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다들 잘 지내시나요? 식사는 잘하고 계시는지요? 밤잠을 설치진 않는지 걱정됩니다. 지난달 12.3 내란 이후 많은 시민이 불면증을 앓고 있다는 뉴스를 읽었습니다. 매일 속보가 날아들어 오고,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여의도 한복판에 호외가 뜨고, 국회에서는 양곡법과 김건희/내란 특검법이 가결되었다가 거부되고, 다시 상정되기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 사이 남태령에서는 농민과 시민이 무박 이틀 동안 투쟁해 불의한 공권력에 대항했고(2024.12.22), 혜화역과 국회의사당역에서 두 차례 ‘민주없는 민주동덕’ 연대 집회가 열렸습니다. (2024.12.27/2025.01.19) 용산에는 윤석열 퇴진에 목소리를 내는 퀴어 시민의 ‘우리의 시대는 다르다’ 집회가 열렸고(2025.01.15), 어제는 ‘오이도역 휠체어 리프트 사망사고’ 24주기였습니다. (2025.01.22) 전국장애인철폐연대와 시민은 주중 아침 출근길의 지하철에 올랐고,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의 방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연말과 연초, 기존의 투쟁과 새롭게 떠오르는 투쟁이 얽히며 거리와 광장은 ‘적막을 부수는 소란의 파동’으로 가득했습니다.
매주 토요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도하는 ‘범시민대행진’ 이 이루어집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역시 영화로 연대하는 인권 단체로서, 그리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시민단체로서 매주 집회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깃발과 프라이드 플래그를 깃대에 달고 광장의 ‘무지개 존’에 서서 여러분과 함께 윤석열 퇴진을 외쳤습니다. 여의도에서부터 광화문까지, 국회의사당에서부터 헌재까지, 광장과 거리를 가득 메운 응원봉과 깃발을 보며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민주주의가 현실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매주 늘어나는 푸드트럭과 하루가 다르게 증식하는 깃발을 보며, 수많은 의제와 삶을 갖고 무대에 오르는 시민 발언자의 말을 들으며, 우리 서울인권영화제의 사명은 무엇일지 고민했습니다. 영화를 ‘만드는’ 인권 단체가 아닌, 영화를 ‘상영하는’ 인권 단체로서 ‘서울인권영화제’가 이 광장에 서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평등한 접근권’과 ‘표현의 자유’, ‘대안영상발굴’을 기조로 광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무래도 당신의 광장과 공명하기 위해서가 아닐지 싶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가 지향하는 ‘영화제’의 모습은 ‘광장’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광장은 마치 단 하나의 거대한 무대처럼 보이지만,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수한 삶과 관계로 이루어진 여러 광장이 상호 작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그 ‘광장’과 가깝게 연루되어야 합니다. 우주의 수많은 별이 서로의 중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중력과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것이지요. 서울인권영화제가 상영하는 인권 영화는 약자와 소수자의 이야기를 당사자의 시각에서, 또 당사자와 관계 맺은 긴밀한 공동체의 시각에서, 또는 투쟁의 현장에서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보이는 이야기를 합니다.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러한 이야기를 광장으로 가지고 와 영화가 일으킨 파장을 더 멀리, 넓게 퍼지도록 공간을 만들고 사람을 초대합니다.
분명 다음 영화제에 이번 ‘시민촛불대행진’을 주제로 한 인권영화가 들어오지 않을까 상상했습니다. 거기에는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의 이야기와, 그간 광장에 서 있었으나 조명되지 않았던 여성의 이야기와, 혐오와 낙인에 맞서는 성소수자와 장애인의 이야기와, 사회의 관심 밖에서 농업과 연대를 이야기한 농민의 이야기와, 주변으로 밀려난 이주민과 난민, 이민 2세, 그리고 맨 앞에서 길을 연 노동자의 이야기가 있겠지요.
진정한 평등과 해방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서울인권영화제는 역행의 시대에 맞서, 불온하게, 누구도 남겨놓지 않고, 우리의 거리를 기억하며, 끝까지 당신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투쟁!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