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 우리가 돈이 없지, 사랑이 없냐

소식

애인이 생겼습니다. 만나기로 한건 1월 중순. 너무 추워서 손발이 꽁꽁 얼어버리는 시기였지만 옷깃 바깥으로 손을 잡고 걸을만큼 서로가 좋았습니다. 서로에 대해 깊게 아는건 아니지만 서로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걸 깨달아 버렸으니, 사랑과 연애, 해야죠. 그쵸? (웃음) 

 

저는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걸 말로, 글로 쫑알쫑알 늘어놓을 수 있고 그게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제 연인은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그래서 참 많이 투닥거렸고 지금도 그러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애인의 온 감각이 나를 향해 있구나, 아 당신은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를 느끼게끔 해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인간관계에서 주로 맺어오던 방식과는 참 다른 문법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좋습니다.(!)

 

저처럼 속 이야기를 세세하게 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잘해주고, 제가 헉, 하고 놀랄만큼 속 깊은 모습을 보여주어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또, 인권활동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할 때 마다 와 멋져, 레나 최고야, 라고 말해줍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면 끄덕인 다음 그 일을 하면서 제가 밥 잘 먹고, 잠 잘자는지를 물어봐주는,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애인과 잘 만나지는 못합니다. 둘 다 너무 바쁘고, 돈이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돈인 사회에서, 제 애인은 하루를 꽉 채워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겨우겨우 주 1회 쉬곤 합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에게 만나자는 약속은 휴식을 내주는 일이자 시간을 쓰는 일이고, 돈까지 쓰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자주 못만날 때마다 저는 불안이 올라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게 맞을까? 아무리 바빠두! 나에게 시간을 써주었음 좋겠어, 아니면 나랑 같이 쉬면 되잖아!!!! 하는 마음이 훅훅 올라오고 그래서 다 말합니다. 화도 내고 서운함도 표시하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할때마다 노력해보겠다는 대답에 저는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고 충분치 않아 또다시 말하고 성내버리지만 애인은 그럴때마다 더, 더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럴때마다 사실 서글픕니다. 임금이 보장된 상태로 주 4일제가 도입된다면…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역시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안정된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된다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의지로 불타곤 합니다.

 

사실, 이렇게 승화시키는 것이 제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전부’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친밀한 관계인만큼 관계안에서의 역동들을 잘 살피고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열심히 싸우고 다져가며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의 삶이 이런 사회구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좌지우지 되지만 관계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역동들을 이렇게만 끼워놓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아무튼, 그래서 만날 시간이 없다는건… 제 입장에서는 관계가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과 다름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문법이 다르다고 사랑을 끊어내나요? 제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단호1)

 

그래서 최근에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못만나서 속상할때마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똑같이 속상해하면서 사랑한다는 답이 돌아와요. 그러면 순간의 불안이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서 우리의 애정을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단호2)

 

자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여건과 상황을 무시하며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자주 못만나 아쉽다고, 충분히 서운함과 속상함을 표현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열심히,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인이 오미크론에 걸렸기 때문에 (…엉엉…) 3월에는 각자 자기를 잘 돌보며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정을 해보곤 합니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우면 사랑하기에 더 쉬운 조건이겠으나, 여유가 있는 시기에 이렇게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만한, 정확히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를일이잖아요? 그래서 더 나은 조건을 그냥 바라기보단 지금, 현재, 닿아있는 연인과 열심히, 애틋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잘 쌓아가다보면 앞으로의 삶이 보다 안온할 거라 믿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누다보니 울림 구독자분들은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쌓아가는지 들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대선 전부터, 끝난 후에도 심란한 정세 속,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앓는 이들이 많아지는 시기이기에 모두들 안온하게, 각자의 삶에서 다채로운 사랑이 넘실거리길 바라며 제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

52소식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for 25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소식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for 25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Seoul Human Right Film Festival, first established in 1996, is a non-profit human rights organization that communicates and cooperates with others by showing human rights films.
Everyone has the right to see human rights films. Every human rights film has the right to be screened everywhere. It’s because human rights are the rights to life itself. It’s because human rights films are films on every life itself.

To Defend ‘Freedom of Expression’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refuses any censorship of films. ‘Freedom of Expression’ is one of the most fundamental human rights. SHRFF aims to help establish a society that accepts and embraces differences, thereby, all of the minority groups in the society can make their voice heard.

To Spread Human Rights Sensibility
SHRFF invites you to the scenes of human rights violations all over the world, to the lives of people fighting for human rights, to the places where all the ‘differences’ are harmonized, and to the issues that every human being should pay attention to.

To Achieve Accessibility Rights and Disability Justice
Film screening area for human rights films must be accessible to anyone. Hence, SHRFF protect accessibility rights in our showing place. Anyone should be able to experience human rights films. Ability to read, see, and hear is not same for everyone. Hence, SHRFF creates barrier-free film screenings to meet everyone in different ways.

To Discover Alternative Films for Humanity
Scouting for various videos about human rights is one of the missions of SHRFF. SHRFF will challenge and stimulate the overly commercialized film industry to promote cultural diversity. SHRFF will contribute to expand a moving image culture for humanity.

More details on SHRFF: www.hrffseoul.org/enwww.facebook.com/SeoulHRFF

ELIGIBILITY

1. Films that provide insight into human rights issues.

2. All genres including fiction, documentary, animation and experimental film can be accepted.

3. Film selection criteria are based on artistic completion and, above all, sincerity in dealing with human rights issues, irrespective of genre, format and length.

4. The year of film completion has to be 2020~2022.

5. SHRFF responds to the calls of Palestinians and joins the BDS movement against Israel.  Any film commissioned or funded by an official Israeli body or non-Israeli institution that serves Brand Israel or similar propaganda purposes regardless of the contents of the film will not be accepted. See details on BDS movement and 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 https://bdsmovement.net/pacbi 

■ The 25th Seoul Human Rights Film Festival will be held in September, 2022.

ENTRY REQUIREMENTS

1. International film submission deadline: 3, April, 2022.

2. Entry fee: no entry fee is charged.

3. Online entry application link:  https://forms.gle/X6Y3yerD5bVFdTRY7 

4. Only online links for previewing is accepted. The streaming of a film must be free of charge, the number of previewing must not be limited and the film must be available till the opening day of SHRFF which is supposed to be September, 2022.

5. Every film is recommended to have english subtitles burnt regardless of its original language. If it is not available, a full english script must be submitted together with the screener. Deaf and hard of hearing or blind and visually impaired people may participate in the judging process.

SELECTED FILMS

1. The selected films will be announced on the web page of SHRFF and each submitter of the selected film will be informed via each email.

2. For each selected film, the submitter or the filmmaker will be asked to provide;
■ subtitles and dialogue transcription of the film in both original language(s) and English. The transcription must be identical to the screening copy. It is recommended to contain music and sound information not only dialogue.
■ stills from the film
■ a photo and filmography of the director
■ a trailer and the screening copy/data file. (Files must be in a format of either mov or mp4. SHRFF do not afford to screen DCP, 16mm or 25mm due to the outdoor screening.)

3. For Disability Justice
Every selected film will be screened with Korean Sign Language and Korean subtitles that relate narration and dialogue, music and sound information.

4. Publicity and Archiving
■ SHRFF can use three minutes of the film for the publicity. If the runtime of the film is under 30 minutes, SHRFF can use 10% of the runtime in maximum.
■ SHRFF can use the trailer and all publicity materials for publishing catalogue and other promotional purposes.
■ The final screening copy including KSL and Korean subtitles of each film will be strictly archived in the festival office for research and educational purpose.
■ Films can be screened at other human rights activism organizations, non-profit organizations or schools in Korea after the festival screening, if the submitter agrees in advance.
■ Films can be provided for annual or tour screenings for a cultural or human rights activism purposes after the festival screening, if the submitter agrees in advance.

5. Any conditions that have not mentioned above can be discussed between the submitter and SHRFF.

60소식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공모 알림

소식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공모 알림 홍보 이미지. 텍스트는 본문 안내와 동일함.

25회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할 인권영화를 찾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1996년부터 영화를 통해, 영화제라는 방식으로 인권의 길을 닦아왔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인권감수성 확산을 위하여,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하여, 인간을 위한 대안적 영상 발굴을 위하여 올해 9월 스물다섯 번째 서울인권영화제를 개최합니다. 인권영화는 어디서나 자유롭게 상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인권영화는 누구나 차별없이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25회 서울인권영화제와 함께할 작품을 찾습니다.

  1. 삶의 서사를 이야기하며 투쟁의 현장으로 이끄는 인권영화
  2. 2020 12 이후 제작하여 완성된 작품
  3. 장애인접근권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한글자막이 있는 작품(상영작 선정/프로그래밍 과정에는 농인/청인 활동가가 모두 참여하므로 한글자막이 없을 경우 심사가 불가합니다.)
  4. BDS운동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 작품 (BDS운동, 문화보이콧 운동과 관련하여 자세한 사항은 다음의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pal.or.kr/wp/?page_id=406, https://bdsmovement.net/pacbi)

 


◼︎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 다운로드25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 – 개인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 – 단체

■ 신청서 작성 접근성에 대한 안내
신청서 작성에 어려움이 있다면 서울인권영화제(02-313-2407, hrffseoul@gmail.com)로 연락해주세요. 출품인에게 더욱더 편한 방법과 양식을 통해 출품 신청서를 작성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개인 출품과 단체 출품에 대한 안내
4작품 이상 출품할 경우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출품 신청서 – 단체” 파일에 작성하여 신청해주시기 바랍니다.

■ 출품인은 본 신청서의 사본을 보관해야 합니다.


◼︎ 출품 방법

1. 출품 기한(국내작): 2022년 4월 3일 일요일 23시 59분

2. 출품 방법: 본 신청서를 작성하여 hrffseoul@gmail.com으로 첨부하여 제출합니다. 메일 및 첨부파일 제목은 “25회-작품명”(단체 출품의 경우 “25회-단체명”)으로 작성해주세요. 엑셀 및 pdf 파일 모두 제출해주세요.

3. 출품 신청서와 스크리너 모두 기한 전까지 제출해야 합니다.

4. 스크리너는 온라인 링크만 가능합니다. 제출한 링크는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개막일까지 접근 가능해야 합니다.

5. 한국수어나 화면해설이 입혀진 스크리너가 있다면 해당 영상을 제출합니다.


2022. 3. 10.

서울인권영화제

53소식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모집

소식

 

아래의 구글 설문(https://forms.gle/9yD8jgqkiVTDvFjy6)을 작성하여 제출하면 신청 끝!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hrffseoul@gmail.com 또는 서울인권영화제 SNS로 편하게 문의 주세요 🙂

 

56소식

연대 소식: 애도와 기억의 장을 열다

소식

코로나19로 투병하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해 생각하며 아픈 마음을 달래신 적이 있나요? 사망자로 집계되어 숫자로 남은 이들, 근거 없는 감염 확산을 이유로 장례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한 유족들이 있습니다. 더이상 추모와 애도의 마음을 억누를 수 없어 모인 이들이 있습니다.

사진. 서울시청 도서관 앞에서 애도와 기억의 장 출범 기자회견이 진행된다.

2월 22일, 코로나19 대확산으로 인한 죽음을 애도하고 기억하기 위해 <애도와 기억의 장>을 열었습니다. 서울시청 앞에서 재난 상황에도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떠난 이들을 충분히 애도할 수 있어야 함을, 누구도 홀로 위험을 떠안지 않도록 연대가 필요함을 말했습니다. 고인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애도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사이트도 개설했습니다. www.remember2022.net에 기억과 애도를 남겨주세요.

 

쉽게 오지 않는 봄을 기다리며 애도와 기억의 장을 넓혀가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애도와 기억의 장> 기자회견문]

 

지금 우리에게는 애도와 기억이 필요하다

 

누구든지 어떤 순간에서도 존엄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 

 

2020년 2월 19일, 코로나19 감염으로 인한 한국사회 첫 부고를 접한 이후 2022년 2월 22일 현재 7500여명의 사람을 떠나보내야만 했다. 감염뿐 아니라 의료공백, 백신부작용 그리고 더욱 어려워진 삶의 조건과 차별·배제로 목숨을 잃은 이들까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의 시간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하나하나 저마다의 세계라 할 수 있는 인간의 존엄은 목숨이 다하는 순간에도 지켜질 수 있어야 한다. 공동체는 사회구성원의 생명과 존엄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존엄한 죽음, 애도와 기억은 우리 모두의 권리이자 사회와 국가의 의무이다. 

 

평등한 삶이 존엄을 실현한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에 대한 보편적 기준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는 것을 함께 경험하고 있다. 극대화된 감염에 대한 공포와 위기의식은 인간을 존엄에 앞서 감염원으로 여기게 한다. 과도하게 자유를 제한하고, 감염병으로 인해 위험해진 환경 속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일상과 노동을 당연하게 감내하는 잔인한 시간을 지나오고 있다. 쾌유를 바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건네거나 감염 사유에 대한 사회적 원인을 살피지 못한다. 이에 앞서 감염의 이유를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고 낙인을 찍으며 혐오를 비추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사회를 돌아보아야 한다. 소중한 생명들이 죽음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까닭이 무엇인지, 우리 사회가 왜 이들을 제대로 추모하지 못하고 있는지, 감염의  공포는 어떻게 극대화되고 어떤 식으로 우리의 인권을 유보하고 있는지 묻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애도와 기억의 연대가 상실의 슬픔을 안고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그동안 소중한 사람을 잃은 가족 구성원과 공동체는 제대로 된 추모와 애도를 갖추거나 말하지 못했다. 죽음에 이른 원인조차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었다. 감염인의 동선을 탓하느라 사회적 책임은 묻지 못했다.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이런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기록하고 기억해야 한다. 공감과 연민이 사라진 지금, 인간의 존엄과 평등 그리고 자유를 지킬 수 없었던 과정을 성찰해야 한다. 애도하는 마음과 기억하겠다는 다짐을 나누어야 한다. 감염병 상황에서 우리는 연결되어있음을 뼈아프게 확인했기에 더 이상 연대를 미룰 수 없다.

 

재난 상황에서도 인권의 원칙을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국가이다.

 

감염병 상황에서 먼저 떠날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을 비통하게 떠나보낸 사람들이 국가에 묻는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원인은 왜 반복되는가. 위기가 닥치면 위험에 가장 먼저 내몰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왜 인간의 안전과 생명은 후순위로 밀리는가. 왜 존엄보다 이윤과 국적과 고용형태를 더 중요하게 말하는가. 죽음의 순간에마저 존엄이 우선되지 않았던 이유를 묻는다. 왜 불통과 통제를 우선했는가. 왜 비극의 반복을 책임지지 않는가. 

 

국가는 모든 시민의 자유로운 삶을 보장하며 인권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 재난의 시기라면 더더욱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죽음에 대해서는 고인과 고인의 공동체에게 존엄과 평등에 입각한 추모와 애도의 권리를 보장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제도와 지원 그리고 정보를 적극적이고 투명하게 마련하고 공유해야 한다. 죽음에 이르게 된 원인을 사회적으로 밝히고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여야 한다. 백신접종과 같은 주요한 정책은 투명한 정보와 사회적 합의가 필수적이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 대한 지원은 개개인의 책임과 입증을 떠나 조건 없이 펼쳐져야한다. 무엇보다도, 위기의 상황일수록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권리의 주체를 확대하여 소통하고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애도와 기억의 장>은 추모의 공간을 열고 지금 우리 사회에 애도와 성찰을 제안한다. 국가의 책임과 의무를 밝힌다. 변화가 필요한 제도와 정책을 제안한다. 이 모든 과정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시민선언으로 2022년을 마무리 할 것이다. 

 

우리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에서 조금이라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질병의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과 먼저 떠난 이들의 죽음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역을 밝혀주었기 때문이다. 감염병 대확산과 같은 재난의 시기에 더욱 어려워지는 삶의 조건들을 실감하고 사회의 변화를 준비하게 되었다면, 그건 우리의 존엄과 평등이 더욱 중요하다는 감각을 일깨워준 사람들 덕분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애도한다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내일로 이끈다는 것을 잊지 말자. 

 

2022.2.22. 

 

코로나19로 인한 죽음-<애도와 기억의 장> 기자회견 참가자

 

62소식

활동 펼치기: 새해 첫 전체회의

소식

2월 13일 일요일, 서울인권영화제 빨간우체통집에서는 지난해를 정리하고 올해의 활동을 여는 총회가 열렸습니다. 자원활동가를 포함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 권태, 레나, 망나, 요다, 은긍, 심지가  오랜만에 얼굴을 맞댄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사진. 책상 위 노트북 줌 화면에 자원활동가 요다, 은긍, 문자통역사 화면과 사무실에 모인 활동가들의 화면이 있다.
사진.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 책상 위 노트북 줌 화면. 자원활동가 요다, 은긍, 문자통역사 화면과 사무실에 모인 활동가들의 화면이 있다.

2021년 서울인권영화제는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좋은 일도 많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한 일도 많았습니다. 특히 상임활동가 구성이 크게 바뀌었는데요, 서울인권영화제에 오래 몸 담았던 레고 활동가가 6개월간의 안식년을 가진 뒤 2021년의 마지막날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채영 활동가는 굵고 짧은 상임활동을 7월에 마쳤고요. 그래서 지난해 하반기는 고운, 심지 활동가가 단체 운영을 배우며 좌충우돌의 시간을 보냈답니다.

사실 작년 하반기 격동의 시간을 보내며 조직 재점검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래서 서울인권영화제 기틀다지기 준비모임을 꾸려 3개월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앞으로의 활동을 어떤 기반, 어떤 목표에서 다져나가야할지 새롭게 단체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논의하고 점검하는 시간이었어요. 서울인권영화제의 고운, 심지, 레나 활동가와 함께 인권재단 사람의 차지애 활동가, 지금은 금속노조에서 활동하고 있는 모드 활동가 다섯 명이서 수 차례의 온오프라인 회의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서울인권영화제의 문제 상황뿐만 아니라 비전과 목표를 점검하고 정리하여 총회의 첫머리에서 공유하였습니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서울인권영화제 문제상황 돌아보기
a. 점검 가능한 비전, 목표 등 활동 방향성의 부재
b. 조직과 구성원의 관계 맺기에 대한 어려움
c. 평등하고 민주적인 조직 실현을 위한 조직구조/문화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약속 부재
d. 활동가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에 대한 성찰과 문제제기가 안전하게 이루어질 수 없었던 환경

2. 서울인권영화제 비전/목표 점검
a.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 기업/정부의 지원 없는 운영, 등급심사 거부로 실천
– 활동보다는 활동 원칙에 가깝다.
– 정부 지원의 경우 국가인권위원회, 서울npo지원센터, 서울문화재단, 영화진흥위원회 등 기관/기구의 성격에 따라 다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 기업의 경우에도 단순 영리/비영리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기업의 방향성과 목표 등에 따라 섬세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b. 인권감수성 확산을 위하여
– 상영활동 및 활동가재생산을 통해 실천
–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감수성’은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점검의 자리가 필요하다.
– ‘어떤 사람’을 향한 확산일지, 그 사람의 삶에 어떻게 닿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보다 섬세한 고민이 필요하다.
c. 장애인접근권 실천을 위하여
– 특히 상영활동을 통해, 상영 공간 및 상영작에서의 장애인접근권 실천 활동에 노력해왔다.
– 다른 조직, 활동가, 미디어활동가들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을지, 장애인접근권 실천을 어떻게 확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실천도 필요하다.
d. 인간을 위한 대안적 영상 발굴을 위하여
– 상영작 선정 및 프로그래밍 활동을 통해 실천
– 서울인권영화제의 ‘인권영화’란 무엇일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3. 종합 평가
a. ‘영화제’라는 방식, 상영활동을 통한 인권운동을 어떻게 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
b. 영화제이자 인권단체로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하자

그리고 이 논의를 더 끌고 나아가 앞으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지, 건강한 활동을 위해서 어떤 조직 기반이 필요할지, 기틀을 다지기로 하였습니다. 2월과 3월은 이러한 기틀다지기 활동에 집중할 예정이랍니다.

또한 25회 서울인권영화제의 개최 시기를 정하기도 했습니다. 올해는 서울인권영화제 기틀다지기 활동을 우선하고, 영화제는 9월초에 개최하기로 결의했습니다. 또한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하여 아쉽지만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www.HRflix.org에서 온라인 상영을 최대한 병행하며, 마로니에공원 현장에서는 3일간 영화제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2021년 활동 및 결산을 보고하고 2022년의 예산을 승인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예산 규모는 목표 수입 60,000,000원, 목표 지출 78,100,000원으로 25회 서울인권영화제 개최를 위해 재정 마련에 힘써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올해도 힘차게, 씩씩하게, 즐겁게!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을 펼쳐 나가야겠습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51소식

활동 펼치기: 달려라 차만세, 달려라 평등

소식

 

봄이 오려나 했더니 강추위가 기승이네요. 칼바람을 뚫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는 “차별금지법있는나라만들기 유세단”을 마주치신 적 있나요? 세 글자로 차만세! 차만세는 지난 1월 12일부터 한 달 넘게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대선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다채로운 유세로 펼쳐내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뿐만 아니라 각 지역 곳곳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차만세 기획단으로 같이 달리고 있는데요, 심지 활동가는 지원팀에서 저는 홍보팀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유세차를 타고 있어요. 아쉽게도 차만세는 2월 25일 유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면서 26일 토요일 집중행동 “가자! 평등의 나라로”에서 그동안의 함성을 내지를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간 차만세와 함께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해요.

이게 정녕 21세기인가 싶을 정도로 혐오의 힘을 등에 업은 대선 정국이라 다들 마음 답답하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혐오에 혐오라고 단호하게 응답하지 않는 이 세상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런 저런 핑계, 특히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를 대며 15년째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한테 사회적 합의를 맡겨놓은 것처럼 뻔뻔해보이기까지 하죠?

그래서 차만세는 유세차를 타고 서울시 20여 개의 구와 부천, 남양주, 고양 등 경기권 구석구석을 돌며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미 시민의 약 80%가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시민과 인사 나누며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염원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낍니다. 저 역시 처음 가보는 동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각자의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망하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비슷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다양하고 진심어린 이야기에 마음이 울리곤 했어요. 후보 옆에 찍는 도장보다 더 묵직하고 뜨거운 울림이었습니다. 정치의 권력이 해결해주지 않는, 오히려 외면하는 삶의 서사를 우리의 힘으로 모으고 말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참 소중했어요. 광진구 유세에서는 종일 함께한 마을신문 조혜진 기자님이 서울인권영화제 후원활동가라는 사실을 알고 손뼉치며 반가워하기도 했고, 종로구 유세에서는 육수에 믹스커피를 타마신 지오님 때문에 깔깔 웃기도 하고, 강남서초 유세에서는 얼떨결에 우리집 강아지 뽀미랑 종일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런데요,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제정되면 뛸듯이 기쁘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기쁘다고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는 이 고된 15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고 있는 것 같다고요. 나는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함께 저항하는 누군가가 또 있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구나. 사실 많지 않다고 절망스럽지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한 세계이기에 지쳐 누워있다가도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선물 받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진짜 중요하고 절실한 법이지만 우린 법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요. 내 일상의 이야기,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국회는, 정치는 지겹도록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살지만, 우리는 다 알지 않나요? “나중”을 만드는 사람들, 내일을 그리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여기 살아가는 우리라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 세상을 진짜 살아가고 우리는 강합니다. 이길 겁니다, 조만간!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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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만세 연설문: 대선보다 먼저, 차별금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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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 만들기 유세단”에 적극적으로 결합해 활동하고 있는데요! 2월 17일 노원구 유세단에서 심지 활동가가 연설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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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원구민 여러분! 저는 오늘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차별금지법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저는 얼굴조차 잘 기억나지 않는 초등학교 동창들도 많은 페이스북에서 커밍아웃을 한 지 오래 되었습니다만, 구체적 일상 속에서 만나는 누군가에게 제가 동성을 좋아한다는 말을 꺼내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인권단체에서 활동한다고? 그럼 너도 동성애 같은 거 지지하고 그러니?” 하고 말씀하시던 어떤 어른의 얼굴과 표정과 말투를, 수 년이 지나도 또렷이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그런 얼굴과 표정과 말투를 덜 만나게 될까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물론 저도 알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그런 얼굴과 표정과 말투를 규제하는 법이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혐오와 차별을 뿅 하고 퇴치해줄 요술봉이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차별금지법이라도 있는 세상’의 시민들이, ‘차별금지법조차 못 만드는 세상’의 시민들과는 확연히 다를 거라고 믿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어떤 상징적인 시작점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차별금지법은 당신이 누구라도,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더라도, 기꺼이 당신을 동료시민으로서 환대하겠다는, 공동체 차원의 시그널을 비로소 만드는 법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자꾸 성소수자, 성소수자 하니까 차별금지법이 ‘나’와는 관계없는 법 같이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만을 위한 법이 아닙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에 관한 법입니다. 차별금지법은 우리 모두를 위한 법입니다. 성소수자를 위해서 뿐만 아니라, 차별금지법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칩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자꾸 내쳐지는 현실은, 다른 누구보다도 성소수자에게 가장 명확한 신호를 줍니다. 차별금지법이 자꾸 뒷전으로 밀려날 때, 성소수자는 스스로 아직 동료 시민으로 환영받지 못함을 체감합니다. 차별금지법 하나 만들지 못하는 세상에서 낙담하는 성소수자가 다름 아닌 ‘우리’ 중에 있음을, 잊지 말아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단언컨대 성소수자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족 중에, 친구 중에, 이웃 중에, 동료 중에 성소수자가 있습니다. 대선보다 먼저, 차별금지법에 관심 가져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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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편지: 안녕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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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편지에는 죽음에 대한 고민, 악몽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편지를 쓴 이의 진솔한 마음이지만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안녕하신가요, 저는 나름 안녕하게 지내려 노력 중입니다. 저는 은긍이에요. 울림에 글을 쓰는 게 아주 오랜만이네요. 저는 어젯밤에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할머니가 엽총으로 사람들을 쐈습니다. 저는 물에 잠겨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있었구요. 깨어나니 온화한 할머니가 갑자기 무서운 할머니로 느껴졌습니다. 꿈은 정말 궁금하고 신기해요. 

그런데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구요, 저는 얼마 전까지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았어요. 요즘 많은 실패를 겪기도 했고, 실패를 겪는 게 두려워 피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가 떨어지는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왜 살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몇몇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공유할만한 답을 준 친구는 없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했어요. 누구의 동의도 없이 태어난 제가 버겁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냥 사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던 건지, 어떤 것이 저에게 와 닿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고민하는 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들과 말들과 분위기들이 그냥 사는 거지, 하는 대답을 만들어낸 것이겠지요. 어제 스스로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니, 감히 말씀드려보자면, 어떻게든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다행인 기분은 정말 평안했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담배를 피울 정도로요. 부러운 사람들을 마음 놓고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 다행인 기분이 얼마나 갈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왜 살고 계시냐고 여쭤볼 수도 있겠지요. 또 꿈 얘기를 하고 또 마지막에는 안녕을 빌겠지요. 똑같은 서두를 던지면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듣던 말을 또 듣고싶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안부를 묻고 싶어요. 저는 어떻게 안녕하게 지내보겠습니다. 그럼, 지겹도록 안녕히 계셔요!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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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이야기: 기억의 방법

소식

* [친구들 이야기]는 급조된(급조는 언제나 즐겁죠) 신설 꼭지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후원활동가,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의 친구, 동료 등 다양한 이의 이야기를 기회가 될 때마다 실어보려 합니다. 이번 글은 심지의 친구이자 후원활동가인 박현 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기억의 방법 – <미싱타는 여자들>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그림.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 포스터. 세 여성 노동자의 얼굴 그림과 타이틀.

풀밭이 펼쳐진 탁 트인 언덕. 왈츠 음악이 울려 퍼지고, 꼭대기에 나란히 놓인 세 개의 미싱기를 향해 세 명의 중년 여성이 걸어간다. 마치 소꿉친구 셋이 모인 것마냥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들. 언덕 위에 미싱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낯선 풍경을 재미있어 하며 한참 농담을 주고 받은 후에야 자리를 잡고 앉는다. 하지만 왈츠 음악 사이로 드르르륵, 드르르륵, 망설임 없는 미싱 소리가 울려 퍼지는 순간, 그들이 얼마나 이 일에 이골이 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좀 쾌적한 데서 일하면 일도 저절로 될 것 같지 않아?” 실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웃는 동안, 꽃무늬 천 위에는 세 여성의 이름이 능숙하게 박음질 된다. 이숙희, 신순애, 임미경. 코스모스 핀 쾌적한 언덕과는 정반대의 숨막히는 공간에서 하루종일 ‘미싱을 타던’ 세 여성. 그들은 전태일이 사망했을 즈음 평화시장에서 미싱 일을 시작한 또다른 노동자들이었다. 청계피복노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명 ‘9.9 사건’이라 불리는 투쟁의 주역이 되어 수감생활을 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미싱타는 여자들>은 그들의 70년대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당시 평화시장 여공들의 모습을 담은 빛바랜 사진들을 보여준다. 마치 끊임없이 되새겨주려는 듯이. 처음 ‘시다’로 일을 시작하던 당시의 사진, 눈을 반짝이며 노동교실에 앉아 있던 모습, 노조 친구들과 야외 나들이를 즐기는 풍경… 한 장 한 장 스쳐가는 사진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자연히 머릿속이 한 가지 생각으로 가득 차고 만다. ‘너무 어리다.’ 그들은 정말이지, 너무나도, 어렸다. ‘여성’이라는 호칭조차 어색할 정도로, 사진 속의 모습들은 아무리 봐도 그저 한창 뛰어놀고 학교에 다니고 사랑 받아야 할 어린이들이다. ‘여자는 공부를 하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고집에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중학교 대신 평화시장으로 향했다는 임미경 노동자의 이야기를 단지 말로만 전해 듣는 것과, 아직 교복도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앳된 얼굴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은 무게 자체가 다른 일이다. 일어서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무릎을 꿇고 일하던 기억에 대한 증언이 사진 속의 얼굴들과 겹쳐지는 순간, 잠시 심장이 내려앉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탄식을 하고 있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의문이 떠오를지도 모른다. 저 아이들이 뭘 알고 했을까, 하는 편리한 의문 말이다. 노동운동에 가담한다는 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을까, 단지 학교에 가고 싶어 노동교실에 나갔다가 뜻하지 않게 싸움에 휩쓸려버린 건 아닐까, 하는. “데모가 뭔지는 아냐”고 묻던 당시의 경찰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문들. 하지만 영화는 곧 그런 의문이 얼마나 공허한지 되새겨준다. 이제는 중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열네 살, 스무 살의 마음으로 돌아가 기억을 찬찬히 되짚는 여성들의 인터뷰를 좇아가다 보면, 금세 느낄 수 있다. 그들이 누구보다도 명확히 알고 있었음을. 자신들의 권리가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짓밟혔는지. 무엇이 부당하고 무엇이 부조리했는지. 무엇을 위해, 무엇을 걸고, 싸워야 했는지. 그래서 그들은 1977년 재판장의 판사 앞에서도, 2018년의 카메라 앞에서도, 자신들이 했던 투쟁의 핵심을 정확히 짚어 냈다. 노조가 그들을 ‘의식화’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에 가깝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문득 문득 치를 떨 정도로 억울했던 생생한 경험들이 이미 그들의 ‘의식화’였고, 노동교실은 단지 새로운 언어와 희망을 알려줬을 뿐이었다. 

 

희망. 당시의 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며 여성 노동자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희망이다. 근로기준법의 존재에 대해 알았을 때 느꼈던 희망. 새로운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희망. 우리도 인간답게 살 수도 있구나, 하는 희망. 그러나 그 ‘빨갱이년들’에게 사주를 한 간첩이 누구인지 물으며 다그치고 때리던 사람들, 아니 그런 그들을 실제로 ‘사주’한 사람들은, 아마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의 어떤 이들은 정말로 아무런 꿍꿍이도 없이, 누구의 사주도 받지 않은 채, 권력을 탐하지도 않고, 세계 재패를 꿈꾸지도 않고, 그저 자신과 동료들이 인간답게 살기를 바라는 희망만으로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에는 그런 동기를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특히 권력의 자리에는 더더욱 말이다.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할 사실이다.

 

사람마다 영화를 본 후 집으로 가져가는 생각은 모두 다를 것이고, 거기에 정답은 없다. 그렇지만 <미싱타는 여자들>이 단순히 지금과는 다른 어떤 ‘야만의 시대’에 격렬했던 청춘에 대한 회고로 읽히는 것에서 끝나지만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여성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한다는 것, 그것이 정말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해 본다. 2019년에 11만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산재 피해를 입었다. 2020년에는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가 코로나19 사망자 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국가 중 근로 시간 2위를 달리는 와중에, 대선을 앞둔 유력 대통령 후보는 앞장서서 최저임금 폐지를, 주 52시간 근무제 철폐를 외친다. 희망을 짓밟으려는 손길들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러니 희망을 믿는 이들이 계속해서 싸우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신순애 노동자가 코트 한켠에 노란 세월호 뱃지를 달고 인터뷰에 참여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이 했던 투쟁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도록 애쓰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들을 기억하는 일이 아닐까.

 

<미싱타는 여자들> 속 신관용 노동자의 말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많은 싸움을 이어 갔던 여성 노동자들 모두가 바로 제2의 전태일이었다. 동시에 그들은 다시는 전태일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는 사회가 오기를 누구보다 간절히 바란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 바람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이어 가는 방법. 영화의 마지막에 함께 모여 합창하는 여성들의 노래가 마치 그 방법을 알려주는 듯하다. ‘흔들리지 흔들리지 않게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와서 모여 함께 하나가 되자 / 물가에 심어진 나무같이 / 흔들리지 않게’

 

– 박현(프리랜서 노동자 겸 영화학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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