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레인보우 팝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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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에서는 13명의 레즈비언을 20년간 기록하는 영상기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래서 일까 짧지 않은 기간 같은 공간,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기록을 담은 <레인보우 팝콘>이 반가웠다.

 

기록에 담긴 당사자들의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들이 낯설지 않다. “결혼이 가지는 지지와 허용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감”을 위한 선택, “나는 이 관계에서 생존할 수 있다.”던 주인공의 고백. 우리 단체의 13명의 레즈비언들의 입을 통해서도 기록되고 있는 흔한 고백이다.

 

이성애를 강요하고 제도결혼에의 편입을 ‘상식’이라 세뇌하는 세상 속에서 사랑을 독점하고,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권력을 독점한 이성애주의와 제도결혼을 피하고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강압 속에서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럼에도’ 동성교제를 선택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이 ‘그럼에도’ 이성교제를 선택한다.

 

두 경우에서 모두 이때의 ‘선택’이 온전할 수 있기 위해서는 하나의 사랑과 하나의 가족구성에 집중되어 있는 ‘지지와 허용 그리고 경제적인 안정감’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정말 이성애자인가?’, ‘혹 우리는 이성애를 강요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는 않은가?’, ‘이성간 결합만을 정상화하고 제도결혼이 독점한 권력엔 문제가 없는가?’ 등의 질문을 자신과 사회에 던져야 한다.

 

사랑이 움직이듯 정체성도 움직인다. 이 세상 무엇 하나 불변하는 것은 없다. 하나의 선택만을 강용하는 세상, 그 선택을 의심하고 묻지 않는 사회는 위험하다. 사랑이 생존을 위한 도구가, 생존이 사랑의 결과가 아닐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박김수진(레즈비언생애기록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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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드래프트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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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젠더의 ‘비’양심적 병역기피를 꿈꾸며

 

낯선 곳에서 예기치 않게 아는 사람을 만나거나 나와 묘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 물론 그들이 가장 위험한 사람일 수도 있다. 그저, 낯설지 않은 사람의 존재는 낯선 공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느낄 위화감을 조금은 덜어준다(다른 위화감은 더 커질 수 있다). 그러니까 이것은 트랜스젠더가 징병검사장에 갔을 때의 이야기다. 김준표 감독의 작품 <드래프트 데이>를 보며 태국 징병검사장 풍경에서 가장 부러웠던 부분은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태도다. 한국에서 mtf(male-to-female) 트랜스젠더가 징병검사장에 가야 할 때면, 트랜스젠더는 자기 혼자라고 생각한다. 이 생각은 대체로 맞다. 하지만 태국의 징병검사장엔 적잖은 트랜스젠더가 있다. 친구와 함께 가지 않더라도 다른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고 실제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을 주는 것, 이것이 부러웠다. 이 풍경은 태국이 트랜스젠더를 대하는 사회적 태도가 한국과 상당히 다름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

 

태어날 때 한국 국민으로 분류된 mtf/트랜스여성이나 태어날 때 남자로 지정받은 트랜스젠더라면 특정 나이에 징병검사를 받아야 한다. 남성으로 동일시하지 않음에도 남성만 간다는 곳에 참여해야 하기에 고민과 반응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어떤 트랜스젠더는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의료적 조치를 서두른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비남성 혹은 여성으로 생활할 수 없고, 몸은 몸대로 망가지는 그곳에 가고 싶을 리 없다. 하지만 어떤 트랜스젠더는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얘기한다. 징병검사 전,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의료적 조치를 시작하고 싶지만, 이 계획이 입대를 피하기 위해서는 아니며 군대에 가야 한다면 가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다른 사유가 없다면, 가야 한다. 그러니까 현재 한국의 징병제도가 구성하는 사병의 성원권은 남성만 갖지 않으며 남성만 사병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여성 혹은 비남성도 사병이 된다. 아울러 군대에 간 트랜스젠더의 경험이 마냥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어떤 이성애자 mtf/트랜스젠더는 군대에서 애인도 만들고 재밌었다고 얘기한다. 당연히 마냥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안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며,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군대에 긍정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태국에서도, 한국에서도 트랜스젠더에게 “병역기피 수단으로 성전환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떡하느냐”고 묻는다. 물론 ‘기피’ 목적이면 그에 해당하는 법으로 조치하면 될 일이다. ‘기피’는 관계 기관이 해결해야 할 문제지 트랜스젠더가 책임지고 답할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조금 다른 답을 하고 싶다. 현재의 징병제도는 의료적 조치를 하고 있거나 할 예정인 트랜스젠더만 염두에 둔다. 의료적 조치를 선택하지 않는 트랜스젠더는 사유하지 않는다. 이것은 국가가 트랜스젠더에게 의료적 조치를 강제하는 명백한 침해며 폭력이다. 징병제도는 의료적 조치 여부와 무관하게 트랜스젠더 이슈를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렇게 면제된 트랜스젠더가 몇 년 뒤 자신을 다르게 정체화하거나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럼 또 어떤가. 오늘날의 군대가 계급과 사회적 지위 차이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양심적 병역거부나 양심적 병역기피도 좋지만 더 많은 사람이 ‘비’양심적 병역거부나 ‘비’양심적 병역기피를 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그래서 군대 자체가 흔들리고 군대를 다르게 상상할 수 있길 바란다.

루인 (트랜스/젠더/퀴어연구소, runtoru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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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비바람을 헤친 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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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난 1968년, 나는 레즈비언이 나뿐이라고 생각했다. 나 같은 다른 사람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소쓰 윤)

 

캄보디아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레즈비언 커플이 등장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담담한 듯하면서 날카롭다. 주인공들은 소박한 자기 삶과 사랑 이야기를 쉽고 짤막하게 풀어놓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언어 너머의 시간과 역사를 읽어내야 한다.

 

두 여성이 헤쳐가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처음 만나 알게 되고, 신뢰를 쌓게 되고, 가까워지고, 함께 살게 되고…. 두 사람의 관계에는 아무 문제도 없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인정 받기 위해, 갈등하고 모욕을 당하며 싸우고 요구하고 주장해야 한다.

 

몇 명 등장하지 않는 인물들과 몇 마디 나오지 않는 내레이션 중에 ‘같은 성끼리 사랑하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없었다’, ‘알지 못했다’ 라는 말이 반복되는 것을 주목하라. 그래서 동성애자는 곁에 있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 사회생활을 해도 벽장 속에 있는 존재, 그래서 결국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존재함을 증명해야 하는 것, 그것이 이들이 헤쳐왔던 험난한 여정이다.

 

주인공들은 권리를 요구한다. 존재를 인정 받을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 결혼할 수 있는 권리. 그러나 나는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액면 그대로의 언어에 한정되어 이들 여성커플의 이야기를 ‘동성애자의 권리’에 관한 것으로만 이해한다면 섭섭할 것이다.

 

‘그녀는 나를 사랑한다. 나도 그녀를 사랑한다. 서로 의지하면서 산다는 건, 서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일하고, 함께 요리하고, 함께 아이들을 키우는 모습은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부부(夫婦)의 모습이 아니다. <비바람을 헤친 긴 사랑>이 주는 감흥의 큰 부분은, 공동체 안에서 살아가는 두 여성의 다정하고 깊고 평등한 관계, 그 자체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조이여울(저널리스트, 여성주의 저널<일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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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두물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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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지나 경기도에 도착한 북한강 물과 태백산에서 시작하여 충청도를 지나온 남한강 물이 양평 두물머리 들판에서 하나로 만나 한강이 된다. 두 개의 큰물이 하나로 만나는 곳이라 하여 ‘두물머리’라고 부른다.

 

두물머리에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는데 바로 ‘유기농업’이다. 1976년, 우리나라 최초의 유기농업 생산자 단체인 정농회가 창립되고 그 중 한 가족이 두물머리에서 처음으로 유기농업을 시작하였다. 곳곳에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 마을이 생기고 유기농 단지가 만들어지면서 팔당 두물머리는 수도권 최대의 유기농 생산지가 되었다.

 

그동안 두물머리 사람들은 비바람이 들이치는 처마를 조금 늘릴 수도 없었고 강아지 한 마리 키우기 위해 마당 한 쪽에 개집을 짓지도 못했다고 한다. 상수원 보호구역에 묶여 있는 7~8개의 중첩규제법은 두물머리 사람들의 생존권과 재산권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합법적으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경제활동 수단이 농사였다. 온갖 규제에 묶여 희망이 없는 땅으로 낙인 찍혔던 팔당 두물머리가 유기농업 운동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2009년 5월,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였다. 북한강, 남한강에 인접해 있는 팔당 두물머리 유기농지의 상당 부분이 4대강 사업에 편입되었다. 유기농업 운동을 이끌었던 농민들은 조합 사람들을 모으고 마을 사람들을 독려하여 ‘농지보존 친환경농업 사수를 위한 팔당상수원 공동대책위원회’라는 길고 긴 이름의 대책기구를 꾸렸다. 팔당 두물머리 농민들의 아스팔트 농사가 시작되었다.

 

해가 바뀌고 농지보존 싸움이 길어지자 농민들은 지치기 시작했다. 4대강 찬성 주민들을 동원한 정부의 회유와 협박은 집요하게 계속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농지보존 싸움의 대오를 이탈하는 농민들은 늘어났고 4대강 찬성, 반대 주민 사이의 갈등의 골도 깊어져 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은 계속 되었고 연행과 벌금이 쌓이면서 농민들의 짐은 점점 더 무거워져 갔다. 2011년, 남은 곳은 두물머리 8만평 그리고 남은 사람은 두물머리 4가구 밖에 없다. 그러나 농지보존 싸움을 떠난 농민들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천주교, 시민 사회단체, 생활협동조합원, 대학생, 젊은 활동가들이 그들이다.

 

2012년 8월, 강제철거 행정대집행을 앞두고 두물머리 문제는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세계 최고의 ‘두물머리 생태학습장’을 만들기로 정부와 농민들이 합의를 보았다. 지금도 두물머리는 ‘생태학습장’이라는 상생의 사회적 합의를 현실화하기 위해 몸살을 앓고 있다.

서규섭(농사짓고 있는 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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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팔당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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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당댐이 생기면서 팔당사람들은 농사짓던 땅을 빼앗겼고, 이후에도 상수원 보호라는 규제 때문에 어떠한 생산 활동도 할 수가 없었다. 삶을 지속해야했던 농부들은 강물의 수질에 도움을 주면서도 지역의 생산 활동과 도시의 먹거리가 순환할 수 있는 유기농이라는 고리를 찾아낸다. 하지만 빼앗긴 땅을 다시 임대라는 형식으로 쟁취해야했고, 무엇보다 유기농이 무엇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70년대였기에, 이들이 유기농을 시작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빨갱이’라고 매도를 당하면서도 이들이 뿌렸던 씨앗은 어느새 점점 자라나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유기농의 밑거름이 된다. 팔당의 유기농지가 한국 유기농의 발원지라고 불리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는 팔당사람들이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우게 되었을 때 이 싸움을 가능하게 했던 이들의 자부심이었다.

이명박 정부 임기 내내 계속되었던 팔당사람들의 투쟁은, 때로는 4대강 사업이라는 국책사업에 맞서는 투쟁이었고, 때로는 이 땅 유기농업의 발원지의 역사성과 유기농지 자체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곳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짓밟으면서 진행되는 일방적인 국책사업이라는 폭력에 저항했던 삶의 꿈틀거림이었다. 어쩌면 정작 농부들도 4대강 사업 중단과 유기농지 보존이라는 ‘대의’만을 생각하고 말해왔는지도 모르겠다. 3년이라는 시간을 농부들 옆에서 먹고 자며 만들어진 고은진 감독의 영화 <팔당사람들>은 그 ‘대의’라는 우산 혹은 무기를 들고 있었던 농부들의 삶, 꿈틀거리는 삶, 있는 그대로의 삶을 담아낸 영화이다.

삶이 짓밟히지 않기 위해, 삶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꿈틀거리고 저항하지만, 그 과정 속에 있는 삶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함께 싸우지만 팔당사람들이 언제나 같이 밥 먹을 수 있는 것도, 같이 똥 쌀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삶의 조건 속에서 누군가는 떠나야하고, 그래서 아쉽기도 미안하기도 서먹하기도 하다. 계속 남아서 저항하는 삶도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과 또 미래의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삶이기에 싸우겠다는 힘찬 결심은 늘 고통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4대강 사업에 맞서 싸웠던 팔당 유기농지 보존 싸움은 합의에 도달했고, 유기농지에 쌓여왔던 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그 땅을 둘러싼 관계들을 잘 구성하기 위한 싸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팔당사람들이 만들어낸 저항의 시간들이, 오늘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일방적인 국책사업이라는 폭력에게 ‘이것은 폭력이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삶들이 저항할 때 우리는 그 삶들을 소중하고 고귀하게 여기며 그 삶들에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팔당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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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오프 라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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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 label, 내 몸을 원해?

 

 

 

‘임상시험’은 무엇일까?

치료약이 많지 않은 난치병, 희귀병 환자들은 임상시험을 마지막 희망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신약에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초특급 열차라고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주사 몇 대 꽂고 알약 몇 개 삼키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알바거리라 하기도 한다. 제약사에게 임상시험은 연간 수천억, 수조억을 벌어들일 수 있는 ‘돈방석’이다.

임상시험의 이름이 무엇이든, 약을 주는 자와, 그것을 받는 자 사이에는 권력이 존재한다. 영화에서는 이 권력이 어떻게 병원에 갇힌 환자를 죽이고, 교도소 재소자의 몸을 망가뜨리고, 이라크에 파병된 한 젊은 군인의 영혼을 파괴시켰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영화 전반에 걸쳐 지적하고 있는 정신질환 치료제의 남용 문제는 정신이 건강하기 힘든 이 사회에서 우리의 눈길을 더욱 잡아끈다.

나는 기니피그(시험용 쥐)가 아니라고, 너희가 요구하는 ‘시험에 적합한 몸’을 가진 물건이 아니라고, 온전한 한 인간이라고, 너희가 내 몸을 원한다면 우선 그것부터 배우라고 영화는 담담하지만 날선 목소리로 이야기하고 있다.

 

강아라, 김지민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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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땅, 밥,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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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나라의 농부들은 왜 가난할까.

 

세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만 굴러갔더라면, 어쩌면 그들은 대대로 살아온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쌀농사만 1년에 3모작, 4모작 할 수 있는 풍요로운 자연의 혜택을 받는 나라에서 농부들은 왜 가난할까. 세상의 빈곤에는 이유가 있었고, 빈곤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의 천성적인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너무나도 명확히 보이는 손에 의한 것이었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저자 장 지글러는 이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한다. 과도한 국가 부채에 시달리는 아프리카의 국가들은 이자를 갚기 위해 자국의 농업을 수출 중심의 산업으로 바꾸었다. 말리는 면화를,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하고, 영화에서처럼 캄보디아는 설탕을, 우간다는 팜오일을 수출한다. 더 이상 식량을 생산할 수 없게 된 농민들은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 수입된 식량을 소비한다. 그리고 이러한 농산물의 가격은 식량에 대한 주식거래, 투기에 의해 좌우된다. 가격의 폭락과 폭등은 누군가에게는 이윤,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신호이다.

 

이 복잡한 구조를 설명하는 것도 균열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긍정적인 방식으로 불공정한 무역구조를 바꾸자고 하는 운동이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거대 기업들의 독점적인 구조 속에서 대안적인 무역과 가치사슬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구에서 시작된 자기 반성적 운동이다. 공정무역은 단순히 부유한 국가의 소비자들이 조금 더 돈을 지불하고 정당한 가격에 사온다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만이 갖던 독점적 권력을 생산자와 나누어 갖는다.

 

공정무역 생산자들과 계약을 하다보면 가끔 무슨 ‘갑’이 맨날 ‘을’에게 사정을 하냐고 한탄할 때가 있다. 일반적인 갑을 관계가 성립되지 않는 거래관계이기 때문이기 때문에 생기는 즐거운 현상이다. 공정무역에서 구매자는 더 이상 독점적 권력이 없기 때문에 생산자는 얼마만큼을 생산하고 누구에게 얼마에 판매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리고 생산물에 대한 결정권은 곧 농민들의 삶에 대한 결정권과 존엄성이 된다.

 

(얼마 전 필리핀에서는 마스코바도 설탕을 생산하는 공정무역 단체 PFTC의 로메오 카팔라 의장이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암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생산자의 입장에서 공정무역은 때론 목숨을 걸고 때론 공동체의 운명을 건 모험이자 도전이다. 그러나 이 운동은 어렵고 복잡하고 어둡고 무거운 이야기가 되는 운동은 아니다.) 커피 한 잔, 초콜릿 한 조각에서, 아주 적은 양식과 아주 작은 희망으로, 조금씩 즐거운 변화를 꿈꾸어본다.

이하연/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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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거미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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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양갈보’,  ‘양공주’라 불렸던 여자들이 있다. 그녀들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영화는 한 때 미군기지 근처의 유흥가였던, 그러나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동한 후 쇠락한 경기 북부의 공간들을 담는다.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그 화려함을 잃어버린 곳, 더 이상 할 것도 볼 것도 없는 동네. 카메라는 느린 속도로 이 공간의 공기를 담아낸다. 사람들의 지루하고 무료한 일상, 생기를 잃어버린 버려진 공간들, 한참을 바라봐도 인적이 드문 휑한 골목길…

 

이 공간들은 철거를 앞두고 있다. 그 중 한 곳인 의정부 뺏벌 지역은 주민들에 의해 보상금관련 집회가 열려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관련된 기사에는 중장년 남성 모모 씨들의 목소리만 가득하다. 이 공간에서 살아왔을 여자들의 목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는 그 공간에서 일하고 살아남았으며 지금도 살고 있는 여자들 세 명의 삶이 담겨있다.

 

이 영화에는 주인공들의 서사가 많이 담겨있지는 않다. 어떻게 이곳으로 유입되었고,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와 같이 우리가 기대하는 이야기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공간을 견디며 지루하고 지난하게 살아가는 무게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 와중에 툭툭 화면을 흔들며 세 주인공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영화에서 한 주인공이 말했다. 이곳에서 많은 여성들이 ‘개미처럼 일하고 거미처럼 사라져갔다’고. 아마도 주인공은 늘 숨을 죽이며 살다가 도망치듯 사라져야 했던 여성들을 보며, 빛이 아닌 어둠을 찾아 스스스- 사라지는 거미를 떠올렸을 것이다. 철거가 진행되고 개발이 완료되면, 또 한 무리의 여성들이 거미처럼 이곳에서 사라져 갈 것이다. 용산, 영등포, 춘천의 난초촌 등의 성매매 집결지들이 도시개발계획에 의해 사라질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영화를 통해 이 여성들은 각자의 이름과 역사가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드러냈다. 스물여섯 번의 낙태 얘기를 담담히 토해내는 분식집 주인 바비 엄마로,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났던 안성자 씨로, 그림 그리는 욕쟁이 언니 인순 씨로… 색깔 있는 존재로 우리의 삶에 들어왔다. 이들은 더 이상 거미가 아니다.

송이송(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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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뱃속 아기는 잘 자라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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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시작과 끝은 대리 출산을 의뢰한 이들과 대리모의 살가운 화상통화 장면이다. 의뢰인들은 대리모의 부른 배를 보며 경탄한다. 그녀가 편안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고 있기를 바라고, 가족들이 보고 싶다는 말에 안타까워하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다. 서로의 호의로 가득한 두 번의 통화 장면은 영화의 처음과 끝에서 대비된다. 그 사이에 우리는 화상캠 시야 바깥의 사실들을 목격한다.

 

수요와 공급이 국경을 넘나드는 지구화된 시장에 상업화된 의료 영역도 들어와 있다. 낮은 가격으로 높은 기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제 3세계’는 의료 관광의 주요 행선지가 되며, 영화의 배경인 인도는 특히 보조생식기술 분야의 국제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리고 ‘불임클리닉’의 성장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대리모까지 제공하는 ‘산업’의 성장으로 이어졌다. 병원에 고용된 중개인들은 여성들에게 대리모가 되는 것을 설득한다. 공장 일만으로는 집세, 학비,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여성들은 대리모로 지원한다. 영화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따라가며, 이런 현실에서 인도 여성들의 삶에 ‘의료’가 어떤 얼굴로 개입하고 또 등을 돌리는지, 대리모 당사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가 다루고 있는 문제는 먼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한국에도 ‘대리모 문제’가 존재하기 때문일까? 물론 그러하고, 그것은 중요한 진실이다. 한국 사회도 전 지구적 시장 경제의 일부다. 국내에서도 암암리에 대리모가 중개되지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중국으로, 난자 거래나 대리모 매매가 이루어진다. 일국의 규제로는 한계가 있고, 관련된 사안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도 부족하다.

 

그러나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할 때, 영화의 메시지는 ‘대리모 문제’와 표면적으로 무관한 대다수 사람들의 코앞에 들이밀어진다. 가족의 유지와 국가의 재생산을 위한 ‘몸(자궁)’으로 존재해온 여성들. 의료의 ‘대상’이 되어 자기로부터 소외된 몸들. 특정 기술의 소비를 부추기기 위해 주류 규범을 강화하고 부작용을 축소 광고하는 의료 현실. 전제된 권력 구조는 은폐된 채 선택지란 미명으로 여성들에게 제시되는 어떤 실천들.

 

기술과 시스템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에 기반을 두고 생겨나며 발전한다. 그러한 ‘정치’ 속에서 어떤 것은 강화되고 어떤 것은 보이지 않게 된다. 영화는 보이지 않게 된 것들에 대한 여성들의 증언이다. 그리고 화상캠 시야 바깥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실들이 존재하듯이, 이 영화의 프레임 바깥에,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 속에 이미 ‘대리모 문제’라는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여성 몸의 문제들이 존재한다.

제이(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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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해설: 자, 이제 댄스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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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인공임신중절은 형법으로 처벌된다. 모자보건법에 적시된 극히 협소한 사유에 해당되는 경우가 아닌 모든 ‘낙태’는 원칙적으로 범죄이다.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낙태’의 만연을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편 1960년대에는 인구관리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임신중절을 종용하기도 했다. 그때도 형법상 낙태죄 처벌조항이 있었지만, 많은 여성들이 암묵적인 허용 하에 여러 차례 수술대에 올랐다. 최근까지도 낙태죄는 사문화된 법이었다.

 

2010년 일부 산부인과 의사들이 임신중절 수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며 ‘낙태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마침 정부도 ‘저출산 대책’의 일환으로 ‘낙태’의 엄중 단속에 나섰다. 몇 개월간 시술 비용이 10배 넘게 뛰었다. 중국으로 ‘낙태’하러 가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언론에서 노골적인 비난조로 다뤄졌다. 음성적인 시술을 받던 중 목숨을 잃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민우회로도 상담 전화가 걸려왔다. 병원을 문의하는 여성, ‘낙태’를 강요받고 있는 여성, 남성 파트너에게 낙태죄로 고발당한 여성 등 다양한 처지의 여성들이었다. 최근엔 특히 남성이 ‘다시 만나달라’거나 돈을 요구하며 여성을 낙태죄로 협박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임신중절은 생명윤리의 문제도 아니고, 여성의 ‘선택권’의 문제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낙태’를 하고 싶어서 하는 여성은 없다. ‘낙태’를 ‘선택’한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피임 교육의 미비, 아이를 낳아서 양육하기 힘든 사회경제적 조건, 비혼으로 아이를 낳아도, 장애아를 낳아도, 여아를 낳아도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적 토대를 말하기에 앞서 여성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려 처벌하는 것은 국가 폭력이다. 여성들을 처벌하여 낙태율을 낮추겠다는 것은 현실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삶의 조건을 외면하는 것이다.

 

여성들의 현실을 얘기하면 ‘그럼 낙태를 찬성하는 것이냐’는 반문이 되돌아온다. 이 영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이 될 것 같다. 찬반론에 묻혀서는 안 되는, 생명과 선택의 이분법에 갇혀서는 안 되는 여성들 한 명 한 명의 이야기가 있다.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생명’으로서, 태아를 포함하여 이 세상과 연결된 존재로서 자신의 몸과 성에 대한 권리를 지켜나가고자 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이곳에서 모든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

 

제이(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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