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원미상자의 이름>의 신원 확인 시범 프로젝트 팀은 시신의 갈비뼈에서, 머리카락에서, 문신에서, 작은 흔적 하나 놓치지 않고 망자의 삶을 돌이킨다. 실종자 목록의 이름, 사진, 수술 기록, 건강 정보 등 단서가 될 만한 정보를 찾아 시신과 맞추어본다.
한편으로는 아무도 찾지 않는 이들과 찾을 엄두조차 못 내는 이들이 있다. 또는 애타게 찾아 헤매도, 오래 전 끊어진 관계의 끈을 다시 잇기 어려운 상황도 있다. 이주로, 빈곤으로, 성노동으로, 탈가정으로 안정적인 관계망을 구축하기 어려웠거나, 법률과 제도로 증명되는 흔적을 남기기 어려웠을 이들. 누군가는 더 쉽게 ‘무연고자’가, ‘신원미상자’가 된다.
크리스티나는 “특히 유럽 공동묘지에 무명으로 묻힌 수천 구의 이주민”을 언급하며, “사망자와 그 가족의 존엄성 존중은 법에서 보장하는 권리”라고 말한다. 망자와 유가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유럽의 책임이지만, 구조적 차원의 개입은 없어왔다고 짚는다.
존엄한 삶은 죽음 앞에서 끝나지 않는다. 죽음 이후의 충분한 애도로, 남은 이들의 기억으로 완성된다. 그렇기에 애도와 기억은 어떤 추상의 개념이 아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권리와 존중이 비어있는 자리에 무엇이 필요할지 고민하고, 대화하며, 행동해야 하는, 살아 움직이는 가치다. 이는 망자만의 일도, 유족만의 일도 아니다. 누가 그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영화의 말미에서 말하듯, “이는 의지의 문제일 뿐이다.”
– 서울인권영화제 상임활동가 고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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