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노트: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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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난민은 분쟁과 폭력, 자연재해 등의 이유로 고향을 떠난다. 수많은 이들이 떠나오는 과정에서 목숨을 잃고, 헤아릴 수조차 없이 많은 희생자들은 번호로 호명되는 존재가 된다. 정체를 숨길 수 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난민은 이름조차, 국적조차 찾기 힘든 존재가 된다. 기나긴 물음 끝에서야 이들의 존재는 오롯이 기억될 수 있게 된다.

2015년, 한국으로부터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지중해에서 발생한 난민선 침몰. 우리는 그 소식을 짧디 짧은 뉴스로 흘려 보내고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난민을 끊임 없이 타자화하고 사회 바깥으로 배제하는 세계에서 이들의 죽음은 단순히 숫자로, 하나의 사건으로만 스쳐지나가곤 한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참사와, 그 이전과 이후에 있었던 수많은 죽음을함께 겪은 우리는 알고 있다. 2015년 지중해의 난민선 침몰은 800명이 죽은 1개의 사건이 아니라 1명이 죽은 800개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영화에선 희생자의 삶을 기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고군분투하는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우리가 왜 참사를 기록해야 하냐는 물음에 덤덤하게 답한다. “정의와 존중”을 위해서, 또는 “망각은 범죄”이기 때문에. 한편으론 확실하게 답을 못내리기도 한다.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영화의 대사처럼 그것이 산 사람을 존중하는 방법이기도 하고 죽음의 재발을 막기 위함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그들은 확언할 수 없지만 확신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알고 있다. 죽음 이전에 삶이 있었고 그 삶은 누군가가 이끌어 가던 하나의 세계였다는 것. 그 세계와, 그 주변에서 영향을 주고 받던 세계들을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이 거리에 존재하고 마주했던 이들을 기억한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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