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1~ 2017.06.04

22회 서울인권영화제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22회 서울인권영화제 :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포스터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세상은 나를 ‘오류’라 한다.

내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했을 때
세상은 나에게 이기적이라고 했다.
내가 해고가 부당하다고 했을 때
세상은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
내가 그 날의 진실을 알고 싶다고 했을 때
세상은 나에게 지겹다고 했다.

그리고 세상은 나에게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

아니, 가만히 있지 않겠다.
차라리 불온해지겠다.

내 존재를 반대하는 세상에서, 오롯이 나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이기적이고, 요란하게, 지겨운 이야기들을 계속하겠다.

그래서 나는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삶이 깃든 공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은 당신을 만나고
없는 존재로 살지 않겠다는 당신을 만났다.
그런 당신을 세상은 역시 불온한 존재로 호명했지만

불온한 나는 그렇게 불온한 당신과 만나
불온한 연대를 시작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면
기꺼이 불온해지겠노라고 우리는 다짐했다.

‘나’로 살 수 없는 수많은 삶들을 위해
우리는 다시 광장으로 나간다.
승리에 완성은 없기에
나와 당신, 그래서 우리는 끝까지
불온하라, 세상을 바꿀 때까지.

맞서다: 마주하다, 저항하다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던 그날들, 사이사이에 끼워두었던 이야기들을, ‘승리의 날’ 이후 더 커진 ‘불온함’으로 마주합니다. 이제 승리했으므로 더는 저항이 필요 없다고, 또 한 번 “가만히 있으라”고, 쏟아지는 말들에 맞섭니다. 그래서 포기할 수 없는 이름들을 꼭 쥐고, 다시 광장으로.

혐오에 저항하다

나는 여성이고, 트랜스젠더, 흑인, 그렇기에 불온한 존재라 합니다. 나의 불온함이 당신은 불편합니까. 당신은 혐오의 시선으로 나의 일상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혐오 앞에 당당히 저항합니다. 끊임없이 증언하고 연대함으로. 그 시선을 부수고 아직 세상이 발견하지 못한 것까지, 그 모든 불온함을 가진 존재가 될 것입니다.

시민을 묻다

나는 국가가 원하는 시민이 돼야만 할 것 같습니다. 실제 내 삶과는 관계없이, 그리고 삶의 내용과 무관하게 나는 배치됩니다. 안에서 밖으로, 밖에서 안으로 넘나드는 존재가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시민에 대해서 묻습니다. 그리고 확인하게 됩니다. 국가가 원하는 시민의 모습이 정해져 있다는 것을요.

내 몸이 세상과 만날 때

내가 나를 드러내자 세상은 나를 불온하다 합니다. 나에게 장애가 있다고, 혹은 내가 지정 성별과 다른 몸이 되고 싶어 한다고, 그리고 그렇게 변하고 있다는 이유로 나를 ‘반대’합니다. 세상은 나와는 사뭇 다른 잣대로 나의 몸을 부르는 듯싶습니다. 왜 내가 불편한 존재여야 할까요. 나는 내가 나로 오롯이 존재할 수 있는 나의 세상을 만들고자 합니다.

자본의 톱니

먼 곳에서 여기까지 온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미국에서 우간다로, 다시 필리핀으로, 한국으로, 기지촌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자본’입니다. 나를 따라 사람들도 이동합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 맞물려 돌아가는 자본의 톱니 속 사람들은 가격표가 붙어 이리저리 옮겨집니다. 용감해지고 싶었던,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이들이 그 톱니의 틈새를 뚫고 나오며, 끊임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보인권 - 표현의 자유

누군가 나를 감시합니다. 골목마다 설치된 CCTV, 실시간으로 내 위치를 확인하는 스마트폰이 나를 붙잡는 거미줄이 될지 몰랐습니다. 그럼에도 나의 ‘표현의 자유’를 막을 순 없습니다. 나의 ‘정보’도 ‘인권’입니다. 이제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불온한 우리’는 그들에게 대항해 정보를 공유하며, 서로를 지지하고 행동합니다.

투쟁의 파동

‘나’의 이야기로 시작한 투쟁. 팟캐스트를 통해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전해지자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투쟁하는 나와 내 삶이 뒤섞이면서, 나와 내 주변은 달라집니다. 동료, 친구, 가족. 투쟁에서 먼 듯 가까운 그 공간에서 우리는 새로운 관계를 맺습니다. 파동의 시작점은 다를지라도 우리는 모두 함께 흔들리고 일어섭니다. 그렇게 우리는 연결되었습니다.

삶의 공간: 지키다

나는 이곳에서 살아왔고, 또 살아갈 것입니다. 이 공간이 커져가는 상권으로, 황폐해진 환경으로, 또는 강제 점령으로 점점 예전 모습과 다르게 변해간다고 해도 이곳에 뿌리내린 내 삶은 이 땅, 바로 이 자리에서 지속될 것입니다. 나는 살아감으로써 내 삶의 공간과 나의 터전을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