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가슴 아픈 일이 있었다. 친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친구는 트랜스젠더였다. 특별한 이유는 없는 것 같았다. 유서도 없었다. 그래서 그 이유를 알고 싶었서 계속해서 생각했다. 고민한 끝에 얻은 결론은 우울증이었다. 사회에서 트랜스젠더를 바라보는 차별적인 시선. 이때문에 마음이 시름시름 병들어 갔을 것이다. 그게 전부였을 것이다.
곧, 11월 20일이 다가온다. 이 날은 트랜스젠더의 추모의 날이다. 게이, 레즈비언, 바이섹슈얼과 다르게 트랜스젠더에게만 추모의 날이 있다. 그 이유는 어렵지 않게 추론할 수 있다. 트랜스젠더가 그만큼 사회에서 생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날을 맞아 트랜스젠더 당사자인 나는 여러 생각이 든다.
“나는 무사히 생존해서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내 주위에 위험에 처한 친구가 더 있을까? 내가 그들을 구할 수있을까?”, “어떻게 트랜스젠더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을까?”
내가 <파랑 너머>를 처음 본 것은 26회 서울인권영화제 해외작 선정 과정에서였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바로 감이 왔다. “이 영화는 트랜스젠더를 조명한 영화 중에서도 귀한 작품이다.”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한 대부분의 작품은 트랜스젠더가 받는 차별에 집중한다. 차별을 고발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차별을 받는 상황에만 집중하다 보면 보고 있는 트랜스젠더는 답답하다. 트랜스젠더에겐 이미 일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랑 너머>는 달랐다. 트랜스젠더가 받는 차별에 집중하면서 피해자로서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한 트랜스젠더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그는 ‘차별 받는 트랜스젠더’에서 더 나아가 투쟁의지를 가진 운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나는 큰 힘을 느꼈다. 이렇게 트랜스젠더에게 힘이 되어주는 영화는 정말 귀하다.
영화의 주인공, 그의 이름은 닐이다. FtM으로, 카메라는 오랜 시간 동안 트랜지션하는 닐을 관찰한다. 그런데 영화의 시간 순서가 좀 특이하다. 보통의 영화였다면 시간의 흐름에따라 트랜지션하면서 변화하는 닐의 모습에 초점을 맞췄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트랜지션에 의한 변화에 주목할 테니까. 그런데 이 영화는 시간 순서가 제멋대로이다. 트랜지션으로 인해 변화하는 모습이 아니라 닐이라는 사람의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영화는 닐이 가부장제에, 권력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울인권영화제와 TDoR집회 기획단은 공동으로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파랑 너머>를 상영하기로 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슬픔에만 머무르는 추모가 아니라, 서로에게 용기가 되는 추모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디 많은 트랜스젠더가 와서 많은 용기를 얻어갔으면 좋겠다. 물론 트랜스젠더만 오라는 것은 아니다. 시스젠더들도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며 트랜스젠더의 소중한 동료가 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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