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가 편지: 우리가 돈이 없지, 사랑이 없냐

소식

애인이 생겼습니다. 만나기로 한건 1월 중순. 너무 추워서 손발이 꽁꽁 얼어버리는 시기였지만 옷깃 바깥으로 손을 잡고 걸을만큼 서로가 좋았습니다. 서로에 대해 깊게 아는건 아니지만 서로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걸 깨달아 버렸으니, 사랑과 연애, 해야죠. 그쵸? (웃음) 

 

저는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걸 말로, 글로 쫑알쫑알 늘어놓을 수 있고 그게 그리 어렵지 않지만 제 연인은 그렇지 않은거 같아요. 그래서 참 많이 투닥거렸고 지금도 그러곤 하지만, 함께 있으면 애인의 온 감각이 나를 향해 있구나, 아 당신은 나를 정말 좋아하는구나,를 느끼게끔 해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인간관계에서 주로 맺어오던 방식과는 참 다른 문법을 가진 사람이에요. 그래서 더 좋습니다.(!)

 

저처럼 속 이야기를 세세하게 하지 않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잘해주고, 제가 헉, 하고 놀랄만큼 속 깊은 모습을 보여주어 심적으로 많이 의지하고 있습니다. 또, 인권활동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하지만 어떤 활동을 한다고 할 때 마다 와 멋져, 레나 최고야, 라고 말해줍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이 제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하면 끄덕인 다음 그 일을 하면서 제가 밥 잘 먹고, 잠 잘자는지를 물어봐주는, 저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애인과 잘 만나지는 못합니다. 둘 다 너무 바쁘고, 돈이 많지 않기 때문이에요. 시간이 돈인 사회에서, 제 애인은 하루를 꽉 채워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고, 겨우겨우 주 1회 쉬곤 합니다. 그렇게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자신의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에게 만나자는 약속은 휴식을 내주는 일이자 시간을 쓰는 일이고, 돈까지 쓰는 일이겠지요.

 

그래서 자주 못만날 때마다 저는 불안이 올라옵니다. 정말 나를 사랑하는게 맞을까? 아무리 바빠두! 나에게 시간을 써주었음 좋겠어, 아니면 나랑 같이 쉬면 되잖아!!!! 하는 마음이 훅훅 올라오고 그래서 다 말합니다. 화도 내고 서운함도 표시하고, 그렇게 적극적으로 말할때마다 노력해보겠다는 대답에 저는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고 충분치 않아 또다시 말하고 성내버리지만 애인은 그럴때마다 더, 더 노력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럴때마다 사실 서글픕니다. 임금이 보장된 상태로 주 4일제가 도입된다면… 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역시나 노동자성이 인정되고… 안정된 상태에서 일할 수 있는 삶이 보장된다면…. 이런 생각이 들면서 세상을 바꿔버리겠다(!)는 의지로 불타곤 합니다.

 

사실, 이렇게 승화시키는 것이 제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이지만 ‘전부’ 해소되지는 않습니다. 저는 친밀한 관계인만큼 관계안에서의 역동들을 잘 살피고 세세하게 들여다보고, 열심히 싸우고 다져가며 사랑하는 사람이거든요. 우리의 삶이 이런 사회구조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좌지우지 되지만 관계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역동들을 이렇게만 끼워놓고 해석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아무튼, 그래서 만날 시간이 없다는건… 제 입장에서는 관계가 진전되기 어렵다는 것과 다름 없게 느껴지더라고요. 하지만 이렇게 문법이 다르다고 사랑을 끊어내나요? 제게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단호1)

 

그래서 최근에는 방향을 바꾸었어요. 못만나서 속상할때마다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똑같이 속상해하면서 사랑한다는 답이 돌아와요. 그러면 순간의 불안이 내려갑니다. 하지만 그래도 만나서 우리의 애정을 확인하고 사랑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단호2)

 

자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변함은 없지만, 여건과 상황을 무시하며 강요하고 싶진 않아요. 자주 못만나 아쉽다고, 충분히 서운함과 속상함을 표현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열심히, 각자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애인이 오미크론에 걸렸기 때문에 (…엉엉…) 3월에는 각자 자기를 잘 돌보며 이 시기를 잘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가정을 해보곤 합니다. 지금보다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우면 사랑하기에 더 쉬운 조건이겠으나, 여유가 있는 시기에 이렇게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만한, 정확히는 지금 내가 사랑하는 이 사람이 내 곁에 있을지는 모를일이잖아요? 그래서 더 나은 조건을 그냥 바라기보단 지금, 현재, 닿아있는 연인과 열심히, 애틋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렇게 차곡차곡 잘 쌓아가다보면 앞으로의 삶이 보다 안온할 거라 믿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누다보니 울림 구독자분들은 어떻게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쌓아가는지 들어보고 싶기도 하네요.

 

대선 전부터, 끝난 후에도 심란한 정세 속,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앓는 이들이 많아지는 시기이기에 모두들 안온하게, 각자의 삶에서 다채로운 사랑이 넘실거리길 바라며 제 편지는 여기서 마무리 할게요.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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