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아침저녁으로는 쌀쌀하지요? 백로가 지났기 때문입니다. ‘하얀 이슬’이라는 뜻으로, 가을이 들어설 즈음 밤 기온이 내려가 잎사귀나 물체 따위에 이슬이 맺히는 데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올해 백로는 9월 7일이었어요. 일요일이었는데 기억 하시나요? 그 전날 저는 친구와 석계역 근처 카페에서 각할모(각자 할 거 하는 모임)를 했었답니다. 그때 친구에게 백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요. 이 뉴스레터가 발행될 즈음에는 완연한 가을이겠지요. 한층 더운기가 가신 계절, 서울인권영화제도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며 추풍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워크숍을 하기 위해 서울인권영화제의 활동가가 사무실에 모였습니다. 내년에 있을 정기 영화제를 앞두고 ‘서울인권영화제 방향 찾기’를 위해서였습니다. 회의는 오전 10시 반에 시작하여 저녁 7시까지 이어졌습니다. 한나절 내내 서울인권영화제의 역사와 굵직한 사건을 짚어보고,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영화제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지요.

서울인권영화제는 1996년 인권운동 사랑방의 기획으로 시작된 인권-영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영화제는 엄혹한 시대의 핍박을 지나 두번의 탄핵을 겪고 이날까지 이어졌습니다. 그 사이 서울인권영화제는 인권운동 사랑방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인 인권단체로 자립했고, 영화제는 매년 개최에서 격년 개최로 바뀌었습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국내 최초 온라인 인권영화제를 개최하기도 했지요.
오늘, 서인영은 다시금 영화제를 격년 개최에서 매년 개최로 바꿔보자며 의기투합했습니다. 주류가 조명하지 않는 주변부의 삶은 언제나 격동의 ‘오늘’을 살아내고 있고, 그 안에서 수많은 이별과 상실의 경험이, 그럼에도 사랑과 돌봄의 역사가 소용돌이 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발굴해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것이 서울인권영화제의 역할입니다. 물론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바로 일이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안정적으로 영화제를 매년 개최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 한 것이 SWOT분석이었습니다. SWOT분석은 집단의 [Strength: 강점 / Weakness: 약점 / Opportunity: 기회 / Threat: 위기]를 전략적으로 살펴보고 위기는 강점으로, 약점은 기회로 극복하는 분석 기법입니다. ‘영화산업의 위기’와 ‘영화제 포화 상태’라는 대비되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야 서울인권영화제가 지금껏 지켜온 네가지 기조 一‘표현의 자유’, ‘인권감수성 확장’, ‘장애인접근권 실현’, ‘대안영상 발굴’一 와 서울인권영화제의 정체성 一무료상영, 모든 종류의 검열 거부, 거리 상영 등一 을 지키며 더 많은 시민께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이를 위해 내부 시스템을 재정립하고 각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틀을 잡을 필요가 있었지요. 동시에 인지도 향상과 재정 안정을 위한 마케팅, 서울인권영화제의 동료가 되어주실 분과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영화계/미디어활동가들과의 네트워킹 등을 과제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우리가 해내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씀 드렸듯, 첫째는 영화제 매년 개최입니다. 두번째는 안정적인 사무실 이전이에요. 현재 있는 사무실은 가파른 오르막 위에 있어 휠체어 접근성이 좋지 않거든요. 관객은 물론 영화제 활동가의 장애인접근권도 지켜져야 하니까요. 이는 마지막 꿈인, ‘모두의 극장 실현’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영화제 활동 공간을 만드는 것이 서울인권영화제의 소망이었거든요.

이 뉴스레터를 읽는 분이시라면, 이미 서울인권영화제의 행사에 와보셨거나, 이를 넘어 서인영의 활동을 항상 응원하고 지지해주시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서울인권영화제를 네 단어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하시겠어요? 우리 영화제 활동가는 각자 이런 키워드를 꼽았습니다.
- 나기: 공동체/연결되는/끌어내는/마주하는
- 두부: 모두의 극장/조명/연결/나아감
- 요다: 같이/열린/영화/연대
- 안나 : 연대 / (서인영만 틀 수 있는) 영화 / 네트워킹 / 모두를 위한 영화제
- 소하 : 인권영화 / 젊음 / 연대활동 / 모두
- 고운 : 누구나 / 연결하다 / 바꾸다 / 불온
이는 각자 생각하는 서울인권영화제에 대한 정의이자,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정체성이기도 했습니다. 워크숍을 통해 불온한 존재가 살아갈 수 있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관객-영화-영상활동가-영화제 활동가-인권활동가,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연대의 장을, 영화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작년과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여러모로 서울인권영화제는 안팎으로 변화의 시대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서울인권영화제는 변화를 위한 재정비 워크숍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언제나 여러분이 보내주시는 애정과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앞으로도 여러분과 삶을 함께하기 위해 나아가겠습니다.
사진 자원활동가 안나
글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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