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드넓은 잔디밭이 푸르게 우리를 반기는 곳입니다. 서울시청 바로 앞, 수많은 버스와 차, 지하철, 각양각색의 행인들이 마주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리는 광장이고요. 저에게만이 아닐 것입니다. 2015년 제16회 퀴어문화축제 개막식 “무지개 발광, 서울광장의 빗장을 풀어라!”를 시작으로 서울광장은 퀴어들이 1년에 한 번 한껏 뽐내고 모이는 ‘큰집’이 되었습니다. 비로소 ‘광장’다운 광장이 되었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지난 5월 3일, 서울시는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였습니다. 그래서 7월 1일 서울광장에서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라는 정체 모를 행사가 열립니다. 주최는 CTS, 2020년 차별금지법 대담을 하며 성소수자 혐오를 전파했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의 법정제재를 받은 전력이 있는 방송사입니다. 지난 4월 한국교회언론회는 “서울광장에서 음란한 동성애 축제는 불허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이제는 서울시가 과감하게 청소년, 청년들의 회복을 위한 콘서트에 자리를 할애해야 한다”는 논평을 발표하기도 했고요.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의 내용은 그 어디에도 제대로 나와있지 않지만, 어떻게 기획되었는지 짐작이 갑니다.
대구에서는 이번주 토요일, 6월 17일에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 “우리는 이미”가 열립니다. 그런데 지난 7일 대구 동성로상인회와 대구 기독교총연합회 등은 대구지방법원에 대구퀴어문화축제 집회 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습니다. 상인회는 가처분 신청 이유를 축제가 열리는 중앙로 대중교통전용지구와 동성로 상점가 등에서 무허가 도로 점용과 불법 상행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사실 퀴어들의 축제를 인정할 수 없다는 혐오가 그 아래 깔려있습니다. 무려 대구시장인 홍준표는 이튿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성소수자 권익도 중요하지만 성다수자 권익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시민에게 혐오감을 주는 그런 퀴어 축제는 안 했으면 한다”며 “대구 동성로 퀴어 축제 행사를 반대하는 대구 기독교 총연합회의 집회금지 가처분 신청을 지지한다”고 버젓이 썼습니다. 무지갯빛 행진을 혐오와 차별로써 막으려는 속내가 민망할 정도로 드러납니다.
한편 다시 지난 5월, 정부와 여당은 야간집회 금지를 추진하겠다며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와 시위의 자유에 선전포고를 합니다. 그리고 지난 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열린 비정규직이제그만 공동투쟁 야간문화제 참가자들을 경찰이 강제 해산시켰습니다. 문화제 참가자는 200여 명, 강제 해산에 동원된 경찰은 12개 부대로 총 700명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에 정부는 폭력으로 응답하고 있습니다. 5월 31일 새벽, 경찰은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의 고공농성장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곤봉으로 김준영 금속노조연맹 사무처장을 폭행하기도 했습니다. 같은 날 세종대로에서 열린 민주노총 집회에는 캡사이신 최루액 분사기를 맨 경찰기동대가 등장했습니다.
심상치 않습니다. 광장에는 차별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거리의 투쟁에는 곤봉과 최루액을 동반한 폭력이 급습합니다. 그 근거는 너무나도 명료하여 잠시 말을 잃게 합니다. 혐오와 배제, 낙인과 차별은 광장과 거리에 있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계속하여 구분합니다. 새롭게 단장한 광화문광장은 예쁜 분수대와 조경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각종 콘서트와 전시 등 문화행사를 진행합니다. 그러나 집회는 할 수 없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차별과 혐오를 말하고 권리를 외치는 것은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렇듯 누군가를 모이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국 부당한 권력과 부정의를 강화합니다. 차별과 혐오가, 권리의 부재와 부정의가 더 오래 지속되게끔 합니다.
광장으로, 거리로 나와야만 하는 이들을 생각합니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권리를 말하며 끊임없이 만나고 모여야 하는 우리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광장과 거리는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이자 최선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축제든 집회든, 서울광장이든 세종대로이든 간에 우리는 물러설 수 없습니다. 물러나지 않을 것입니다. 물러나야 할 것은 정당한 권리를 빼앗고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이겠지요.
그리고 사실, 그들이 막는다고 해서 우리가 막히지는 않을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장소를 막는다고 해서 나아가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곳’을 막더라도 지금, 여기 우리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변화는 어디에서나 일어납니다. 변화를 멈추려는 현장에서도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불온해지고 파동을 일으킬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월간 서인영 6월호에서는 대구퀴어문화축제의 이야기를 담은 <퀴어 053>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광장을 열고 거리를 행진하는 힘을 같이 느끼며, 곧 있을 제15회 대구퀴어문화축제에 연대하고자 합니다. 짧지만 강력하고 용기가 솟아나는 이 영화를 널리 나눠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토요일 대구에서, 7월 1일 을지로 일대에서, 그리고 더 많은 광장과 거리에서 만납시다!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