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펼치기] 열한 번째 4월 16일, 그리고 1696번째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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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슬픔은 시간을 세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열한 번째 4월 16일입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세월호 참사 11주기이기도 한 오늘,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관한 1696번째 수요시위에 다녀왔습니다. 고운 활동가의 발언을 공유하며 전쟁 폭력과 재난참사의 희생자를 애도하고 피해생존자와의 연대를 약속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동료들과 함께 온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 고운입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오늘 수요시위가 처음입니다. 첫 수요시위에서 이렇게 마이크까지 잡게 되니 더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은 1696회 수요시위라고 알고 있습니다. 저희 집 베란다에서 키운 바질의 씨앗을 얼마 전 수확했는데요, 먼지만한 씨앗들이 몇 개나 되나 세어 보다가 100개가 되기 전에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1천하고도 696번째의 수요일이라니. 그간 쌓인 시간이 어떠할지 차마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오늘은 4월 16일이기도 합니다. 인류가 날짜를 세기 시작한 후로 수천 번의 4월 16일이 있었겠지만 저에게는 오늘이 열한 번째 4월 16일입니다. 어떤 슬픔은 시간을 세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기억이라는 게 그저 머릿속에 있는 무형의 마음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기억은 ‘하는 것’이기에 동사라는 것을 자주 떠올립니다. 기억은 움직이고, 행하고, 연결되는 것이 아닐까 하면서요.

저는 이 앞 카페에 자주 옵니다. 카페에 갈 때마다 울타리에 둘러싸인 평화의소녀상을 만나는데요, 쉽사리 지나칠 수가 없어 잠시 가만 들여다보곤 합니다. 소녀상이 있는 그대로 자유롭지 못하고 꽁꽁 싸여 있는 모습에 기분이 참 이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나긴 겨울을 보내며 역사를 부정하는 것, 기억을 부정하고 평화와 존엄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 어떠한 폭력인지 다시금 경험했습니다. 평화의소녀상이 울타리 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은 부끄러운 역사를 인정하고 슬픈 역사를 위로하며, 그 어떤 재난 상황에서도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먼저 희생당하지 않는 세상일 것입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세상, 최소한 그런 세상을 만들자고 약속하는 세상일 것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아직도 태산입니다만, 저는 나름대로 제가 할 수 있는 움직임을 계속하기로 약속합니다. 전쟁의 폭력으로 나비가 되신 할머니들을 애도하며, 꿋꿋이 싸움을 이어가시는 할머니들의 용기와 함께하기로. 미래의 시간을 통째로 잃어야 했던 재난참사 피해자들을 애도하며, 남은 이들과 함께 안전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기로. 그렇기에 기억을 계속하길, 손이든 발이든 무엇이든 계속 움직이길 스스로에게 약속합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부는 요즘, 모두들 식사 잘 챙기시면서 따뜻한 날 보내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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