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My First Fun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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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즈비언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스스로 관을 짜고 조문객을 초대하는 ‘퀴어한’ 장례식을 말이다.

퀴어의 생애는 조용하면서도 격렬하다. 사랑하는 이들과 관계 맺으며 ‘나’를 정체화하고 나로서 삶을 살아간다. 그 삶은 가부장제와 이성애중심주의, 성별이분법에서 멀찍이 떨어져있다. 그리고 그 끝, 삶의 종착지에 다다랐을 때는 나의 죽음 앞에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애도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존엄한 죽음과 온전한 애도의 권리. 이건 분명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당연한 권리일 것이다.

레즈비언의, 그리고 ‘정상’의 주변부로 밀려났거나 ‘정상’의 경계를 거부하는 모두의 장례식을 상상해 본다. 지금까지 경험해온 장례식은 고인의 삶을 이성애 규범으로, 가부장적 사고로 납작하게 만들어왔다. 장례의 공간에서 ‘여자’와 ‘남자’의 자리는 명확히 다르다. “법적 제도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옆에 있을 지위와 권한”을 가진 남성이 상주가 된다. 내 삶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의 애도를 온전히 받을 수 없고, 이들은 나의 죽음을 온전히 슬퍼할 수 없다.

퀴어의 고유한 삶을 탈락시키고 애도의 권리마저 앗아가는 사회에서 <My First Funeral>이 기획하는 레즈비언 장례식은 퀴어/여성으로서 애도의 권리를 쟁취하는 퀴어페미니즘적 실험이다. 영화에서 ‘은혜’가 준비하는 레즈비언 장례식은 내가 나의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삶이 기억되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고 친구와 동료, 가족이 온전하고 안전하고 애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하는 나의 첫 번째 장례식. 마땅히 모든 이의 첫번째 장례식이 존엄할 수 있기를, 그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애도의 권리를 가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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