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학생인권조례는 없으면 안 됩니다

소식

*[함께나눠요]에서는 서울인권영화제의 지난 상영작을 함께 나눕니다. 이번 호에서는 지난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우리의 거리를 마주하라 중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섹션의 상영작 <유어 턴>과 25회 서울인권영화제: 역행의 시대를 역행하라 중 ‘존재의 방식’ 섹션의 상영작 <명: 우린 같지만 달라>를 나눕니다. 두 작품은 상영지원이 가능한 작품입니다. 영화를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서울인권영화제로 연락 주세요. 02-313-2407, hrffseoul@gmail.com

4월 24일, 충남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었다. 참 끈질기다. 지난 2월,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이 결국 충남도의회를 통과했을 때 교육감은 거부권을 행사했다. 조례안은 재표결에 부쳐졌고 아슬아슬하게 부결되었다. 다행이다, 싶었지만 다행이라고 말하는 마음이 못내 아팠다. 그리고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아 폐지 재의안이 올라왔다. 찬성 34, 반대 14로 가결되었다. 충남학생인권조례는 폐지되었다. 그리고 이틀 뒤, 서울시의회는 ‘서울특별시 인권·권익향상특별위원회(특위)’를 열어 ‘서울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그리고 찬성 60명, 반대 0명으로 폐지안이 가결되었다.

모욕적이다.

지난 며칠 간 그런 마음으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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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컷2. 노.똘.복 세 사람과 다른 사람 2명이 컴퓨터로 온라인 대화를 나누고 있는 그림.

“2020년 서울의 한 마을에 청소년 퀴어 노랭, 똘추, 복순이 살았습니다. ‘노똘복’은 자신과 같은 퀴어 청소년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영화 〈명: 우린 같지만 달라〉는 노똘복의 친구 찾기 여정을 그린다. ‘친구’로 뭉뚱그려지지 않는, 퀴어 청소년 동료시민을 찾고 만나는 여정이기도 하다. 길거리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고(누군가의 공격으로 찢긴 전단지를 다시 붙이기도 한다), 하나둘 연락해온 이들을 직접 만나러 가거나 줌 화면 속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이들은 커밍아웃의 경험을 공유하거나, 또는 커밍아웃이 어려운 이유를 털어놓거나, 퀴어 청소년 친구를 어디서 사귀고 만나는지 정보를 나누기도 하며 아니면 그냥 마라탕 얘기를 하기도 한다.

노똘복의 여정은 “나 여기 있어, 너 거기 있니?”의 여정이기도 하다. 혼자 남겨두지 않기 위해, 혼자 남겨지지 않기 위해, 함께 있으면 무엇을 더 해볼 수 있을까 상상하는 실험이다. 이들이 서로를 찾는 외침은 관객에게도 활력을 준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가면 다시 숨겨지고 삭제될 이들이 있음을, 우리는 안다. 차별과 혐오는 잘못된 것이고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는 학교 때문에, 오히려 그 약속이 ‘과도’하다는 어떤 이들 때문에. 그래서 학교는 전혀 안전하지 않고 절대 신뢰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에. 존재를 가리고 혼자 앓아야 할 이유들이 생긴다.

지난 3월의 끝자락, 서울인권영화제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을 맞아 작은 상영회를 가졌다. 영화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를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자리였다. 영화는 다섯 살 어린 딸을 양육하는 엄마의 인터뷰로 구성되어있다. 아들이었던 딸. 아이를 교정하려고 했던 시간, 그것이 의미 없는 상처만 남길 뿐임을 알게 된 시간, ‘남자아이’와 ‘여자아이’의 경계가 명확한 유치원에서 고군분투해온 시간. 영화가 끝나고 나선 서른 명 남짓한 이들이 모여앉은 자리에서 소담하지만 묵직한 말들이 오갔다. 그때 누군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질문을 했고, 노동∙정치∙사람의 활동가 한성이 이런 답을 했다.

“그건, 한마디로 말할 수 있어요. 학생인권조례는 없으면 안 됩니다.”

학교에서 청소년 성소수자가 차별의 경험을 했을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학생인권조례’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떤 부당함을 말하기 위해 교무실로 찾아갈 때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이 학생인권조례에서 말하는 ‘차별받지 않을 권리’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학생인권조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학생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진다.”

이는 한국의 법령에서 ‘성적지향, 성별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명시한 최초의 조항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마지막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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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학생조례인권에서의 학생 인권이 ‘과도’하다고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과도’한 인권은 없다. 누군가를 지키려면, 내가 나를 지키려면,  모든 이를 지켜야 한다. 어느 하나 양보할 수 없다.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지역, 출신국가, 출신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모두 학교 안팎에서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모두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가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학교에서 학생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 체벌 등으로 인해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 표현의 자유와 참여의 권리 등을 보호하는 공적인 장치는 학생인권조례가 유일하다. 그렇기에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모욕이다. 누군가를 버리고 가도 된다는, 어린이/청소년은 조금 맞으면서 커도 된다는, 그래도 차별이 아니라는 모욕이다. 내가 ‘나’이기 때문에 좀 괴로워도 된다는, 정말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무책임한 모욕이다.

유어턴 스틸컷2. 시위대와 경찰이 대치 중이다.

지난 2020년 24회 서울인권영화제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섹션에서는 〈유어 턴〉이라는 영화를 상영했다. 2013년 무상교통실현운동을 시작으로 공립학교 통폐합 반대 운동을 거쳐, 결국 반차별과 반빈곤, 존엄과 연대, 사랑과 우정을 외친 이들의 이야기이다. 이 영화에는 브라질 청소년들이 학교를 점거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노래하고 행진하는 장면들이 가득하다. 분명 버스 요금 인상 반대로 시작했는데, 이들은 성차별과 빈곤 차별에 저항하고 평등을 외친다. 어느덧 학교의 ‘어른’들을 내쫓고 스스로의 학교 공동체를 일군다. 차별과 폭력, 불신과 억압이 있던 자리를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연대와 자유로 채운다. 학교의 안과 밖을 전유하며 거리를 행진한다. 결국 모두가 평등하고 존엄한,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자유로울 것을 외친다.

학교 안팎에서, 단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모든 청소년이 존엄하고 평등해야 함을 선언해야 한다.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고, 폭력을 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가 ‘나’여도 된다는 당연한 말이 쉽게 날아가지 않기 위해, 우리에겐 학생인권조례가, 그리고 더 나아가 학생인권법이 필요하다. ‘어리고’ ‘미성숙한’ 청소년을 ‘보호’하는 허울뿐인 말들보다, 더 단단한 약속이 필요하다. 단언컨대 학생인권조례는 절대 없으면 안 된다. 조례를 지키고 학생인권법을 하루 빨리 제정하기 위해, 함께 투쟁!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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