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편지에는 죽음에 대한 고민, 악몽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편지를 쓴 이의 진솔한 마음이지만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안녕하신가요, 저는 나름 안녕하게 지내려 노력 중입니다. 저는 은긍이에요. 울림에 글을 쓰는 게 아주 오랜만이네요. 저는 어젯밤에 무서운 꿈을 꾸었어요. 할머니가 엽총으로 사람들을 쐈습니다. 저는 물에 잠겨 경찰에 신고를 하고 있었구요. 깨어나니 온화한 할머니가 갑자기 무서운 할머니로 느껴졌습니다. 꿈은 정말 궁금하고 신기해요.
그런데 무거운 이야기는 아니구요, 저는 얼마 전까지 진지하게 삶의 의미를 찾고 있었습니다. 다르게 말하면 죽음을 깊이 생각해보았어요. 요즘 많은 실패를 겪기도 했고, 실패를 겪는 게 두려워 피하기도 했어요. 그런 저의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머리가 떨어지는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왜 살고 계신지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었어요. 몇몇 친구들에게도 물어봤는데 공유할만한 답을 준 친구는 없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왜 살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했어요. 누구의 동의도 없이 태어난 제가 버겁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냥 사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던 건지, 어떤 것이 저에게 와 닿은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고민하는 동안 쌓아왔던 이미지들과 말들과 분위기들이 그냥 사는 거지, 하는 대답을 만들어낸 것이겠지요. 어제 스스로 죽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그러니, 감히 말씀드려보자면, 어떻게든 살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다행인 기분은 정말 평안했습니다. 아무생각 없이 담배를 피울 정도로요. 부러운 사람들을 마음 놓고 부러워하고 질투할 수 있을 정도로요.
이 다행인 기분이 얼마나 갈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음 편지에서는 왜 살고 계시냐고 여쭤볼 수도 있겠지요. 또 꿈 얘기를 하고 또 마지막에는 안녕을 빌겠지요. 똑같은 서두를 던지면서 했던 말을 또 하고 듣던 말을 또 듣고싶습니다. 지겨울 정도로 안부를 묻고 싶어요. 저는 어떻게 안녕하게 지내보겠습니다. 그럼, 지겹도록 안녕히 계셔요!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은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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