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50cm

프로그램 노트

남들 눈에 우리는 친구 사이다. 나는 친절한 사람, 너는 불쌍한 사람. 사람들은 왜 우리 사이를 자꾸만 마음대로 정의할까.

<50cm>의 가영과 은정은 동성연인이며, 장애/비장애인 연인이다. 가영은 마라톤을 좋아하고, 더운 날씨에 땀을 빼며 연습하고,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나아가다가 때로는 실수도, 다툼도 하는 입체적인 인물이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는 장애여성이며, 은정과 한껏 싸우고 샤워를 하다가도 먼저 손을 뻗어 키스하고, 섹스하는 레즈비언이다. 하지만 남들의 시선 아래 가영과 은정은 동등한 동료선수가 되거나 연인이 될 수 없다.

복합적인 소수자 정체성을 가진 이에게 향하는 혐오와 차별은 거대하고 시끄럽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나 부드럽고 조용하다. 아주 자연스럽게 어떤 관계들을 각색하거나, 삭제한다. 서로의 생을 함께하고, 때로는 투닥거리는 연인은 동성이라는 이유로, 또는 동성으로 보인다는 이유로 너무 당연하게 ‘친구’ 사이가 된다. 장애여성의 비장애인 애인에게 사람들은 ‘착한 사람’이라며 한편으로는 측은해한다. 우리의 사랑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것, 있는 존재를 부정하고 삭제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막강한 혐오가 아닐까. 

하지만 가영과 은정이 있고, ‘너’와 ‘나’는 어디에서나 존재하듯 이들의 존재도, 이들의 성적 권리와 욕망도 항상 존재하고 있다. 혐오에 맞서기 위해서는 법제도적인 변화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존재들이 혐오를 넘어 숨을 쉬게 하는 것은 이들의 고유한 관계이다. 

가영과 은정은 트랙을 벗어나기로 한다. 타인이 정의하는 너와 내가 아닌, 우리가 정하는 우리의 고유한 길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 너와 나, 우리는 지금 여기 당신의 곁에 있다. 

 

– 서울인권영화제 자원활동가 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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