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 공모작 선정을 마치며

소식

26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 공모작 선정을 마치며

 

26회 서울인권영화제 국내 공모작 선정 작품 (가나다순)

▲ 50cm⎮김소정⎮2023⎮22’⎮극영화

▲ 귀귀퀴퀴⎮새훈⎮2022⎮22’⎮다큐멘터리, 실험

▲ 기억의 공간들⎮마주⎮2023⎮58’⎮다큐멘터리

▲ 내 몸이 증거다⎮유혜민⎮2023⎮22’⎮다큐멘터리

▲ 오류시장⎮최종호⎮2023⎮72’⎮다큐멘터리

▲ 퀸의 뜨개질⎮조한나⎮2023⎮36’⎮다큐멘터리

▲ 홈그라운드⎮권아람⎮2023⎮85’⎮다큐멘터리

▲ My First Funeral⎮이은혜⎮2023⎮37’⎮다큐멘터리

 

2014년 4월 16일로부터 10년이 흘렀음이 뼈저린 요즘입니다. 코로나19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배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고, 2022년 10월 29일 우리는 막을 수 있었던 참사의 현장을 다시 한 번 목격해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온전한 애도와 기억의 시간을 가질 새도 없이 책임과 반성 없는 국가와 혐오에 맞서야 했습니다. 21대 국회가 끝나가며 새로운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차별금지법은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고 정치는 보란듯 차별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저항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의 연대 역시 중단한 적 없습니다. 우리는 절대 삭제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들입니다. 역행의 시대에 맞서 투쟁하는 이들의 귀한 힘을 느끼며, 서울인권영화제는 6년 만에 다시 광장으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2024년 서울인권영화제는 26회를 맞이하는 첫걸음으로, 국내 작품 공모를 통해 121편의 출품작을 만났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및 자원활동가 10명이 2월 1일부터 3월 28일까지 약 2개월의 숙고를 거쳐 총 8편의 작품을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1회부터 지금까지 전 작품 한글자막과 함께 상영하고 있으며, 23회 이후로는 모든 상영작에 자막해설과 한국수어 통역을 삽입합니다. 이는 시청각 중심의 ‘영화’라는 매체에 보다 다양한 이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며, 평등한 접근권을 실천하고자 하는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 원칙이기도 합니다. 보다 많은 미디어 현장에서 장애인접근권에 대한 고민이 깃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인권영화제는 지난 25회 공모에서 처음으로 ‘장애인접근권 실천을 위해 노력하며 한글자막이 있는 작품’을 출품 자격에 추가하였고, 올해 역시 이를 지속하기로 했습니다. 121편의 출품작 중 일부 작품을 제외하고 대부분 한글자막이 있었습니다. 또한 다양한 방식으로 자막해설을 시도한 작품들 역시 돋보였으며, 화면해설이 있는 작품 역시 다수 있었습니다. 심사 과정에서 이러한 작품들을 만나며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접근권 실천이 보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시도되고 있음에 반가운 마음과 함께 앞으로도 상영작 및 상영장에서 평등한 접근권을 실현할 수 있게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함을 느낍니다.

또한 24회 공모 이후로 ‘BDS 가이드라인에 위배되지 않는 작품’을 찾고 있습니다. BDS란 BDS는 ‘보이콧(boycott), 투자철회(divestment), 제재(sanctions)’의 약자로,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및 인종차별을 끝내기 위해 팔레스타인 시민사회에서 2005년부터 이어진 비폭력 저항 운동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 군사 점령에 공모하는 자본과 기업, 국가기관에 연루된 작품은 상영하지 않습니다. 이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 원칙이기도 하며, 창작물이 생산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자본과 권력, 폭력에 대한 거부이기도 합니다. 이를 확인하고 작품을 공모해주신 출품인들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앞으로도 서울인권영화제는 작품의 창작/생산 과정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이어나갈 것임을 약속 드립니다.

한편 서울인권영화제 공모에서 항상 가장 중요하게 살피는 것은 ‘삶의 서사를 이야기하며 투쟁의 현장으로 이끄는 작품’입니다. 121편의 출품작 모두 다양한 삶의 장면들을 담은 영화였습니다. 특히 이전보다 노년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 늘어난 점이 눈에 띄었으며,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인물을 내세운 작품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매체에서 소수자를 다루는 시선, 특히 ‘타자’로서의 시선 또는 ‘연민’의 시선을 답습한 작품 또는 소수자 인물이 보다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위해 소비된 작품에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불행과 고통에만 매몰되거나,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타인의 삶을 바라보거나, 개인을 영웅화하여 동료시민을 주변부로 밀어내거나, 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며 자신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경우 아무리 시의적절한 주제를 말한다고 해도 우리가 함께할 인권영화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장르에 관계 없이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과 배제, 이에 저항하는 연대에 대한 고민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빛을 발했으며 이에 중점을 두고 선정 논의를 진행하였습니다. 또한 지금 우리가 함께 꼭 이야기하고 싶은 애도와 기억의 현장, 차별에 저항하는 연대의 현장을 담은 작품을 발견할 때는 다 함께 환영하며 작품이 주목하는 삶의 서사, 그리고 투쟁의 현장으로 이끄는 힘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한편 비인간-동물에서 출발하여 인간-동물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게끔 하는 작품, 기발한 기획과 재치 있는 포착이 돋보이는 작품도 있었으나 대상을 향한 카메라의 시선에 대해 깊은 토론을 하며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놓기도 하였습니다. 또한 격년 개최와 적은 예산으로 한정된 기간 내에 영화제를 진행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마음 아프게 내려놓은 작품들도 적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약 두 달의 숙고를 거쳐 서울인권영화제는 최종적으로 ‘덩어리’로 묶인 채 배제되어 온 이들의 고유성에 주목하며 인물의 서사에 힘을 싣는 작품, 애도와 기억에 대해 고민하며 그 현장을 찾아가거나 만들어가는 작품, 코로나19 감염병 상황을 지나며 흩어져야 했던 이들을 모이게끔 하는 작품, 새로운 시선으로 저항의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 정답을 제시하기보다는 묵직하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작품, 영화의 내부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지금 우리의 삶, 투쟁과 연대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상영작으로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영화’란 무엇인가 답을 찾기 위해 끊임 없이 고민하고 토론했습니다. 인권영화라는 것이 칼로 나누듯 명쾌하게 나뉠 수 있다면 이런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에, 26회 서울인권영화제의 현장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펼칠 것인가 계속하여 질문하고 여러 개의 축을 그려가며 그 스펙트럼 사이에서 방점을 찍으며 논의를 이어나갔습니다. 영화로 인권을 말하는 것과 인권적 요소를 첨가한 영화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을지, 그 사이의 거리와 각각의 의미를 생각하고 이야기했습니다.

또한 인권운동의 현장에서 서울인권영화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 그리고 출품해주신 작품들로써 할 수 있는 이야기 사이에서 무엇이 우선인가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 속에서 ‘서울인권영화제는 어떤 영화제여야 하는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그 어떤 좋은 영화일지라도 이미 ‘인권영화’로서 완성된 작품은 없다고 믿습니다. 작품이 사람과 만나고 삶과 연결되며 현장과 연대할 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모이고 싸울 때, 비로소 인권영화가 되고 우리 역시 비로소 인권영화제가 된다고 믿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와 영화의 만남이 ‘감상’으로 끝나는 자리가 아니라, 존엄과 평등의 연대로 확장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의 역할은 그저 이미 좋은 작품을 ‘심사’하고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권영화를 매개로 끊임 없이 만나고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임을 되새깁니다. 작품 선정 과정 동안 서울인권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다시금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상영작으로 모시게 된 8편의 작품 이외에도 활동가들을 웃고 울린 좋은 영화들이 있었습니다. 선정 과정은 우리에게 내가 누구와 어떻게 만나서 어떤 언어로 대화할지, 어느 세상을 횡단하여 어디로 삶을 확장시킬지 고민하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격년 개최와 적은 예산으로 한정된 기간 내에 영화제를 진행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 더 많은 작품들을 초대하지 못해 정말 아쉽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의 현장을 기록하고 영상/영화로 연대하는 이들과 언제나 함께하겠습니다. 누구도 완벽할 수 없지만 누구도 남겨두지 않기 위해 서로의 취약함을 이해하고 배워나가는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들어가겠습니다. 투쟁의 파동을 이어가며, 적막을 강요하는 자본과 권력에 맞서, 연약한 몸짓을 모아, 불온한 외침을 모아, 역행의 시대에 맞서, 오는 6월 광장에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품을 인권영화로 재해석하며 출품해주신 출품인들께 다시 한 번 감사와 연대의 인사를 드립니다.

 

2024년 3월 30일

서울인권영화제

25소식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