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가 죽었다. 미군 병사 펨버튼은 클럽에서 만난 간다가 트랜스 여성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성매수 과정에서 그녀를 죽였다. “‘그것’이 고추를가지고 있는 게 화가 나서 죽였다”는 그의 해명을 누군가는 ‘정당한 살인이다’는 말로 옹호했다. 법원은 그의 해명을 수용했고, 그는 처벌받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간다의 죽음은 결코 단순하게 독해할 수 없다. 혐오와 폭력은 그 대상과 형태를 바꾸며 유구하게 반복되어왔다. 그녀의 죽음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은 철저히 트랜스 혐오에 기반했고, 간다는 자신의 정체성이 밝혀져 폭력과 혐오에 노출될까 봐 자신을 숨겨야만 했으며, “울롱가포에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는 단 한 번도 처벌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식민지 청산 이후에도 온갖 제도를 통해 필리핀에 대한 구조적 영향력을 행사해왔으나 게이 아들을 둔 간다의 언니는 자기 아들에게도 혐오범죄가 일어날까 봐 공포에 떨어야 했다.
간다의 어머니는 성인이 된 간다에게 간다라는 이름을 주었다. ‘예쁜’이라는 뜻의 이름. 누군가에겐 라우데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는 간다라는 이름으로 남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던 사람. 그런 간다가 죽었다. 누군가는 울분을 토했고 남겨진 이들은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자기 앞의 위험과 맞닥뜨려야 했으나 우리를 둘러싼 세계는 애써 그 폭력을 수호했다.
그래서 간다의 가족과 친구들은 거리로 나왔다. 거리엔 간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성과 정치와 계급과 특정한 언어로는 환원되지 않는 복합적인 폭력으로 가득 찬 세계는 간다를 죽음으로 내몰았으나 그 세계의 폭력성을 밝히고자 투쟁하는 이들 역시 이 세계에 존재했다. 누군가는 남겨지고 누군가는 떠나가고 누군가는 배제되는 세계의 논리에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느끼는 이들. 폭력적인 구조에 얽혀있는 혐오를 드러내고자 거리에 나와 광장을 만들어내는 이들이 이 거리에 있다.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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