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눠요] <50cm> 트랙 밖으로 달리기

소식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 중, 지난 6월 저희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마주쳤던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또 저희 퀴퍼 부스에서 ‘다시 보고 싶은 퀴어 영화 앙케이트’에 참여하신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레터에선 앙케이트에서 많은 스티커를 받은 영화, <50cm>에 대해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영화 스틸컷. 주인공인 은정과 가영이 서있다. 가영이 은정의 어깨 위에 손을 대고있다. 은정은 가영의 손을 잡고 있다.
영화 스틸컷. 주인공인 은정과 가영이 서있다. 가영이 은정의 어깨 위에 손을 대고있다. 은정은 가영의 손을 잡고 있다.

<50cm>는 서인영 활동가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던 영화인데요. 당시 이 영화를 가장 사랑해 주었던 활동가, 안나의 프로그램 노트로 <50cm>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50cm>의 가영과 은정은 동성연인이며, 장애/비장애인 연인이다. 가영은 마라톤을 좋아하고, 더운 날씨에 땀을 빼며 연습하고,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나아가다가 때로는 실수도, 다툼도 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여성이며, 은정과 한껏 싸우고 샤워를 하다가도 먼저 손을 뻗어 키스하고, 섹스하는 레즈비언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 아래 가영과 은정은 동등한 동료선수가 되거나 연인이 될 수 없다.”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는 가영과 은정은 50cm의 빨간색 줄로 서로를 연결해 달립니다. 50cm. 가깝지만 서로의 공간이 있을만한 거리이고, 떨어져 있어도 손 뻗으면 닿을 수 있을 정도의 거리입니다. 둘은 그 50cm만큼의 줄로 연결되어 있기에 같이 달리고 같이 넘어집니다.

영화 내내 가영과 은정 사이에는 불편한 긴장이 감돕니다. 은정은 비장애인이고 가영은 시각장애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더욱이 둘 다 여성이기에, 둘의 관계는 쉽게 은정이 가영을 도와주는 관계로, 은정은 그저 ‘좋은 일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둘은 연인으로도, 심지어 동등한 친구로도 인식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에게 연인으로 인식되기. 이는 생각보다 많은 ‘정상성’을 필요로 합니다. 이성 관계일 때는 손만 잡아도, 번화가에서 같이 걷기만 해도 연인으로 패싱되지만 동성일 때는 아, 꽤 쉽지 않아집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연애는 제일의 정상성 겨루기 장처럼 느껴집니다. 외모는, 직업은, 취향은, 건강은, 사는 곳은… 정상성에서 탈락되는 경우 연애에 대한 자격이 없는 이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특히 장애는 연애라는 단어와 쉬이 이어지지 않거나, 연결되더라도 ‘특별한’ 사랑으로 취급되곤 합니다.

뭐라 하든, 둘은 사랑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달리는 곳은 이 세상 안일 수밖에 없기에 그 달리기엔 무게가 더해집니다. 가영과 은정은 50cm의 줄로 서로를 묶고 달리며 토로합니다. 어떤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는지, 지치게 하는지. 달릴 때는 왜인지 더 솔직해 지는 것 같습니다. 신나게 달릴 땐 꺄르르 웃게 만들기도 하고 답답할 땐 울음이 터져 나오게 만들기도 합니다. 땀이 뻘뻘 나면 껍데기를 한겹 벗겨낸 듯 합니다. 둘은 온몸이 젖을 만큼 달리고 함께 씻으러 집으로 돌아갑니다.

마라톤 대회날이 왔고 둘은 연습처럼 함께 달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걸음은 트랙 밖으로 벗어납니다. 그들이 뛰는 장면에 선우정아의 노래 ‘도망가자’가 깔립니다. 영화 엔딩 즈음 깔리는 이 노래를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의 달리기는 ‘도망’일까? 도망은 어디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며, 대개 목적지는 없는데. 다시 돌아오지 않는 이상 도망의 뒤는 정처없이 떠도는 것인데. 이들이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뛰는 행위는 ‘도망’이라기 보다는 확장, 개척의 동작이 아닐까. 설령 이들이 이 트랙 위가 너무 지치고 힘들어 함께 도망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손을 잡고 달리는 길은 또 다른 길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트랙 밖으로 달려나간 이들의 다음은 어떨까요. 이 뜀박질이 멈춘 뒤엔 숨이 찬 상태로, 말간 얼굴로 서로를 보며 웃지 않을까 합니다. 한번 정해진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뛰어가 본 사람은 그 전보다 더 마음껏,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들이 그러기를 바라고 싶습니다.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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