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점령과 학살 위의 스크린을 거부한다 – 텔아비브국제LGBTQ+영화제 보이콧을 요청하며

소식

지난 10월 23일부터 열린 TLVfest(텔아비브 국제 LGBTQ+ 영화제, 이하 텔아비브영화제)가 11월 1일 폐막을 하루 앞에 두고 진행되고 있습니다. 텔아비브영화제는 2006년 처음 개최된 이스라엘의 퀴어영화제로, “퀴어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진지하고 때로는 논쟁적인 담론을 만들어내며 평등과 존중을 위해 싸우”는 투쟁의 장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합니다. 올해도 텔아비브영화제는 한국 작품을 포함하여 전 세계 37개국 181편의 영화를 상영작으로 올리고, 레드카펫과 샴페인, 유명인사들이 함께하는 화려한 스크린을 올렸습니다.

2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는 무참한 가자 집단학살, 그리고 77년간 계속되는 팔레스타인 점령의 토대 위에서 말입니다.

이에 서울인권영화제는 말합니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동료 시민으로서, 그리고 연대의 스크린을 이어가는 투쟁의 주체로서,

하나. 자국의 전쟁범죄에는 침묵한 채 그들만의 다양성을 말하는 텔아비브 국제 LGBTQ+ 영화제를 단호히 규탄합니다.

하나. 팔레스타인 퀴어의 요청에 응답하여 텔아비브영화제와 협력하지 않을 것을 한국 영화계의 동료들에게 호소합니다.

텔아비브영화제는 ‘핑크워싱’의 전형적 사례입니다. 핑크워싱이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불법군사점령을 감추고 더 나아가 정당화하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을 포장하는 전략으로, 실제 성소수자의 권리 증진이나 평등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텔아비브영화제의 주요한 협력처는 텔아비브-야포 시청, 이스라엘 문화체육부, 이스라엘 영화위원회 등 이스라엘 정부기관입니다. 이스라엘의 점령 체제, 정착민-식민주의,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에서 문화 기관은 이스라엘에서 패권을 쥔 시온주의 권력층과 결탁해 핵심적인 이데올로기적·제도적 발판으로 작동해왔습니다. 이 기관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하고 은폐하는 데 명백히 공모해왔습니다.

일례로, 이러한 기관의 자금을 받는 문화 노동자가 이스라엘 외교부와 맺는 계약에는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한결같이 최상의 전문 서비스를 외교부에 제공한다”, “서비스 제공자는 긍정적인 이스라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문화와 예술로써 이스라엘의 국가 정책적 이익을 증진시키는 것이 서비스의 목적임을 알고 있다”는 조항이 있습니다. 또한 2023년 이스라엘 문화부 장관 미키 조하르는 “영화기금과 협업하는 모든 단체들”이 “‘이스라엘 국가와 이스라엘 방위군(IDF) 병사들에게 해를 끼치는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겠다’는 문서에 서명하도록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의 엄포는 지난 9월, 미키 조하르가 이스라엘 최고 영화상인 오피르상에 대한 정부 예산 지원을 2026년부터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현실이 되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가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다는 이유였습니다.

한편 텔아비브영화제는 이스라엘 문화부의 자금 문제로 영화제가 폐쇄 위기에 처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으나, 이스라엘 정부로부터의 지원은 중단되지 않았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와의 공모에서 자유로운 다른 형태의 자금원을 찾거나, 팔레스타인 인권을 포괄적으로 지지하는 명확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그들에게 선택지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텔아비브영화제는 “그 어떤 것도 ‘핑크워싱’하지 않는다”고 정면으로 반박하며,  오히려 자신들은 이스라엘의 혐오·보수 세력에 맞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낸다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영화제 보이콧은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누르”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퀴어 팔레스타인 영화인들과의 협력을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하지만 그 앞에는 “보다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중동을 만들고자 평화롭게 공존을 모색하는 퀴어 팔레스타인 영화인들”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와의 관계를 끊을 것을, 그럼으로써 점령 체제에 저항하고 팔레스타인과 연대할 것을 요구하는 이들은 텔아비브영화제에서 호소하는 “퀴어 팔레스타인 영화인들”에 포함되지 못합니다.

텔아비브영화제는 단순히 이스라엘 국적의 영화제이기 때문에 보이콧 대상으로 음해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학술·문화보이콧운동PACBI(Palestinian Campaign for the Academic and Cultural Boycott of Israel)는 텔아비브영화제를 포함한 이스라엘 영화제들이 보이콧 대상에서 제외되기 위한 두 가지 기본 조건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

  1. 국제법상 보장된 “팔레스타인 인민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2. 국제법으로 보장되는 팔레스타인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모든 공모 행위를 중단할 것.

텔아비브영화제는 지금까지 이 중 단 하나의 조건도 수용하지 않았습니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이용하는 정부 기관의 토대 위에서 텔아비브영화제는 핑크워싱에서도, 팔레스타인 점령에서도 자유로운 영화제가 될 수 없습니다. 

2017년, 14인의 영화 제작자 및 예술가는 텔아비브영화제를 보이콧하기로 선언했고, 이 보이콧에 참여한 이들은 3년 만에 15개국 300여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한국에서는 2021년 신승은 감독이 “팔레스타인 군사점령 주체인 이스라엘의 핑크워싱 전략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직접 밝히며 텔아비브영화제에 초청된 자신의 연출작 <마더 인 로>의 영화제 상영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텔아비브영화제에 대항하여 기획된 ‘QCP(Queer Cinema for Palestine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퀴어 시네마)’는 2025년 3회를 맞이하여 서울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이렇듯 텔아비브영화제에 단호한 보이콧으로 대응하는 것은 성소수자를 배제하거나 퀴어영화를 위축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팔레스타인과 퀴어, 영화의 관계성을 보다 확장시키며 보다 넓은 저항의 실험을 가능하게 하는 적극적인 연대의 방식입니다.

현재 해외 접속이 차단된 텔아비브영화제의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전쟁을 중단하라! 지금 당장 평화를! (STOP THE WAR! PEACE NOW!)” 또한 “이스라엘이 종교, 인종, 성별 혹은 성적 지향에 상관없이 모든 이에게 완전한 사회적·정치적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평화를 앗아간 이들은 누구입니까. 전쟁을 계속하며 이득을 취하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모든 이에게 완전한 사회적·정치적 평등이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하에서 가능합니까. 점령국의 폭력에 맞서는 대신 점령으로부터 취한 이윤을 취해 그 평등을 가져올 수 있습니까.

서울인권영화제는 다시 한 번 텔아비브 국제 LGBTQ+ 영화제를 단호히 규탄하며, 한국 영화계의 동료들에게 팔레스타인 퀴어의 요청에 응답해 텔아비브영화제와 협력하지 않을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언제나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서 스크린을 올릴 수 있는 영화제가 되기 위해,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긴장을 늦추지 않겠습니다. 또한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고민하는 모든 영화인들에게 언제나 열린 동료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2025. 10. 31.

서울인권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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