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나눠요] 다양한 삶으로 트랜스(trans)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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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함께 나눠요

사진1.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스틸컷. 인터뷰 중인 ‘가비’. 회색 배경천 앞 의자에 앉아있다.
사진1.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스틸컷. 인터뷰 중인 ‘가비’. 회색 배경천 앞 의자에 앉아있다.

쌍둥이 자녀를 둔 어머니 ‘가비’가 나와 인터뷰를 한다. 가비의 목소리로 전해지는 이야기는 잔잔하게 다가와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가비는 아이를 낳았다. 의사는 이 아이들이 쌍둥이 “형제”라고 말했다. 한 아이는 칼과 자동차를 좋아했고 한 아이는 칼과 자동차에 관심이 없었다. 대신 인형을 갖고 놀며 치마를 입고 싶어 했다.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처음에는 소아과 상담을 통해 아이를 교정하려고 했다. 아이에게서 “여성성”을 지우고 “남성성”을 주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아이는 4살이 되던 해 자기 입으로 선언한다. “난 여자고 루아나예요.” 이게 무얼 뜻하는지 몰랐던 가비는 어느 날 8살 트랜스젠더 아동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비로소 루아나를 이해하게 된다. 새로운 정의와 만남, 루아나를 정의할 수 있는 개념과 접촉은 가비에게 어떠한 해방감과 사명감을 안겨주었다. 그동안 루아나에게 필요했던 것이 교정이 아니라 존중이었다는 걸 깨닫고 자신의 딸이 스스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제 루아나는 집에서 마음 편히 치마를 입는다. 인형을 가지고 논다. 루아나의 쌍둥이 오빠는 가비보다 먼저 루아나의 정체성을 알고 “너는 예뻐.”라고 말해주었다. 집안에서 루아나는 자신이 원하는 “공주님”으로 있을 수 있었다.

문제는 사회다. 성별 이분법이 명확한 사회는 어린시절부터 성(性)이 두 가지밖에 없다고 전제하고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나누어 생각한다. 루아나는  여전히 서류 상에서는 남자아이였고 유치원 선생님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를 나눠 줄을 세웠다. 루아나가 여자아이들 쪽에 있으려고 하면 이를 저지했다. 이듬해 가비가 유치원과 협의한 후 루아나의 반은 여자아이와 남자아이가 나뉘지 않도록 조치를 취했지만 그 과정에서 루아나가 다른 아이를 ‘전염’시키지 않을 거라며 “무해함”을 피력해야 했다. 트랜스젠더가 도대체 무엇을 ‘전염’시킨단 말인가? 또한 그렇다한들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루아나가 반에 전염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 이름은 “성평등”, 또는 “젠더 평등”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의문을 던지기에 이 사회는 이분법과 편견으로 너무나 공고했다. 

사진2.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스틸컷2. 루아나가 그린 ‘공주’의 모습.
사진2.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스틸컷2. 루아나가 그린 ‘공주’의 모습.

그럼에도 영화는 희망이 깃든 파문을 일으킨다. 루아나가 법적 성별정정에 성공해 최초의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된다는 점도 고무적이지만, 아이와 만나는 주변 커뮤니티가 점차 변화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루아나가 자신의 성별을 트랜스(trans) 하여 성별정정을 한 것처럼 주변인들도 이분법적인 자신의 삶을 트랜스 하여 더 넓은 세상과 맞닿는다. 당장 가비만 해도 퀴어 앨라이로서 아이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가 되었지 않나. 처음에는 루아나를 받아들이지 못한 이모들도 점차 조카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남녀로 분리되지 않아도 줄을 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루아나와 친구가 된 아이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여성과 남성이, 그리고 더 다양한 젠더가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나일 때, 그리고 내가 나를 존중하는 사회에 속할 때 우리는 보다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영화는 가비의 인터뷰를 통해 루아나가 어떻게 자신을 인식하고 긍정하는지, 또 그 과정에서 이해와 포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면서 이분법에서 벗어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앞으로 루아나는 자기 삶을 일구며 또다른 취향과 스타일이 생길 것이고 여러 경험과 만남을 통해 더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할 것이다.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는 서울인권영화제와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이 공동 주최하는 트랜스젠더 가시화의 날(3.31) 기념 상영회에서 볼 수 있다. 상영회는 3월 30일 오후 4시 전태일 기념관 2층 다목적공연장에서 진행된다. 47분의 영화 상영 뒤엔 관련 활동가와 당사자 활동가, 그리고 관객들이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우리의 경험을 복기하고 서로를 보듬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언제나 우리의 만남을 응원하며 글을 맺는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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