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이스라엘이 다시금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대규모 폭격을 진행했다. 가자 지구 남부에 하마스의 본거지가 있다는 핑계였다. 어린이 수 천 명이 살해당하고 의료진과 기자, 죄 없는 민간인이 사망했다. 10월부터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희생자 수는 2만 명에 육박한다. 병원은 무너졌고 전기는 끊겼다. 생존자 인터뷰에 나왔던 앳된 얼굴이 며칠이 지나 고인의 얼굴로 보도된다. 우리와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대중공업의 포클레인이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무너뜨리고 파파존스, 맥도날드, 에어비앤비 등의 회사가 이스라엘 군을 지원한다. 전쟁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은밀하게 국제 자본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스라엘의 반인륜 범죄는 팔레스타인뿐만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를 인종학살의 터로 오염시킨다.
영화 <잇다, 팔레스타인>을 보자. 팔레스타인 여성 열두 명이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중간중간 자수를 놓는 손이 등장한다. 도트 모양으로 수 놓인 아기자기한 그림과 기하학적인 문양은 팔레스타인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여인이 추억을 떠올릴 때면 오래전 팔레스타인의 거리와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이 스쳐 지나가고 이들의 증언에 따라 각자 거쳐온 나라가 표시된다. 화면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으로, 다시 예루살렘으로, 그러다 요르단과 프레이디스, 더 나아가 캐나다와 영국, 미국까지 빠르게 이동하며 등장인물의 종적을 훑는다.
이들은 추억을 빼앗기고 가족과 떨어지고 일상을 통제 당하며 고향에서 쫓겨났지만 결코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았다. 레일라는 팔레스타인 독립투쟁에 참여했고 말락은 팔레스타인 자수를 복구하기 위한 “12개의 창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메리는 인권 변호사가 되었으며 아말은 팔레스타인의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시마는 팔레스타인 문화를 향유하는 다음 세대를 양육하고 있다. 삶의 위치도, 과정도, 방식도 다르지만 자신의 경험과 시간을 씨실과 날실 삼아 생에 회복과 평화라는 그림을 그려나간다.
열두 명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각기 다른 열두 개의 이야기로 누구의 이야기도 함부로 뭉뚱그려 말할 수가 없다. 이스라엘의 침략과 인종차별 정책이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 한 사건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삶을 침략하는 연속적인 폭력 사건인 까닭이다. 그런 이들이 공통적으로 입에 올리는 물건이 팔레스타인 전통 자수가 수놓인 의복 ‘토부’다. 토부 안에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삶이 담겨 있다. 자수로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한다.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전수하고 어머니가 딸에게 가르친다. 딸은 직접 치마에 낙타와 지팡이를 든 유목민을 새기며 땅의 역사를 기억한다. 손에 손을 거쳐 민족의 전통과 개인의 삶이 천 위에 촘촘히 수 놓인다. 팔레스타인이 머나먼 고국의 별이 되어 버린 뒤에도 여성은 토부를 간직하고 물려받으며 되돌아갈 날을 향해 걷는다.
이스라엘은 1948년 팔레스타인을 침공해 인종청소를 자행했고 1967년부터 팔레스타인 전역을 군사 지배했다. 현재는 하마스를 핑계로 75년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며 팔레스타인을 국제적으로 고립시려고 한다. 영화는 살아남은 이들의 생을 읊어 실을 엮는다. 팔레스타인의 존재를 피력하고 일상을 지켜나갈수록 생존은 투쟁이 되고 삶은 혁명이 된다. 서로 다른 실이 엮이고 엮여 단단한 미래를 만든다. 토부는 정치적 맥락이자 저항의 상징이며, 고향의 삶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동료와 연결되는 매개이다.
지구에 있는 누구도 전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저항하고 연대하자.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토부의 한 자락에 우리의 시간을 함께 꿰어내자. 영화에 등장한 사람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하는 이 사태에 분노하고 토부를 입고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야 했던 얼굴을 기억하자. 팔레스타인에게 자유와 평화를. 전쟁 없는 평온한 삶을.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댓글
타인을 비방하거나 혐오가 담긴 글은 예고 없이 삭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