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법조계, 연극계, 방송계, 교육계, 언론계, 종교계, 스포츠계, 음악계, 정치계, 의료계, 학술계, 시민사회단체계. 다 나열하기도 힘들다. 어쩌면 이런 나열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작금을 ‘미투 이후’라고 말한다. 묻고 싶다. 우리에게 ‘이후’가 있었는지.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여지는 위치에 있는 ‘당신’과 끊임없이 증거를 요구받는 우리가 있다. ‘미투’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늘 말해왔다. 당신이 여전히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신이 옳거나, 우리가 침묵해서가 아니라 권력을 쥔 당신이 우리의 이야기를 없는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영화 속 백 교수의 복귀를 돕는 동료 교수는 해미와 연대하는 학생들에게 ‘확실하지도 않은 것에 휘둘린다’고 했다. 그의 말이 어떤 권력을 행사하든, 그는 결코 해미들의 기억을 심판할 수 없다.
당신은 “왜 이제 와서 그러냐”, “확실한 증거도 없으면서”라는 말, 혹은“그랬다간 피곤해질 거다”라는 협박으로 우리 기억을 묻어두려 했겠지만, 비슷한 모양의 기억을 가진 우리가 함께 ‘기억의 문’을 연다. 세상에 나온 기억들은 아직 말하기를 망설이고 있을 해미들에게 찾아가 문을 두드린다. 해미인 나는 해미인 너의 곁에서 나를, 서로를 일으켜 세울 것이기에, 우리가 힘겹게 내뱉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은 ‘당신’과 나 사이의 권력을 깨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힘이다.
영화 속 선아는 사라진 해미들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하는 것들을 두고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해미들에게 한 명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으로 연대한다. 이제는 사라진 해미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기를.
서울인권영화제 프로그램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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