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해설: 을지네이티브, 청계천 아틀라스

인권해설

오래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유 없는 구석이 없을 때가 있다. 노포의 메뉴 구성이나 작은 마찌꼬바 안 뒤엉킨 재료의 배열들이 그렇다. 골목이나 세계도 그렇다. 의도한 바 없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들에는 각각의 이유가 자라있다. 지난 9월 철거된 서울 청계천 인근 인계동 시계골목이나 을지로 골목들이 그렇다. 조선의 골목 지도와 청계천 을지로의 오래된 골목을 겹쳐놓으면 무척 비슷하고 그 쓰임도 닮았다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골목이어도 길목 역할을 하는 골목의 존재는 그곳이 단지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곳을 나고 든 사람들이 만든 문화와 시간을 담고 있다고 알려준다.

골목을 나고 드는 사람들. 그들을 제외하고 공간을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 서울의 지도는 다시 뉴타운 재개발 광풍이 부는 것처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용산참사의 폭력의 이면에 프로젝트 파이낸싱이라는 위험성이 큰 금융기법과 높은 기대 이윤이 있었던 것처럼 빠르게 상승하는 서울의 아파트값은 더 큰 폭력을 불러온다. 이를 방증하듯 하루하루 재개발과 퇴거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 ‘다시 2008년이 된 것 같다’던 한 철거민의 말은 사실이었다. 

11월 첫 주부터 청계천 을지로의 개발구역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 3-6구역의 철거가 시작됐다. 상인들과 <청계천-을지로 보존연대> 활동가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고서는 산업을 유지할 수 있는 상인들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보존연대 활동가들은 사라지는 골목과 가게를 아쉬워하며, 마지막 모습을 함께 보는 3-6구역 투어를 제안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3-6구역 인근 상인들은 청계천 을지로와 자신의 작업에 대해 안내했다. 작은 물건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나사를 깎는 가게, 구멍을 뚫는 가게, 용접과 매끄럽게 광택을 내는 가게, 칠하는 가게 등 수많은 공정이 필요하다. 서로 기댐으로써 만들어진 생태계의 조건은 다양성이다. 비슷해 보여도 똑같은 일은 하나도 없다. 청계천 을지로의 골목을 오가며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고 만들던 사람들에게는 개발이 시작된 후로 더이상 만들 수 없는 물건이 생겼다. 골목을 도는 동안 만난 사람들은 한 구역 한 구역이 철거될 때마다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진다는 아쉬움을 이야기했다. 인위적으로는 만들 수 없는 복잡한 기댐, 오랜 시간이 만들어낸 특유의 공간이 아파트 건설로 사라진다.

“용산참사 잊었느냐” 청계천 가게들 앞에는 이런 구호가 쓰여 있었다. 

얼마 전, 용산 한남 뉴타운 개발로 시세차익을 거둔 성장현 용산구청장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설혜영 구의원의 제기를 구의회 의장이 묵살했다. 설혜영 의원은 용산구청 앞에서 농성 중이다. 용산참사 당시 용산구 국회의원이었던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은 용산참사가 일어났던 한강로에만 지난 3월 기준 6개의 상가 및 아파트, 그리고 분양권을 가지고 있었다. 용산참사 현장에 새롭게 건설된 ‘센트럴파크 헤링턴 스퀘어’ 아파트의 분양권도 포함되어 있다. 용산의 집값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핏줄 같은 골목을 지운 자리에 찍어낸 듯한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청계천 을지로의 가게들을 돌아다니다가 금형 주물을 찍어내는 ‘프레스’에 방문했다. 사장님은 기념 삼아 하나씩 가지라며 다양한 버튼이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국가대표 축구팀 마크부터 로터리클럽까지, 다양한 버튼이 모여있는 와중에 ‘의회’라고 쓰여있는 버튼이 눈에 띄었다. 시의원 버튼이었다.

의원님들 버튼을 만들어주던 소상공인, 노동자들이 대책 없이 쫓겨나고 있다. 용산참사를 잊은 것이 아니라 용산참사의 의미가 달랐으리라. 쫓겨난 사람들의 상처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손상은 회복이 가능하지 않지만, 의원님들의 집값은 올랐고, 참사의 주범 김석기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1만 점포, 4만 명의 노동자가 일하던 공간을 밀어버리고, 역사와 산업을 깨부수더라도 아파트값만 오르면 그만이란 말인가.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가.

 

윤영(빈곤사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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