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펼치기] 어수선한 삶을 들고 모이는 일

소식

대부분의 회의는 비슷한 몇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것은 시작 신호인 동시에, 깊은 바다로 잠수하기 전 크게 들이마시는 최후의 심호흡이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회의 시작 전, 먼저 와 있던 동료들은 부리또를 먹고 있었다. 부리또를 먹지 않은 유일한 사람인 고운은 배가 고프지 않느냐는 물음에 “딸기를 먹을 거예요”라고 답하며 접시에 담긴 딸기를 테이블 위에 놓았다.

부리또를 다 비워갈 즈음 지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가방에서 흰 천에 감싸인 네모난 무언가를 꺼냈다. 도시락일 거라 생각했는데, 풀어보니 시집들이었다. 시집의 모서리가 닳아 보풀처럼 일어나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고운이 딸기를 먹기 시작했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효민은 자신의 차례가 오자 아무 일도 없었다며 나눌 만한 일상이 없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효민이 학교 앞 가게에서 사 와 나눠준 부리또를 떠올렸다.

[사진] 소하, 우진, 지은, 효민, 서인이 테이블에 둘러앉아있다. 소하는 노트북으로 회의록을 작성하고있다. 테이블 위에는 딸기가 올려져 있다.

우리는 각자 써오기로 한 상영작 시놉시스를 확인하며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숙제를 미처 해오지 못한 사람들에겐 더 큰 박수를 보냈다. 그냥 서로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었던 거니까.

평소보다 일찍 회의가 끝났는데, 모두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몸을 일으켜 사무실 밖으로 나오자 차가운 밤 공기가 느껴졌다. 서울인권영화제 사무실은 이사를 가지 못한 채 여전히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서인이 언덕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심각한 얼굴로 속삭였다. “저기… 지렁이에게 다섯 개의 심장이 있다는 사실을 아세요…?”

우리는 선택한 적 없는 시대와 장소에 태어나, 정해진 협소한 조건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한다. — 『망고와 수류탄』, 기시 마사히코

지금 이 순간엔 고운이 들려준 ‘빨간 술’ 이야기가 떠오른다. 10년 전 경주에서 사 온 술을 마시려고 꺼냈더니, 투명했던 술이 빨갛게 변해 있었다고 한다. 그 일화는 매주 목요일 어수선한 삶을 들고 모여 ‘서울인권영화제’라는 진한 빛깔로 익어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영화제가 열리는 날, 우리의 시간이 어떤 빛깔로 변해 있을지, 그 맛은 또 어떨지 나는 무척 궁금하다.

– 서울인권영화제 이음활동가 우진

4소식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