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기억과 애도의 힘으로, 별들의 빛으로

소식

10월 24일 오후 7시 30분, 홍대인근에 위치한 인디스페이스에서 ‘기억과 애도의 상영회’가 열렸습니다. 상영작은 장민경 감독님의 <세월 : 라이프 고즈 온>이었습니다. <세월 : 라이프 고즈 온>은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역행의 시대를 역행하라”에서 상영된 바 있습니다. <세월 : 라이프 고즈 온>는 유경근 님(세월호 참사 유가족, 예은 씨의 아버지)이 진행하는 팟캐스트에 여러 사회적 참사의 유가족이 출연하여 서로의 사연과 통증을 이야기하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나누는 영화입니다. 세월호 유가족 유경근 님, 5.18광주 민주화운동 유가족 배은심 님, 씨랜드 화재 참사 유가족 고석 님,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황명애 님과의 대화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과 사회에게도 참사란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하는 이를 위해 분투해온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있지요.

기억과 애도의 상영회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의 진행과 함께, 송해진 님(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이재현 씨의 어머니), 김폰삼 님(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 김춘효 씨의 아버지), 장민경 감독님이 이야기 손님으로 오셨습니다. 상영관 밖에서는 노란색 세월호 리본을 비롯하여 인현동 참사(흰색), 스텔라데이지호 참사(주황색), 이태원 참사(보라색), 오송지하차도 참사(초록색), 아리셀 참사(하늘색),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참사(분홍색)를 상징하는 색의 리본을 나눠드리고 있었습니다. 리본의 색이 너무 많아 일찍이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영화 전후로도 사회적 참사가 이어졌던 만큼, 이번 대화 시간은 잔잔하면서도 분통한 마음을 안고, 담담하게 서로의 세월을 마주하며 시작되었습니다. 

1999년 10월 30일 인천 중구에서 발생한 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는 업주의 불법 영업과 공무원, 경찰의 유착관계가 원인이 됐던 화재 참사였습니다. 비리와 관련된 경찰과 공무원이 건물 지하 노래방에서 난 불을 청소년이 호프집에서 놀다가 불이 난 사건이라고 매도하며 참사의 피해자와 유가족은 곳곳에서 가해지는 명예훼손과 혐오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언론과 사회는 이 참사를 ‘호프집 화재 사건’이라고 부르며 업주와 공무원이 불법 유착 관계를 무마하려 하였습니다. 

“’호프집’이라는 단어를 떼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저희는 ‘10.30인천인현동화재참사’로 명명하고 있어요. 이제는 ‘호프집’ 단어를 많이 안쓰는데 아직 일부는 쓰고 있더라구요. 그것도 잡아나가려고요.”

“재난참사피해자권리센터에서 재난참사피해자연대를 만들었어요. 연대에 들어가니까 다른 재난참사피해자들을 만나게 되었어요. 그렇게 모이니 힘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지혜 학생 명예회복 문제도 재난피해자권리센터와 여러 단체들의 도움을 받고 해결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힘으로는 어려웠을 거 같은데 연대의 힘으로 조례도 (인천시 본회에)통과했습니다.”

– 김폰삼(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 김춘효 씨의 아버지)

김폰삼 님의 이야기에서 그간 유족회가 어떤 길을 걸어왔을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 이지혜 학생은 인현동 화재 참사 당시 호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몰려 보상에서 제외되었던 희생자입니다. 유가족 측에서 시에 낸 소송 1심에서 패소하였습니다만, 재난참사피해자 연대와 여러 단체의 협력으로 조례가 본회를 통과하면서 다른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사진. 관객과의 대화 모습. 왼쪽부터 진행자 마주, 수어통역 보석, 이야기손님 김폰삼, 송해진, 장민경. 마이크를 잡고 발언 중인 송해진.

한편 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와 10.29 이태원 참사는 가슴 아프게도 어떤 면에서는 닮은 점들이 반복되는 듯 보였습니다. 참사의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며 희생자를 모욕하는 책임 주체들, 이를 여과 없이 확산하고 혐오에 앞장섰던 언론, 재난참사 피해자의 존엄과 권리는 뒷전으로 한 채 생명과 안전이 존중되지 않는 사회……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대화는 계속되었습니다.

“인현동 참사의 희생자 나이가 어려요. (인현동 참사랑 이태원 참사가) 참사 뒤 희생장들에 대한 명예훼손이라든가 모욕이 심했던 두 참사였던 거 같아요. (중략) 이태원 참사 같은 경우에, 누군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라느냐 물으면 이건 국가의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각성하고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대답을 하거든요. 국가와 시의 안전﹒행정 무능이 이태원 참사의 원인이었어요.”

– 송해진(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이재현 씨의 어머니)

영화에서도 나오듯, 이러한 사회에서 희생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안전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해 하루하루 싸우는 유가족들의 분투는 때로 너무나도 외롭습니다. 이렇게 외로운 마음은 위안 받고 싶으면서도 드러내기 쉽지 않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이런 순간에 어떻게 싸움을 이어나가는 동력을 얻는지, 다른 유가족들과 어떻게 힘을 주고 받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천인현동화재참사가 26주기가 됐어요. 26년 동안 외롭게 싸우고 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보니까 우리만이 아니고 또 그렇게 힘들게 싸우고 계시는 분들이 있구나 하는 마음이어서 우리만 외롭게 있었던 것이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놓인다 그럴까요? 그런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 김폰삼(10.30 인천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 김춘효 씨의 아버지)

“저희는 별들의 집이라고 기억공간이 있어요. 참사 후에 사실 그동안 가깝게 지낸 가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때 상황을 잘 공감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내 상황을 알 거 같다고 느꼈던 사람이 난생 한번도 본적도 없던 다른 유가족 분들이셨어요. 나이도 지역도 다른데 눈빛이, ‘아. 저 사람들도 저렇게 아프지.’ 이런 생각도 들고. 그런데 사람을 만나려면 물리적인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중략) 저희가 접근성이 좋은 장소에 있어서 여러 활동가 분들, 시민 분들이 왔다 갔다 해주시니까. 그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거 자체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에너지 같은 게 느껴지거든요, 유가족 한테는.”

“우리 유가족 그리고 다른 참사의 유가족들과 함께 만나면 특별한 대화를 갖거나 해법을 가지게 되어서 도움이 되는게 아니라 말이나 표정 모든 것들이 그냥 마음으로 확 이해가 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참사 유가족이 된다는 것은 충격적이 일이기도 있지만 내가 이 사회에서 혼자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 고립감이 너무 심해서 사실 좀 순간 순간 굉장히 힘들 때도 많은데, 그 분들을 보면 나도 사회, 어떤 공동체의 일원으로 연결되어 있구나, 누가 나와 비슷한 상황에 있고 내 심정을 어떤 누가 알아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거죠. 지난 3년여 간의 시간이 그런 과정이었어요. 그런 느낌들이 점점 커지는 것.”

– 송해진(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이재현 씨의 어머니)

다른 참사의 유가족이 서로 만나는 일이, 그리고 유가족과 시민이 실제로 마주하고 만나는 일이 실질적인 에너지로, 따듯함이 느껴지는 원동력이 된다는 말을 이어 해주셨습니다. 

사진. 관객과의 대화 모습. 왼쪽부터 마주, 보석, 김폰삼, 송해진, 장민경. 마이크를 잡고 발언 중인 장민경.

마지막으로 장민경 감독님은 영화의 형태에 대한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서로 다른 참사 유족을 통해 안고사는 삶을 살아왔던 유가족 분의 삶이, 그것이 유가족만의 몫이어야 할까? 사회의 몫은 없는 걸까?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모습을 연출하거 싶어서 참사 터와 추모 공간을 돌아다니며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18년도 당시 각 사회적 참사의 개별화도 심하고 위기와 공동체로부터 격리도 심했거든요. 유경근 님의 팟캐스트가 다른 시공간의 유가족이 한 공간에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형식이 인상 싶었어요. 서로 마주하면서 대화하고 연결해 나가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자, ‘안고사는 삶’에 대한 공통의 경험을 통해 다층적인 의미를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 장민경(<세월: 라이프 고즈 온> 감독)  

이어서 감독님은 “영화를 제작하고 두가지 내 안의 화학 작용이 있었어요. 첫째는 과거의 사회적 참사를 대하는 태도에요. 그 전까지는 참사라고 하면 슬픔이나 아픔의 인상이었어요. 하지만 ‘안고 산다는 것’에 상실의 아픔도 있지만, 그 이후에 가족 분들이 사회의 어떤 심연을 보고 새롭게 알게 되거나, 다른 분들과 연대하고 다른 가능성을 일구는 부분을 발견하게 됐어요. (중략) 두번째는 계속 일어나는 참사에 대한 태도가 있습니다.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중요했어요. 단편적인 기사나 유족, 피해자의 이야기가 알려지지 않는 것이 많을 것이고, 복잡한 감정선이 있을 것이고, 내가 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모른다고 생각하고 계속 찾아가게 되는 그런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라고 말하며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그리고 사회재난 참사를 목격한 이로서도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사진.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들이 "별들과 함께, 진실과 정의로"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함께 앉아 있다.

인현동 화재참사 해상 추모제 홍보 이미지. 2025. 10. 30. 12:00 인천연안부두 유람선 선착장. 신청은 010-8000-1567로 문자.

상영회 다음날인 10월 25일 토요일에는 서울광장에서 10.29 이태원 참사 3주기 시민추모대회가 있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도 보라색 리본을 달고 서울광장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30일에는 인현동 화재참사 26주기 해상 추모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가 참사의 아픔과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진상규명과 피해자 명예회복에 함께 연대하고 안전사회를 위한 싸움에 동참할 것을 표현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기억과 애도의 힘으로, 별들의 빛으로 함께하겠다고 다짐하며, 송해진 님의 이야기로 소식을 마무리합니다.

“만나면 뭐든지 뭔가가 생기더라고요 누구든 만나면 이야기를 하게되고 그러면 또 어떤 공통의 관심사가 생기게 되고 그러면서 그 만남이나 그 일들, 주제들이 이어져 가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꼭 어떤 주요 활동, 추모대회, 기억식 이런 것도 물론 의미 있지만 내 일상 속에서 주변의 사람들과 아플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함께 하고 있는 사회의 한 측면이기도 하잖아요. 

유족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셨겠지만 삶이 다채로와요. 죽음을 항상 가까이 있다는 걸 알고 살아가면 삶이 더 다채로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 참사가 다양한 이야기로서 시민들한테 전해지고 또 전해지고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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