정착했을 때 아메리카 인디언 인구는 300만에서 700만 명으로 추산되었으며,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저마다의 특성을 가진 수백의 부족들이 산재해 있었다.

유럽 식민권력이나 이후 미국 정부는 회유와 전투를 병행하며 인디언들이 땅을 포기하도록 강제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인디언 사이에 맺은 협정들은 땅을 뺏을 뿐만 아니라 인디언들의 대내외적 문제에 미국정부가 간섭, 통제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었다. 전투와 경제적 터전의 붕괴, 유럽인으로 인해 유입된 질병이 땅의 강탈과 함께 온 고난이었다. 그로 인해 인디언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고, 살아남은 인디언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는 곳에 유폐되었다. 이 보호구역이라는 곳은 백인들이 원치 않았던 땅이었고, 끈질긴 가난이 파고드는 곳이었다.

자신들의 삶과 공동체를 스스로 통제하고 싶은 인디언들의 투쟁은 만연된 가난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국 의회와 사법부의 의지에 종속되기 일수였다. 인디언 참정권 획득, 부족 자치정부의 성립, 정체성의 추구, 인디언 공동체들 간의 협력 등이 시대마다 과제로 이어져왔으며, 이들 과제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정치적 권리와 문화적 고유성 및 땅을 뿌리로 한 부족사회의 보존을 공통의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개별적으로 노력해서 정치경제적 주류사회에 끼어 들라고 설교해왔다.

오늘날 도시인이 된 인디언의 수가 보호구역 거주민을 초월하고 있고, 많은 이들이 스스로 주류사회 편입을 선택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모습을 찾고 싶어하는 그들의 땅과 자치에 대한 열망은 여전히 그들을 미국사회에서 여타 집단과 구별짓고 있다.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사무국장>

16인권해설

인권해설: 덕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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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는 오랫동안 지배권력의 ‘정치선전’을 담당해왔다. 방송의 정권홍보 역할은 말할 것도 없고, 영화나 만화, 애니메이션까지도 정치선전에 이용됐다. 어린이들이 즐겨보는 애니메이션마저 그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영화가 바로 다. 이 영화는 디즈니의 대표적인 캐릭터인 ‘도널드 덕’이 2차 대전 당시 국민들을 군대로 동원하는 역할을 은연중에 수행했다고 고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방송과 신문이 앞장서서 정권홍보를 해왔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를 보면 어렸을 적 봤던 <똘이장군>과 <해돌이 대모험>이 겹쳐서 떠오른다. 이들 애니메이션은 당시 어린이들에게 멸공에 가까운 ‘반공의식’ 주입과 국가동원체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었다.

<똘이장군>은 김일성을 ‘붉은 돼지’로, 공산당원들을 여우나 늑대로 묘사하는 등 북한에 대한 극단적인 적대감을 드러냈다. <해돌이 대모험>은 주인공 해돌이가 요정 예삐의 도움으로 북한에 납치된 아빠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는데, 당시 초등학교 반공교육용으로 상영됐던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부추겼다는 일반적인 평가 외에도, 독재정권유지에 이용됐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북한=악마집단=나쁘다’, ‘남한=좋다’라는 단순한 등식을 만들며, ‘남한 정부를 부정하는 행위=나쁜 행동=북한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켰다. 더구나 반공투사의 역할을 똘이나 해돌이 같은 ‘어린이’가 맡음으로서, 전 국민이 나라를 위태롭게 하는 ‘공산당’을 물리치는데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던 작품들이다. 독재정권시대 국가동원체제를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40년대 미국의 ‘도날드 덕’이나 우리의 ‘똘이장군’ 모두 국가가 애니메이션이라는 ‘귀여운 장르’를 이용해, 국민을 파시즘체제에 동원했다는 점에서 서늘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이유경/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매체홍보부장>

10인권해설

인권해설: 버림받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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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이민자들이 건설한 나라인 만큼 이민자들을 위한 각종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영주권제도로, 미국에 합법적으로 영구히 거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얻으면(이 때 국적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보장권, 교육권, 재산권 등 참정권을 제외한 일상생활의 모든 권리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는 추방될 수 있다. 영주권을 획득하고 5년이 지나면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시민권을 획득하면 국적이 미국으로 변한다. 다른 하나는 이민법이다. 이 법은 시민권자나 영주권자의 초청이민을 가능하게 해서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을 돕고 또한 외국으로부터 취업이민을 받아들여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한다는 취지로 제정되었다. 이러한 이민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곳은 이민국(Immigration and Naturalization Service)으로 출입국관리, 영주권 및 시민권 발급, 불법체류자 및 범법영주권자 추방 등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내 인구증가와 노동집약적 산업의 해외이전으로 노동력보다는 일자리가 모자라게 되면서 정부와 사회의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는 돌변, 이민법은 이민을 돕기보다는 막는 법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그 결정판이 바로 96년 개정이민법으로, 오클라호마 테러사건 이후 반테러리즘의 명목으로 개정된 이민법은 영주권자의 사회복지 수혜권을 축소하고 추방 가능한 범법영주권자의 범위를 확대하였다. 그러나 개정된 법안 때문에 본국어를 전혀 할 수 없고 가족도 모두 미국에 있는 영주권자가 10년 전에 가벼운 벌금형을 받은 전과 때문에 추방당하는 것과 같은 인권침해 행위가 속출하자 이민자 권익 옹호단체들의 법개정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이민국과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정치적 망명 신청자의 강제수용이다. 본국에서의 정치적 박해를 피해 미국에 망명을 신청한 자들을 이민국은 행정편의라는 명목으로 강제수용하고 있다. 그것도 시설부족을 이유로 대부분 교도소에 수용하는데 망명수락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짧게는 몇주에서 길게는 몇년 동안 외출이나 외부와의 자유로운 접촉을 할 수 없다. 정부 지원금을 노린 교도소간 경쟁으로 망명신청자 수용은 이미 하나의 산업이 되어 버렸다.

<김민선/자원활동가>

13인권해설

인권해설: 스코츠보로 : 미국의 비극

인권해설

1865년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로 끝난 뒤 남부의 흑인 노예는 해방되고 투표권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형식적인 평등만을 얻었을 뿐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은 계속되었다. 남부의 흑인들은 수확의 대부분을 소작세로 바쳐야 하는 노예와 다를 바 없는 소작농 생활을 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19세기 말부터 남부에서는 철도, 학교, 기타 공공 공간에서의 인종분리 정책을 공공연히 시행하였다. 또한 까다로운 선거인등록법을 만들어 흑인들의 투표권을 사실상 박탈했다. 이러한 차별의 근저에는 두 가지 공포심리가 깔려 있었는데, 그 하나는 성(性)적인 것으로, 흑인이 백인여자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따라서 백인 여자를 강간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무고한 흑인이 사형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하나의 공포심은 정치경제적인 것으로, 미국의 노동운동이 성장해갈 무렵 가난한 흑인들과 백인들이 합세하는 기미가 보이자 부유한 백인들은 서둘러 흑인들의 경제력 성장에 대한 공포심리를 자극하여 백인들을 반흑인전선으로 몰아세웠다.

아홉 명의 흑인이 백인 여자를 강간하였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공산당의 구명운동으로 구제된 스코츠보로 사건은 이러한 시대 분위기 속에서 발생하였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1931년은 대공황의 초창기로, 존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잘 나타나 있듯이 흑백 가릴 것 없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난 방랑자들이 온 미국을 휩쓸고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당시 혼란의 상징이었던 이 방랑자들을 침입자로 간주해 이들에 대한 적대행위가 빈번히 일어났다.

결국 스코츠보로 사건이 완전히 종결되는데는 4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이 사건으로 흑인과 백인은 처음으로 연합전선을 형성하였으며 형식적 평등 아래 감춰져 있던 실질적 인종차별이 드러나 6,70년대 흑인민권운동의 도화선을 묻은 셈이 되었다.

<김민선/자원활동가>

12인권해설

인권해설: 착한 쿠르드 나쁜 쿠르드: 산 말고는 친구가 없다

인권해설

쿠르드족은 세계에서 나라 없는 민족으로는 가장 큰 그룹(대략 2,500만 이상으로 추산)이며, 터키, 시리아, 이라크, 이란의 접경 산악지대에 거주하고 있다. 터키에 5700만 인구 중 20%인 1000만 명, 이란에 550만 명, 이라크에 410만 명 정도 분포하고 있다. 현재까지도 주로 유목생활을 하는 쿠르드족은 주변의 다른 민족과는 구별되는 언어적, 문화적 공동체로 수천 년 존속해오면서도 독립된 국가를 세우지 못해 거주지 정부로부터 많은 정치적 탄압을 받아왔다.

터키는 근대 국가 체제로 넘어오면서 쿠르드족의 주권 말살정책을 펴서 쿠르드어의 사용을 금지했고 쿠르드 유목민에 대한 이주정책을 강행해 많은 유목 공동체를 파괴시켰다. 1984년부터 오잘란이 이끄는 쿠르디스탄 노동당(PKK)의 민족저항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정부와의 내전으로 약 37000명의 희생자를 냈다(이중 대부분은 쿠르드인이다). 내전 와중에서 정부는 3700개의 쿠르드 마을을 파괴, 200만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현재 PKK지도자 오잘란은 체포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고 있으며 EU가 터키의 가입조건으로 오잘란에 대한 사면을 요구하고 있음에도 터키 정부는 확답을 하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정부는 1975년부터 대 쿠르드 강경책을 시행, 1987년부터 89년 사이에는 화학 무기를 사용한 초토화 작전으로 4,000개 이상의 쿠르드족 촌락을 파괴하고 수십만의 사망자와 수백만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이라크의 쿠르드인 탄압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난을 받았으며 유엔은 미국 주도하에 인도적 목적을 위한 무력개입을 시도하고 무기와 각종 물자의 금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터키의 쿠르드인 탄압에 대해서는 냉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난 10년간 터키에 10억 달러 이상의 무기를 판매했다. 터키가 수입한 많은 무기들은 산악지형에 유리한 것으로 쿠르드인 공격에 쓰이고 있다.

<김민선/자원활동가>

16인권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