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권영화제는 지난달 21일, 오후 7시 30분, 스테이션 사람에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상영회를 열었습니다. 상영작으로는 26회 서울인권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했던 <파랑 너머>를 선정했는데요. 트랜스 남성인 ‘닐’을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였습니다. 인도 사회는 한국만큼이나 이분법적인 가부장제가 공고합니다. 지정 성별이 곧 그 사람의 젠더가 되어야 하며, 남성과 여성의 사랑만이 축복과 환영을 받을 수 있지요. 그런 사회에서 레즈비언이나 게이, 트랜스젠더와 같이 성별 이분법을 교란하는 성소수자는 쉽게 비난과 처벌의 대상이 됩니다.
영화는 ‘닐’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닐의 가족과 동료를 비추며 이들 사이의 갈등과 적대감, 이해와 연대, 사랑과 긍정의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가족과 트랜스젠더 당사자 간의 불협화음에 대한 질문도 많았습니다. 그럼 이번에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지금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야기 손님’으로는 변희수재단 준비위원회의 하루 님을 모셨는데요. 하루 님은 “제 경험이랑 되게 비슷한 점이 있어서 공감이 많이 되었던 거 같아요.”라고 말하며, “닐이 지우개를 수집해요. 거기서 감독이 지우고 싶은 순간이 있냐고 물었을 때 ‘지우고 싶은 순간 없다. 그때의 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저도 사실 그렇게 생각하고 살고 있어서 너무 공감이 많이 됐어요.”라고 첫 감상평을 나눠 주셨습니다.
영화에서 ‘닐’은 자신을 ‘트랜스 남성’으로 정체화하고 트랜지션 수술을 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해 묻고, 이분법으로 나눠진 ‘남성’과 ‘여성’(닐의 경우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삶을 횡단하지요. 험난한데다 끝도 안 나는 과정이지만 이 삶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이는 사회가 지정한 ‘젠더’ 개념을 따르지 않고 주체적으로 삶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즘과도 맞닿습니다. 그 이유로 ‘닐’ 역시 페미니즘을 공부하며 자신을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합니다. 하루 님은 “제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둘(트랜스젠더와 페미니즘)이 바늘과 실 같아요. 성별 이분법을 뛰어넘어서 모든 성 정체성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그런 기본 전제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트랜스젠더는)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렇게 표현해 보고 싶습니다.”라며 공감을 했습니다.
객석에서는 트랜스젠더로서 ‘닐’이 살아가는 과정에 자신의 삶을 빗댄 질문이 많았습니다. 관객 중 한 분은 “자기 힘든 것을 이겨낼 만한 그런 다른 대체할 만한 그런 기쁨들이, 소소한 기쁨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런 상황을 견뎌내기가 더 용이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요.”라고 소감을 나누어 주셨고, 자신을 논 바이너리라고 소개한 한 관객분은 “가족 간의 관계에서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리고 만날 때마다 ‘우리 손주 결혼하는 거 보고 가야지’라고 말씀하시는 할머니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가족과 관계에서 어려워지는 지점을 질문하셨습니다.
요는, 커밍아웃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하루 님과 소하 님은 자신의 커밍아웃 경험과 난처했던 경험, 그리고 가족과 관계에서 아직도 해소하지 못한 감정을 솔직하게 나눠주셨습니다. “‘100명의 트랜스젠더가 있다면 100가지 트랜지션이 있다.’ 이 말처럼 또 각자 가족 내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다 다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 당장 그 부분을 정말 명쾌하고 시원하게 어떤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같이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커뮤니티가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 같고 이런 자리가 좀 계속 지속이 돼서 우리가 같이 이런 걸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셨죠. 이는 트랜스젠더의 경험이 모일 수 있는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 그리고 트랜스젠더를 혐오하지 않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함께 모이면 앞으로 해 나가야 할 것들을 계획하고 그려나갈 수 있으니까요. 그게 아니더라도 서로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서로를 다독여줄 수 있는 커뮤니티는 너무도 중요하고 소중합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지고 오신 트랜스젠더 당사자가 많았던 상영회였던 만큼 저 역시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로서 앞으로 성소수자 의제가 있는 곳에서 또 만날 수 있기를 빌었습니다. 한 시간가량의 짧은 ‘관객과의 대화’로는 전부 이야기할 수 없었지만, 이번 시간에 나온 이야기를 우리의 과제로 삼고 지속해서 함께 논의하고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시간은 앞으로도 많은 겁니다. 그때 더 많은 트랜스젠더 당사자와 앨라이가 모일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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