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붉게 물들어 있다. 계곡에서는 흙탕물이 흘러나온다. 흙으로 만든 댐이 무너져 내린 탓이다.
영화의 배경은 브라질의 미나스 제라이스주다. 광물자원이 풍부한 곳이라 광산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많은 광산 폐기물들이 나왔다. 그리고 이를 처리하기 위해 폐기물들을 쌓아놓고 댐을 지었다. 그러던 중 2019년 1월 25일, 브루 마지뉴에서 댐이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흘러나온 토사물들은 인근 지역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이 대규모 재해로 수백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가장 책임이 큰 기업과 정부의 대응은 미지근하기만 했다 다른 댐 인근 마을 주민들은 불안에 떨며 살아야 했다. 언제 댐이 무너질까 걱정했다. 그러나 기업과 정부에서 내놓은 대책은 사고 발생 시 피난대책뿐이었다. 댐 붕괴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은 전무했다. 위험지역에 놓인 마을 주민은 어떠한 보상도 없이 강제로 이주당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의 이익을 좇아 생겨난 일이었다. 주민들의 안전은 없었다.
지금의 기후위기도 이와 같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오로지 이윤 창출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더 편안한 삶을 누릴 것이라는 장밋빛 미래는 일부에게만 해당하는 감언이설일 뿐이다. 이 미래를 위해 착취한 자원은 자본이 독식하고, 그럼으로써 자본은 자기 몸집을 다시 부풀린다. 취약한 존재는 더욱 취약해진다. 지금의 위기에 비해 터무니 없이 너그러운 기후 대책은 경제 성장을 이유로 모두의 미래를 갈취하고 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말할 때 ‘기후정의’를 함께 말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재난과 불평등이 얽히고 설켜 파괴되는 사회를 평등하고 안전하게 전환해야 모두의 미래를 함께 말할 수 있다.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부정의한 체제를 정의롭게 바꿔내자는 것이다. 올해 927 기후정의행진의 6대 요구안에서 외치는 것들이 바로 이런 정의로운 전환을 향한 요구들이다. 기후정의에 입각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전환 계획을 수립하고, 공공재생에너지 확대로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실행하고, 오로지 성장만을 위한 반도체/AI산업 육성과 생태파괴 개발 사업을 중단하고, 모든 생명의 존엄과 기본권을 보장하며 사회공공성을 강화하고, 농업·농민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며 먹거리기본권을 수립하고, 전쟁과 학살을 종식하며 방위산업 육성과 무기 수출을 중단하는 것. 이 세상 모든 면면에서 평등을 향해, 정의를 향해 한걸음을 내딛자는 것이 기후정의이다.
영화 <헤제이투>의 참사는 그래서 자연재해가 아니다.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인간이 불러온 인재이며 기후재난이다. 영화 속 민중들이 정부와 기업에게 요구했듯, 기후위기를 가속화하며 이윤을 창출한 이들에게 책임을 물을 때이다. 다시 좋아질 순 없더라도, 더 악화되지 않도록, 우리는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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