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 펼치기] 404 president Not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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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집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웃고 있다. 왼쪽부터 두부, 소하, 나기, 안나, 고운이 서있다.
사진. 집회에서 서울인권영화제 활동가들이 웃고 있다. 왼쪽부터 두부, 소하, 나기, 안나, 고운이 서있다.

지난 4일 금요일 오전 11시 22분, 우리는 드디어 이 문장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8인의 헌법재판관 전원이 일치된 판결로 파면을 선고하는 순간, 저는 함께 싸워 온 동지들을 얼싸 안고 방방 뛰었습니다. 윤석열이 어떻게 민주공화국의 헌법을 어겼는지 조목조목 읊으며 그 죄의 무거움을 말하는 20여 분의 선고를 듣는 동안, 민주 사회에서라면 이렇게 당연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기나긴 겨울을 싸워 온 우리의 얼굴들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지난 달도 우리는 봄이 오는 줄도 모른 채 거리를, 광장을 집 삼아 추위를 벗 삼아 보냈습니다. 조금 따스해지는가 싶다가도 매서운 바람이 불어 오들오들 떨곤 했습니다. 봄이 오려다가도, 파면이 아직 안 되어 달아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요. 그 거센 바람에 산불이 번져 나가는 것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기만 하며 정말 가슴 답답한 3월을 보냈습니다.

2024년 12월 3일부터 2025년 4월 4일까지, 겨울이 참 길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지난 해 12월 13일 “퇴진까지 계속하는 인권영화제”를 시작하며 하루 빨리 상영을 마칠 수 있길 바랐습니다. 3월에 접어들 무렵에는 윤석열 파면이 머지 않아 상영회를 곧 마칠 것이니 부지런히 영화를 보시라고도 했습니다.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요.

온라인 영화관 HRflix에서 영화들이 상영되는 동안 활동가들은 깃대를 들고 광장을 지켰습니다. 매번은 아니어도 거의 매번 나간 것 같습니다. 윤석열 퇴진 성소수자 공동행동과 함께하며 무지개존을 만들고 지켰습니다. 무지개행동 집행위원으로 비상행동 상황실에 파견되어 농성장을 지키거나 시민총파업, 리본행동 등의 사업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자고 싶고, 놀고 싶고, 잘 안 읽는 책도 읽고 싶어질 정도로 정말 쉬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지만… 서울인권영화제는 어떻게든 꽉 채운 네 달을 보냈습니다. 생업•학업을 이어가면서도 지친 몸을 이끌고 오는 자원활동가들이 함께했기에, 서울인권영화제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후원활동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12.3 내란의 밤을 지나고 광장이 열리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광장이 ‘열렸다’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을 수 있습니다. 광장은 언제나 열려 있었으니까요. 광장을 짓밟고 닫으려는 힘에 굴하지 않고 광장을 채우는 이들은 언제나 있었으니까요. 평등 세상을 꿈꿔 온 이들 말입니다. 혐오와 차별 없는, 모두가 존엄한 세상을 꿈꿔 온, 당신과 같은 이들 말입니다. 이번 겨울 이들은 다시 한 번 빛이 났습니다. 메아리조차 없는 텅 빈 거리에도 좌절하지 않고 깃발을 들던 습관으로, 아니, 좌절할지라도 또 다른 희망을 믿어보는 습관으로, 광장에 모여 서로에게 힘을 주었으니까요. 저는 그런 습관을 민주주의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물론 대통령 하나 파면 됐다고 싸움이 끝나는 건 아니지요. 하지만 이 승리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윤석열 파면한다고 세상이 바뀌겠어? 이런 냉소적인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이 바뀔 거라는 보장이 있던 적은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요. 우리는 그걸 알면서도 싸워오지 않았나요? 우리는 언제나 퇴행보다 한 발 앞서 갑니다.

광장에서 서로에게 주었던 힘을 잃지 않고, 만장일치 파면 선고를 이끌어낸 힘으로, 무지개 깃발을 휘날리고 환호하던 힘으로, 또 다른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길 바랍니다. 힘든 것도 사실이고 지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절망보다는 우리가 한 발 더 앞서 있다고 믿습니다. 나의 어제 빈 자리를 채워주는 동지에게 진 빚을 오늘 갚겠다는 마음이 우리에게는 있으니까요. 저는 그 마음을 연대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민주주의의 습관으로, 연대의 마음으로, 앞으로도 뚜벅뚜벅 함께하는 서울인권영화제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또 광장에서 만나요!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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