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려나 했더니 강추위가 기승이네요. 칼바람을 뚫고 서울 구석구석을 누비는 “차별금지법있는나라만들기 유세단”을 마주치신 적 있나요? 세 글자로 차만세! 차만세는 지난 1월 12일부터 한 달 넘게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대선보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먼저라는 이야기를 다채로운 유세로 펼쳐내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뿐만 아니라 각 지역 곳곳의 시민사회단체, 활동가, 주민들이 함께 만들어나가고 있답니다.
서울인권영화제도 차만세 기획단으로 같이 달리고 있는데요, 심지 활동가는 지원팀에서 저는 홍보팀에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 유세차를 타고 있어요. 아쉽게도 차만세는 2월 25일 유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면서 26일 토요일 집중행동 “가자! 평등의 나라로”에서 그동안의 함성을 내지를 예정입니다. 오늘은 그간 차만세와 함께한 이야기를 잠시 해보려고 해요.
이게 정녕 21세기인가 싶을 정도로 혐오의 힘을 등에 업은 대선 정국이라 다들 마음 답답하실 거예요. 그런데 사실 대통령을 바꾸는 것보다 우리의 삶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지 않나요? 차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차별을 차별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혐오에 혐오라고 단호하게 응답하지 않는 이 세상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이런 저런 핑계, 특히 ‘사회적 합의’라는 핑계를 대며 15년째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한테 사회적 합의를 맡겨놓은 것처럼 뻔뻔해보이기까지 하죠?
그래서 차만세는 유세차를 타고 서울시 20여 개의 구와 부천, 남양주, 고양 등 경기권 구석구석을 돌며 시민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이미 시민의 약 80%가 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차별금지법을 알리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지지하는 시민과 인사 나누며 평등한 세상을 향한 염원이 이토록 크다는 것을 하루하루 느낍니다. 저 역시 처음 가보는 동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마주하며 각자의 이유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열망하는 외침을 들었습니다. 비슷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다양하고 진심어린 이야기에 마음이 울리곤 했어요. 후보 옆에 찍는 도장보다 더 묵직하고 뜨거운 울림이었습니다. 정치의 권력이 해결해주지 않는, 오히려 외면하는 삶의 서사를 우리의 힘으로 모으고 말하는 장면 하나하나가 참 소중했어요. 광진구 유세에서는 종일 함께한 마을신문 조혜진 기자님이 서울인권영화제 후원활동가라는 사실을 알고 손뼉치며 반가워하기도 했고, 종로구 유세에서는 육수에 믹스커피를 타마신 지오님 때문에 깔깔 웃기도 하고, 강남서초 유세에서는 얼떨결에 우리집 강아지 뽀미랑 종일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런데요, 여기저기 쏘다니다 보니 이런 생각도 듭니다. 차별금지법이 지금 당장 제정되면 뛸듯이 기쁘겠지만, 지금 이 순간도 기쁘다고요. 차별금지법 없는 나라를 차별금지법 있는 나라로 만들어가는 이 고된 15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물하고 있는 것 같다고요. 나는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구나,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함께 저항하는 누군가가 또 있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 수없이 많구나. 사실 많지 않다고 절망스럽지가 않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정말 소중한 세계이기에 지쳐 누워있다가도 몸을 일으킬 수 있는 힘을 선물 받은 것 같아요.
그렇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진짜 중요하고 절실한 법이지만 우린 법 이야기만 하지 않았어요. 내 일상의 이야기, 친구와 가족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꿈꾸는 세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국회는, 정치는 지겹도록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살지만, 우리는 다 알지 않나요? “나중”을 만드는 사람들, 내일을 그리는 사람들은 지금 당장 여기 살아가는 우리라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진짜 세상을 진짜 살아가고 우리는 강합니다. 이길 겁니다, 조만간!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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