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대한문을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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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제발, 이러지 마세요.”

눈물이 그렁그렁 한 채, 말을 건네는 그는 구사대였다.

2009년 여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공장점거파업이 두 달을 넘기도록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폭염이 계속되었다. 공권력과 무장한 경비용역 그리고 구사대에 의한 폭력이 이어졌고, 식량, 식수, 전기, 의료진 차단과 함께 노동자들의 고립이 길어져만 갔다. 식량과 생필품 반입을 요구하며 공장출입구 바리케이드를 사이에 두고 얼굴을 맞대고 매일 밀고 당기던 그때, 그가 진심을 의심할 수 없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자 가슴이 덜컹했지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예요? 어서 비키세요! 소리치곤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그 후 한동안 아침에 일어나면 평택으로 가서 그를 찾아야 할 것 같았다. 이해하고 싶진 않지만, 당신의 고통을 쏘아붙이며 외면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동료를 버린 배신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고개 숙이다 그 시간을 버티기 위해 오히려 단단히 악을 쓰는 것으로 변해가는 구사대, 인간 밑바닥을 보는 것인가 절망을 줬던 그 사람들 사이에서 눈물로 신호를 줬던 그에 대한 나의 예의라 생각했나보다. 그게, 그렇게 내몰리면 그리 저지를지도 모를, 비참해지고 싶지 않은 우리를 위해 자신에게 거는 사람됨의 약속이자 용서.

 

“용서는 없다”

그 지옥 같던 여름을 길게 늘인 듯 몇 계절을 보낸 대한문의 어느 날, 분노한 사람들이 내건 말이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아이히만을 보았다. 그가 국가라는 이름을 걸고 저지르는 폭력과 멸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권리를 찾고자 하면 그와 동시에 ‘권리를 찾을 권리 없음’ 선언을 하는 국가에게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이 대한문에 멈춰 섰다. 그리고 함께 하고파 찾아드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아이히만은 권리를 제한 할 수 있는 예외법조문을 구석구석 찾아와 읊조리며 추모와 애도의 시간과 장소를, 공존의 목소리를, 노래를, 몸짓을, 연대를, 사람됨의 선언을, 크고 작게 필요한 일상까지도 철저히 틀어막았다. 집회시위의 자유, 표현의 자유, 노동권 등 권리의 목록은 왜냐는 질문과 함께 결코 허용되지 않았고, 어이없고 간교한 폭력이 반복되었다. 힘껏 싸울수록 폭력의 강도는 높아져만 갔다. 가장 참담한 것은 누구든 그 공간에 뜻을 함께하는 순간 그는 시민이 아닌 이, 존재와 뗄 수 없는 권리를 박탈당한 이, 그렇게 취급해도 되는 이가 되어버리는 모멸감이었다. 그런 취급을 하는 국가와 임무라 하며 그 뜻을 수행하는 이들과 같은 시간을 살아가야한다는 공포와 함께.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것만으로, 보편적인 권리,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인간이 서로에게 약속하고 인정하는 권리가 인권이라 했던가. 그 약속의 결정체를 자처하는 국가와 이를 수행하는 이가 우리의 온전함을 침해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 국가범죄. 국제인권법 그리고 국제 선언과 원칙들이 평화를 해치고 전쟁을 비롯한 반인도적인 범죄와 그 수행에 연관된 행위도 범죄라 정하고 있다. 이는 좀 더 나은 삶을 위하기 이전에 우리의 존재기반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이다.

‘대한문을 지켜라’가 아이히만이 지니는 명령이라기보다는 인권을 구석구석 만들어가야 할 우리가 쏘아올린 저항의 신호이지 않았을까.

 

기선 인권운동공간 활 상임활동가

27인권해설

인권해설: 뉴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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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남성 대통령이었다. 바야흐로 흑인이 합중국 최고통수권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흑인 커뮤니티는 더 이상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아니게 된 것 같았다. 정치영역에서의 과소 대표로 인한 사회적 비가시화도 이제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미국 흑인의 역사에서 그만한 승리의 순간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지만 흑인 커뮤니티 전부가 마냥 t기뻐하기만 할 수는 없는 사정이 존재했다. 오바마가 당선된 바로 그날,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동성 결혼의 제도화를 무마시키는 주민발의안 8 (Proposition 8)이 주민 총투표로 통과됐다. 그리고 새로운 전선이 그어졌다. 흑인과 백인 사이도 여성과 남성 사이도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도 아니었다. 동성혼 법제화 운동 진영과 흑인 커뮤니티 사이의 전선이었다. 동성애자 권리 운동 진영은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전방위적으로 도왔는데 흑인 커뮤니티는 주민발의안 8의 통과를 막는데 기여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흑인 커뮤니티는 한꺼번에 호모포비아 집단으로 환원되었다. 졸지에 동성애자 운동의 적이 되었다. 인종주의 철폐를 통한 보편적 권리를 요구하며 시민권 운동의 중심축으로 활약하고 대통령을 배출할 정도로 탄탄히 정치적 역량을 길러온 흑인 커뮤니티가, 보수적 가족 제도 최후의 보루로 순식간에 상징화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요루바 리첸의 <뉴 블랙>은 바로 그와 같은 새로운 적대의 장 속에서 태어난 다큐멘터리이다. 흑인 커뮤니티 안에도 당연히 많은 성소수자 당사자들, 동성혼 법제화 운동 활동가들, 그리고 이들의 지지자들이 존재했다. 이들은 주민발의안 8 통과의 배경으로 흑인 커뮤니티의 집단적 호모포비아를 지목하는 자들이 보이는 의혹과 실망과 불신의 시선에 당황하고 분노했다. 그리고 동시에 흑인 커뮤니티 내부에서 동성혼 법제화라는 의제를 본격적으로 공론화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흑인 커뮤니티는 균질하고 단일한 집단이 아니었다. 일각에서 공격하는 것처럼 단순한 호모포비아 집단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든 억압과 차별의 문제에 빠짐없이 급진적인 집단도 아니었다.

한편에서는 동성혼 법제화 운동 진영이 흑인 커뮤니티를 원망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우파 보수 기독교계가 호모포비아를 매개로 인종 간 연대를 모색하는 기묘하게 뒤틀린 정치 지형 속에서 <뉴 블랙>은 2012년의 메릴랜드 주(2010년 인구 센서스에 따르면 가장 큰 도시인 볼티모어의 흑인 인구 비율이 63.7%로 미국의 도시들 중 다섯 번째로 그 비중이 높음)를 찾는다. 그해 2월 메릴랜드 주 의회는 동성결혼보호법(Civil wMarriage Protection Act)을 통과시켰다. 이에 즉각 보수적인 성향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극렬한 반대 세력이 형성되었고 11월 대통령 선거일에 맞춰 해당 법에 대한 찬반을 다투는 메릴랜드 주 주민 총투표가 잡힌다.

다큐멘터리는 총투표를 앞둔 메릴랜드 주의 흑인 커뮤니티가 법제화에 대한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으로 나뉘어 열띠게 겨루어 나가는 모습을 담았다. 흑인 커뮤니티가 흑인 가족, 흑인 교회, 흑인 공동체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탐색하는 면면을 고루 보여준다.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의 입장을 교차시켜 나가며 흑인 커뮤니티 내부의 입장 차들을 펼쳐 놓는다. 그러면서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흑인(뉴 블랙)” 공동체란 흑인들 가운데 엄연히 존재하는 동성애자들과 동성 커플 가족들을 부정하고 지움으로써가 아니라 이들을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구성해 나가야 하리라는 점을 시사한다. 동성애자 및 동성 커플 가족에 대한 인정과 지지가 흑인 커뮤니티를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강화하는 길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11월 오바마는 재선되고 메릴랜드 주의 동성결혼보호법은 과반의 표를 얻어 비로소 발효가 확정된다. <새로운 흑인>은 오바마가 그의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동성애자의 권리를 직접 언급하는 대목을 보여주며 끝난다. 연임에 성공한 흑인 대통령의 동성애자 권리 지지 발언은 그 장면을 목격하는 무수한 이들에게 취임식의 하이라이트로 각인됐다. 하지만 대통령이 흑인이라고, 바로 그가 동성애자 권리를 지지한다고 미국 사회 전체가 문득 인종주의와 호모포비아를 말끔히 넘어 서지는 않는다. 결혼 평등의 법제화 역시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전부가 아니며 “동성애자” 권리 운동의 지형이 다양한 성소수자들의 사정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차별과 빈곤과 범죄화의 악순환 속에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성소수자들은 여전히 집이 없고 부당하게 구금되며 일터에서 쫓겨난다. 그래서 “새로운 흑인”에 대한 고민은 <뉴 블랙>이 다루는 바들을 넘어 계속될 수밖에 없다.

2013년 6월 26일 연방대법원은 동성혼 법제화를 가로막는 주민발의안 8과 결혼보호법 (DOMA: Defense of Marriage Act)의 위헌성을 확인하는 판결을 내린다. 시민권 확장에 유의미한 진전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같은 연방대법원이 하루 전날 내린 판결은 완전히 딴판이다. 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의 핵심적 성과 중 하나인 투표권리법(Voting Rights Act)의 주요 조항(인종차별이 심했던 남부 지역 일부 주에서 선거법을 개정하고자 할 경우 연방정부의 승인을 반드시 얻도록 한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확정지은 것이다. 이는 인종을 차별 금지 범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 인종에 대한 중립적 인식이라고 보는 포스트-인종주의적 경향의 반영으로 여전히 인종주의가 팽배한 미국 사회에서 그 자체로 인종주의적인 판결에 다름 아니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이 두 가지 판결 내용을 배경으로 흑인 커뮤니티, 성소수자 커뮤니티, 흑인-성소수자 커뮤니티는 어떻게 같이 고민하고 연대해 나가야 할까? 지금 미국 사회에서 이 질문은 현재 진행형이다. <새로운 흑인>은 그래서 미국 사회, 흑인 커뮤니티, 그리고 성소수자 운동 진영이 이제까지 이룩한 바보다 앞으로 이뤄나가야 할 바들을 더 많이 생각하게 하는 다큐멘터리이다.

이진화/케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22인권해설

인권해설: 레인보우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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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에서는 13명의 레즈비언을 20년간 기록하는 영상기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일까 짧지 않은 기간 같은 공간,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기록을 담은 <레인보우 팝콘>이 반가웠다.

 

기록에 담긴 당사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다. “결혼이 가지는 지지와 허용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감”을 위한 선택, “나는 이 관계에서 생존할 수 있다.”던 주인공의 고백. 우리 단체의 13명의 레즈비언들의 입을 통해서도 기록되고 있는 흔한 고백이다.

 

이성애를 강요하고 제도결혼에의 편입을 ‘상식’이라 세뇌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을 독점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권력을 독점한 이성애주의와 제도결혼을 피하고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강압 속에서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동성교제를 선택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그럼에도’ 이성교제를 선택한다.

 

두 경우에서 모두 이때의 ‘선택’이 온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가족구성에 집중되어 있는 ‘지지와 허용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감’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이성애자인가?’, ‘혹 우리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성간 결합만을 정상화하고 제도결혼이 독점한 권력엔 문제가 없는가?’ 등의 질문을 자신과 사회에 던져야 한다.

 

사랑이 움직이듯 정체성도 움직인다. 이 세상 무엇 하나 불변하는 것은 없다. 하나의 선택만을 강용하는 세상, 그 선택을 의심하고 묻지 않는 사회는 위험하다. 사랑이 생존을 위한 도구가, 생존이 사랑의 결과가 아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박김수진(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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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드래프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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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비’양심적 병역기피를 꿈꾸며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와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물론 그들이 가장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저, 낯설지 않은 사람의 존재는 낯선 공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느낄 위화감을 조금은 덜어준다(다른 위화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트랜스젠더가 징병검사장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김준표 감독의 작품 <드래프트 데이>를 보며 태국 징병검사장 풍경에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태도다. 한국에서 mtf(male-to-female) 트랜스젠더가 징병검사장에 가야 할 때면, 트랜스젠더는 자기 혼자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대체로 맞다. 하지만 태국의 징병검사장엔 적잖은 트랜스젠더가 있다. 친구와 함께 가지 않더라도 다른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고 실제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 이것이 부러웠다. 이 풍경은 태국이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한국과 상당히 다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 한국 국민으로 분류된 mtf/트랜스여성이나 태어날 때 남자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라면 특정 나이에 징병검사를 받아야 한다. 남성으로 동일시하지 않음에도 남성만 간다는 곳에 참여해야 하기에 고민과 반응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서두른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비남성 혹은 여성으로 생활할 수 없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는 그곳에 가고 싶을 리 없다. 하지만 어떤 트랜스젠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얘기한다. 징병검사 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의료적 조치를 시작하고 싶지만, 이 계획이 입대를 피하기 위해서는 아니며 군대에 가야 한다면 가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다른 사유가 없다면, 가야 한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의 징병제도가 구성하는 사병의 성원권은 남성만 갖지 않으며 남성만 사병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 혹은 비남성도 사병이 된다. 아울러 군대에 간 트랜스젠더의 경험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어떤 이성애자 mtf/트랜스젠더는 군대에서 애인도 만들고 재밌었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며,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군대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에게 “병역기피 수단으로 성전환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기피’ 목적이면 그에 해당하는 법으로 조치하면 될 일이다. ‘기피’는 관계 기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 트랜스젠더가 책임지고 답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다른 답을 하고 싶다. 현재의 징병제도는 의료적 조치를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트랜스젠더만 염두에 둔다.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사유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가 트랜스젠더에게 의료적 조치를 강제하는 명백한 침해며 폭력이다. 징병제도는 의료적 조치 여부와 무관하게 트랜스젠더 이슈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면제된 트랜스젠더가 몇 년 뒤 자신을 다르게 정체화하거나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럼 또 어떤가. 오늘날의 군대가 계급과 사회적 지위 차이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나 양심적 병역기피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이 ‘비’양심적 병역거부나 ‘비’양심적 병역기피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군대 자체가 흔들리고 군대를 다르게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runtoruin@gmail.com)

28인권해설

인권해설: 비바람을 헤친 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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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1968년, 나는 레즈비언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소쓰 윤)

 

캄보디아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담담한 듯하면서 날카롭다. 주인공들은 소박한 자기 삶과 사랑 이야기를 쉽고 짤막하게 풀어놓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언어 너머의 시간과 역사를 읽어내야 한다.

 

두 여성이 헤쳐가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처음 만나 알게 되고, 신뢰를 쌓게 되고, 가까워지고, 함께 살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인정 받기 위해, 갈등하고 모욕을 당하며 싸우고 요구하고 주장해야 한다.

 

몇 명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과 몇 마디 나오지 않는 내레이션 중에 ‘같은 성끼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없었다’,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주목하라. 그래서 동성애자는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 사회생활을 해도 벽장 속에 있는 존재, 그래서 결국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 그것이 이들이 헤쳐왔던 험난한 여정이다.

 

주인공들은 권리를 요구한다. 존재를 인정 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액면 그대로의 언어에 한정되어 이들 여성커플의 이야기를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섭섭할 것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서로 의지하면서 산다는 건,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요리하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은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부부(夫婦)의 모습이 아니다. <비바람을 헤친 긴 사랑>이 주는 감흥의 큰 부분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두 여성의 다정하고 깊고 평등한 관계, 그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이여울(저널리스트, 여성주의 저널<일다> 대표)

27인권해설

인권해설: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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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지나 경기도에 도착한 북한강 물과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충청도를 지나온 남한강 물이 양평 두물머리 들판에서 하나로 만나 한강이 된다. 두 개의 큰물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라 하여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두물머리에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유기농업’이다.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업 생산자 단체인 정농회가 창립되고 그 중 한 가족이 두물머리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하였다. 곳곳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마을이 생기고 유기농 단지가 만들어지면서 팔당 두물머리는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생산지가 되었다.

 

그동안 두물머리 사람들은 비바람이 들이치는 처마를 조금 늘릴 수도 없었고 강아지 한 마리 키우기 위해 마당 한 쪽에 개집을 짓지도 못했다고 한다. 상수원 보호구역에 묶여 있는 7~8개의 중첩규제법은 두물머리 사람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합법적으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경제활동 수단이 농사였다. 온갖 규제에 묶여 희망이 없는 땅으로 낙인 찍혔던 팔당 두물머리가 유기농업 운동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였다. 북한강, 남한강에 인접해 있는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의 상당 부분이 4대강 사업에 편입되었다. 유기농업 운동을 이끌었던 농민들은 조합 사람들을 모으고 마을 사람들을 독려하여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길고 긴 이름의 대책기구를 꾸렸다.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가 시작되었다.

 

해가 바뀌고 농지보존 싸움이 길어지자 농민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4대강 찬성 주민들을 동원한 정부의 회유와 협박은 집요하게 계속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농지보존 싸움의 대오를 이탈하는 농민들은 늘어났고 4대강 찬성, 반대 주민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어져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계속 되었고 연행과 벌금이 쌓이면서 농민들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2011년, 남은 곳은 두물머리 8만평 그리고 남은 사람은 두물머리 4가구 밖에 없다. 그러나 농지보존 싸움을 떠난 농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천주교, 시민 사회단체, 생활협동조합원, 대학생, 젊은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2012년 8월, 강제철거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두물머리 문제는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세계 최고의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을 만들기로 정부와 농민들이 합의를 보았다. 지금도 두물머리는 ‘생태학습장’이라는 상생의 사회적 합의를 현실화하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서규섭(농사짓고 있는 농부)

32인권해설

인권해설: 팔당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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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댐이 생기면서 팔당사람들은 농사짓던 땅을 빼앗겼고, 이후에도 상수원 보호라는 규제 때문에 어떠한 생산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삶을 지속해야했던 농부들은 강물의 수질에 도움을 주면서도 지역의 생산 활동과 도시의 먹거리가 순환할 수 있는 유기농이라는 고리를 찾아낸다. 하지만 빼앗긴 땅을 다시 임대라는 형식으로 쟁취해야했고, 무엇보다 유기농이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70년대였기에, 이들이 유기농을 시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빨갱이’라고 매도를 당하면서도 이들이 뿌렸던 씨앗은 어느새 점점 자라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농의 밑거름이 된다. 팔당의 유기농지가 한국 유기농의 발원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는 팔당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우게 되었을 때 이 싸움을 가능하게 했던 이들의 자부심이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되었던 팔당사람들의 투쟁은, 때로는 4대강 사업이라는 국책사업에 맞서는 투쟁이었고, 때로는 이 땅 유기농업의 발원지의 역사성과 유기농지 자체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진행되는 일방적인 국책사업이라는 폭력에 저항했던 삶의 꿈틀거림이었다. 어쩌면 정작 농부들도 4대강 사업 중단과 유기농지 보존이라는 ‘대의’만을 생각하고 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3년이라는 시간을 농부들 옆에서 먹고 자며 만들어진 고은진 감독의 영화 <팔당사람들>은 그 ‘대의’라는 우산 혹은 무기를 들고 있었던 농부들의 삶, 꿈틀거리는 삶,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아낸 영화이다.

삶이 짓밟히지 않기 위해, 삶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꿈틀거리고 저항하지만, 그 과정 속에 있는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함께 싸우지만 팔당사람들이 언제나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같이 똥 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는 떠나야하고, 그래서 아쉽기도 미안하기도 서먹하기도 하다. 계속 남아서 저항하는 삶도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또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삶이기에 싸우겠다는 힘찬 결심은 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웠던 팔당 유기농지 보존 싸움은 합의에 도달했고, 유기농지에 쌓여왔던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땅을 둘러싼 관계들을 잘 구성하기 위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팔당사람들이 만들어낸 저항의 시간들이,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일방적인 국책사업이라는 폭력에게 ‘이것은 폭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삶들이 저항할 때 우리는 그 삶들을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기며 그 삶들에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팔당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22인권해설

인권해설: 오프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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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label, 내 몸을 원해?

 

 

 

‘임상시험’은 무엇일까?

치료약이 많지 않은 난치병, 희귀병 환자들은 임상시험을 마지막 희망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신약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초특급 열차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사 몇 대 꽂고 알약 몇 개 삼키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알바거리라 하기도 한다. 제약사에게 임상시험은 연간 수천억, 수조억을 벌어들일 수 있는 ‘돈방석’이다.

임상시험의 이름이 무엇이든, 약을 주는 자와, 그것을 받는 자 사이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이 권력이 어떻게 병원에 갇힌 환자를 죽이고, 교도소 재소자의 몸을 망가뜨리고, 이라크에 파병된 한 젊은 군인의 영혼을 파괴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영화 전반에 걸쳐 지적하고 있는 정신질환 치료제의 남용 문제는 정신이 건강하기 힘든 이 사회에서 우리의 눈길을 더욱 잡아끈다.

나는 기니피그(시험용 쥐)가 아니라고, 너희가 요구하는 ‘시험에 적합한 몸’을 가진 물건이 아니라고, 온전한 한 인간이라고, 너희가 내 몸을 원한다면 우선 그것부터 배우라고 영화는 담담하지만 날선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강아라, 김지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28인권해설

인권해설: 땅, 밥, 삶

인권해설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은 왜 가난할까.

 

세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만 굴러갔더라면, 어쩌면 그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쌀농사만 1년에 3모작, 4모작 할 수 있는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받는 나라에서 농부들은 왜 가난할까. 세상의 빈곤에는 이유가 있었고, 빈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의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명확히 보이는 손에 의한 것이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이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과도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이자를 갚기 위해 자국의 농업을 수출 중심의 산업으로 바꾸었다. 말리는 면화를,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하고, 영화에서처럼 캄보디아는 설탕을, 우간다는 팜오일을 수출한다. 더 이상 식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은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수입된 식량을 소비한다. 그리고 이러한 농산물의 가격은 식량에 대한 주식거래, 투기에 의해 좌우된다. 가격의 폭락과 폭등은 누군가에게는 이윤,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신호이다.

 

이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는 것도 균열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긍정적인 방식으로 불공정한 무역구조를 바꾸자고 하는 운동이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거대 기업들의 독점적인 구조 속에서 대안적인 무역과 가치사슬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구에서 시작된 자기 반성적 운동이다. 공정무역은 단순히 부유한 국가의 소비자들이 조금 더 돈을 지불하고 정당한 가격에 사온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만이 갖던 독점적 권력을 생산자와 나누어 갖는다.

 

공정무역 생산자들과 계약을 하다보면 가끔 무슨 ‘갑’이 맨날 ‘을’에게 사정을 하냐고 한탄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갑을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거래관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생기는 즐거운 현상이다. 공정무역에서 구매자는 더 이상 독점적 권력이 없기 때문에 생산자는 얼마만큼을 생산하고 누구에게 얼마에 판매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산물에 대한 결정권은 곧 농민들의 삶에 대한 결정권과 존엄성이 된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는 마스코바도 설탕을 생산하는 공정무역 단체 PFTC의 로메오 카팔라 의장이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공정무역은 때론 목숨을 걸고 때론 공동체의 운명을 건 모험이자 도전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렵고 복잡하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되는 운동은 아니다.) 커피 한 잔, 초콜릿 한 조각에서, 아주 적은 양식과 아주 작은 희망으로, 조금씩 즐거운 변화를 꿈꾸어본다.

이하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사무국장

25인권해설

인권해설: 거미의 땅

인권해설

한 때 ‘양갈보’,  ‘양공주’라 불렸던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는 한 때 미군기지 근처의 유흥가였던, 그러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동한 후 쇠락한 경기 북부의 공간들을 담는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화려함을 잃어버린 곳, 더 이상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동네. 카메라는 느린 속도로 이 공간의 공기를 담아낸다. 사람들의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 생기를 잃어버린 버려진 공간들, 한참을 바라봐도 인적이 드문 휑한 골목길…

 

이 공간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중 한 곳인 의정부 뺏벌 지역은 주민들에 의해 보상금관련 집회가 열려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된 기사에는 중장년 남성 모모 씨들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이 공간에서 살아왔을 여자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는 그 공간에서 일하고 살아남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여자들 세 명의 삶이 담겨있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들의 서사가 많이 담겨있지는 않다. 어떻게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와 같이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공간을 견디며 지루하고 지난하게 살아가는 무게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와중에 툭툭 화면을 흔들며 세 주인공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영화에서 한 주인공이 말했다. 이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져갔다’고. 아마도 주인공은 늘 숨을 죽이며 살다가 도망치듯 사라져야 했던 여성들을 보며, 빛이 아닌 어둠을 찾아 스스스- 사라지는 거미를 떠올렸을 것이다. 철거가 진행되고 개발이 완료되면, 또 한 무리의 여성들이 거미처럼 이곳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용산, 영등포, 춘천의 난초촌 등의 성매매 집결지들이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사라질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영화를 통해 이 여성들은 각자의 이름과 역사가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드러냈다. 스물여섯 번의 낙태 얘기를 담담히 토해내는 분식집 주인 바비 엄마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던 안성자 씨로, 그림 그리는 욕쟁이 언니 인순 씨로… 색깔 있는 존재로 우리의 삶에 들어왔다. 이들은 더 이상 거미가 아니다.

송이송(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26인권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